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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칠보사 원로회의와 종정 불신임 논란

종정교시에 다급해진 원로·범종추, ‘종정 하야’ 추진

1994년 4월10일 전국승려대회를 하루 앞두고 발표된 서암 스님의 종정 교시는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왔다. 언론은 일제히 조계종의 분열을 예고했다. 종정과 원로회의의 서로 다른 행보에 초점을 맞췄다. 종권의 향배에 이목이 쏠렸다.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범종추는 승려대회 봉행위원회를 꾸리면서 서암 스님을 증명법사로 추대한 상태였다. 승려대회를 통해 의현 총무원장 체제에 종지부를 찍으려 했던 계획도 차질을 빚게 됐다. 그러나 범종추는 4월10일 승려대회를 강행하기로 했다. 이미 전국 사찰에 동원령을 내려놓은 상황에서 승려대회를 늦춘다면 의현 총무원장에게 반전의 기회만 줄 것으로 여겼다.

갑작스런 종정교시 발표로
10일 승려대회 계획 차질
범종추, 원로들 지지 기대
혜암스님, 원로회의 재소집

원로들 회의서 종정 비난
“승려대회 위해 불신임해야”
범종추, 원로들 만류하면서
승려대회서 불신임 묻기로

승려대회선 당초 결의와 달리
묻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
초법적 결의라는 비판도 제기
19년 후 “불신임 결의 무효”
 
▲ 원로들과 범종추는 1994년 4월10일 칠보사에서 원로회의를 열어 “4월10일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을 결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혜암 스님은 승려대회에서 이런 결의와 달리 “원로회의에서 불신임을 결의했다”고 발표하면서 논란이 됐다. 원로회의가 4월18일 “조계사에 공권력이 투입된 것은 법난”이라고 규정하고 내부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당시 범종추 기획실장 현응 스님은 “종정 스님의 교시는 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개혁을 하라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신뢰할 수 없었다. 개혁입법을 통해 새로운 종단을 출범시키지 않고서는 종단개혁은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승려대회 강행 결정의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종정 교시를 거역하는 것은 승려대회의 정당성을 스스로 흠집 내는 일이기도 했다. 범종추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원로회의뿐이었다. 원로회의가 승려대회 개최를 재추인 한다면 최소한의 명분을 얻을 수 있었다. 때를 맞춰 원로회의 부의장 혜암 스님을 비롯해 원담·승찬·응담·석주 스님이 4월9일 서울 안암동 개운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범종추 지지를 선언했다. 원로들은 “4월5일 원로회의의 결의에 따라 의현 총무원장의 즉각 사퇴”와 “종도들은 4월10일 승려대회에 적극 참여하라”고 독려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원로회의가 종단 최고의결기구라도 ‘신성(神聖)’을 상징하는 종정의 권위를 넘어설 수 없었다. 혜암 스님은 4월10일 오전 다시 원로회의를 소집했다. 종정 서암 스님의 불신임을 묻기 위해서였다. 승려대회가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원로회의록에 따르면 4월10일 서울 종로 칠보사에서 열린 원로회의에는 혜암·석주·운경·승찬·수산·응담·원담·도견 스님이 참석했다. 범종추 측에서도 다수의 스님들이 배석했다. 회의는 신속하게 진행됐다. 4월5일 원로회의와 달리 이번에는 임시의장을 선출했다. 원담 스님은 혜암 스님을 추천했다. 참석 원로들은 박수로 결의했다. 부의장에는 원담 스님이 선출됐다. 4월5일 회의까지 사무처장을 맡았던 원두 스님에 대한 해임절차도 없이 후임을 뽑았다. 혜암 스님은 자신의 상좌인 무착 스님을 지목했다.
 
첫 안건으로 서암 종정의 거취 문제가 거론됐다. 원담 스님은 “서암 스님이 승려대회를 하루 앞두고 금지교시를 발표했다”고 운을 뗐다. 스님은 “종정 스님의 교시가 없다면 (승려대회를 개최하는데) 문제가 없는데, 승려대회를 합법적으로 하려면 현 종정 스님을 하야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의현 총무원장 측에서 종정교시를 이용해 경찰을 동원한다면 승려대회를 하다 말고 전부 유치장에 들어가기 바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견 스님이 제동을 걸었다. 스님은 “신도나 법관의 소개를 받아서 (종정 불신임이) 합법적인가를 분명히 가려서 하자”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승찬 스님이 반발했다. 스님은 “그런 것쯤은 내가 생각하기에 절대 합법”이라며 “다른데 가서 들어보지 않아도 합법이다. 이 자리에서 불신임만 결의하면 된다”고 호기를 부렸다. 원담 스님은 한발 더 나아가 “후임 종정까지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원로들이 거침없는 발언을 쏟아내자 범종추 측 스님들이 오히려 만류했다.
 
승려대회 봉행위원장을 맡은 탄성 스님은 원로들의 발언 틈에 끼어들었다. 스님은 “추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종정을 금방 또 불신임하면 원로회의가 너무 가볍다는 얘기를 듣게 될 것”이라며 “종정 스님을 그대로 모셔놓고 원장만 제거하는 게 쉽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범종추의 한 스님(회의록에 익명처리)도 “지금 총무원장만 바꿔놓으면 저희들이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원로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승찬 스님은 “총무원장이 종정 스님을 거머쥐고 있기 때문에 총무원장을 사퇴시키려면 종정 문제까지 다뤄야 한다”고 맞섰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원로들과 범종추는 생각하는 바가 서로 달랐다. 범종추가 원로들의 힘을 빌려 승려대회의 합법성을 얻고자 했다면 원로들은 ‘종정 하야’에 화살을 겨눴다.
 
