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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평양 법운암 〈하·끝〉

기자명 이학종

날렵한 고려 5층탑 ‘으뜸’보물

사찰 성물 대부분 1950년대 이후 작품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 아쉬움으로 설쳐

<사진설명>법운암 본전 전경. 조선 중기에 지어진 목조 건축물로 문화재 가치가 있다.

주지 법암 스님에 따르면 법운암의 본전 법당은 약 400년쯤 된 건물이다. 그러나 그 안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상은 근래의 작품이 확실하다. 얼핏 보면 15세기 양식의 문화재급 불상인 듯싶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수인의 오른손과 왼손이 뒤바뀌었고, 손톱부분까지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 등 제작수법 상 근래의 작품이라고 봐야 옳을 듯싶다. 다만 불상의 표정이 지극히 서민적이며 나발의 모양이 유달리 강조돼 있는 것은 눈길을 끌만하다. 법당 구석의 마루에는 예불 등 의식용으로 쓰인 좌종(坐鐘)이 남아 있는데, 양식으로 보아 1950년 이후의 작품이다. 좌종은 북한지역에서 널리 쓰였다고 하는데, 남쪽에서는 거의 사라졌고 몇몇 사찰과 원불교 교당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법운암불형전답단월기적비’에 의하면 이 절은 고구려 때에 처음 세워졌고, 지금의 건물은 조선 시대에 중창됐다.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고구려 시기의 성돌과 기와조각들이 지금도 발견된다고 한다. 고구려의 축성 양식은 표면이 납작하고 잘생긴 부분을 바깥쪽, 그러니까 성벽의 바깥쪽(표면)으로 두고 안쪽으로는 뾰족하거나 잘 못생긴 부분을 배치하는 것인데, 법운암 축석의 경우는 고구려 양식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설명이다. 본전의 마당을 넓히기 위해 쌓은 성 양식의 축대는 최근에 만든 것인데, 살펴보니 고구려의 성돌을 쌓는 수법을 그런대로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

<사진설명>전형적인 고려기 공예탑의 모양을 하고 있는 5층 석탑. 단아미를 뽐내고 있다. 법운암 본전 앞마당에는 5층 석탑이 하나 서 있는데, 처마선이 원을 그리듯 들려 있고 지붕의 크기에 비해 몸집을 작게 만드는 공예적인 기법으로 보아 전형적인 고려시기(약 14세기) 석탑으로 보인다.

법운암은 본전과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등 모두 4채의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전은 정면 5칸(10.27미터), 측면 3칸(6.2미터)인 단층 합각집이다. 건물구조는 비교적 짜임새가 있으며, 정면의 장식은 비교적 화려한 편이다. 건물 앞뒷면의 건축양식을 달리해 지었다. 앞면은 긴 툇마루를 형성하고 겹처마에 2익공식 두공으로 꾸몄으며 후면과 양쪽면의 뒤쪽은 홑처마에 단익공으로 검소하게 꾸몄다. 정면의 두공과 화반의 정교한 조각미, 단청장식은 주위의 아름다운 풍치와 조화를 이뤄 건물의 품위를 제법 돋워준다. 본전의 내부는 고주를 세워 중보를 받게 한데다가 통천정으로 탁 틔워놓아 시원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 단청 역시 근래에 칠한 것으로 문화적 가치는 없다. 평불협 법타 스님과 단청장 김성룡 거사는 북한의 문화재 관련 관리들과 대화를 나눈 뒤 즉석에서 이곳 법운암부터 새롭게 단청을 했으면 좋겠다고 뜻을 모은다. 특히 본전 팔작지붕의 네 모서리에는 기왓장을 수북이 쌓아올려 독특한 모양의 장식을 했다. 그 아래 있는 보상화의 문양은 연화문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몹시 눈길을 끈다.

칠성각은 정면 3칸, 후면 1칸의 합각지붕을 하였으며 산신각과 독성각은 단칸으로 