혜암 스님은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스님은 “언론과 주변에서 ‘종정이 되어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말을 한다”며 “제가 종정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종단 차원에서 어떤 것이 옳은 일이냐를 볼 때 종정 스님이 그대로 있어서는 앞으로의 일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스님은 한 발 더 나아가 서암 스님을 “죽은 종정”이라고 몰아붙였다. 스님은 “종정이 지금 산 줄 아느냐”며 “의현이에게 딱 붙잡혀서 꼼짝 못하고 있다. 종정도 살리고 의현이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면 불신임해야 한다”고 서암 스님을 성토했다.

탄성 스님이 다시 이해를 구했지만 ‘종정을 불신임해야 한다’는 원로들의 고집을 꺾기는 쉽지 않았다. 승찬 스님과 혜암 스님은 “불신임 결의가 되지 않으면 승려대회에 불참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심지어 혜암 스님은 서암 스님을 “로보트 종정”이라고 쏘아붙였고, 다른 원로는 “의현의 시자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고 비하했다. 불과 몇 개월 전 자신들이 추대한 종정 스님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없었다.
 
범종추 스님들은 예상하지 못한 원로들의 돌출발언이 내심 불안했다. 원로회의의 성급한 종정 불신임 결정이 자칫 여론의 역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익명의 범종추 스님은 “승려대회를 잘 치를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지 않고 이 자리에서 바로 불신임하면 종정 스님에 대한 상징성이 크게 실추될 수 있다”고 거듭 만류했다.
 
논란이 커지자 혜암 스님은 10분간 휴회를 결정했다. 속개된 회의에서도 승찬 스님은 ‘종정 불신임 처리’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급기야 범종추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범종추 여연 스님은 “종정 스님에 대해 경고성 촉구만 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대신 “승려대회는 원로회의가 주도하고, 의현 총무원장 불신임과 즉각 퇴임을 재의결한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여는 게 파장을 최소화하는 것”이라고 설득했다.
이날 원로회의는 상당 부분 범종추 의견을 수용했다. 종정 불신임이라는 초법적 결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부 원로들은 외부의 의견에 따라 입장을 수시로 바꿨다.
 
익명의 한 스님은 “지금 제가 나가서 월주 스님에게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자리에서 불신임안을 내놓고 승려대회를 하는 것이 명분이 있다”며 월주 스님의 유권해석을 전했다. 자신감을 얻은 듯 승찬 스님은 재차 “원안대로 통과할 것”을 요구했다. 다시 익명의 범종추 스님이 “(여기서는) 경고만 하고 승려대회에서 불신임을 결의해도 문제가 없다”고 맞섰다. 옥신각신 끝에 승찬 스님이 “그럼 승려대회에서 불신임을 결의하는 것을 전제로 원로회의는 불신임안을 촉구하기로 하자”고 수정 제안했다. 이의가 없었다. 범종추는 재빨리 원로회의의 결의 문안을 정리했다. 이미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상태였다. 여연 스님은 “지금 (밖에)기자들이 와있다”고 빨리 결의할 것을 재촉했다.
 
회의 내내 침묵하던 석주 스님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스님은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을 결의한다면 언론이나 사회에서 승려들이 너무 과격하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에도 승찬 스님이 나섰다. 스님은 “지금 한국불교는 정화가 필요하다. 승려대회로 제2의 정화를 해야 한다”며 “그런 차원에서 과격하게 나가지 않으면 정화가 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원로들은 “서암 종정 스님이 종헌 최고의결기관인 원로회의의 결정사항인 승려대회를 일방적으로 금지하는 교시를 내려 종헌질서를 어지럽혔다”며 “서암 종정 스님은 다시는 종헌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 없기를 촉구한다”는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원로회의는 “4월10일 승려대회는 유효하며 원로회의가 주도한다” “승려대회에서 종정불신임을 결의한다” 등도 가결하고 폐회했다.
 
그러나 이날 원로회의의 결의가 초법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종정이자 원로회의 의장이었던 서암 스님을 배제하고 회의를 진행한 것 △조계종 법통을 계승한 종정의 화합 당부 교시를 종헌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로 간주한 것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는 종정을 불신임하려 한 것 등은 모두 종헌종법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날 칠보사 원로회의에서는 종정불신임에 대한 결의가 없었다. 다만 “불신임안을 제안하고 승려대회에서 결정한다”고만 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혜암 스님은 이날 오후 1시 조계사에서 열린 승려대회에서 당초 결의와 달리 “오늘 아침 원로회의에서 종정불신임을 결의했다”며 대중들에게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대중들은 박수로서 이를 결의했다. 불신임에 대한 사유도, 당사자의 해명기회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인민재판’식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시각 서암 스님도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스님은 이미 ‘언제든 종정 자리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밝힌 바 있었다. 다만 여전히 종단 상황이 안타까웠던지 스님은 4월13일과 21일 ‘교시’와 ‘사부대중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종단화합과 불자로서 가야할 길”을 거듭 당부했다. 그리곤 4월26일 마지막으로 원로들에게 “종단이 바른 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잘 이끌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종정직에서 물러났다.

‘서암 종정의 불신임’ 결의는 2013년 5월21일 원로회의에서 무효로 결정됐다. 이날 원로회의는 “1994년 4월10일 칠보사 원로회의록을 살펴본 결과 원로회의에서는 서암 스님의 불신임이 결의되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다만 “1994년 5월3일 원로회의가 사퇴서를 수리하면서 서암 스님은 종정에서 물러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서암 스님이 ‘불신임’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종정에서 물러난 지 19년만의 일이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52호 / 2014년 7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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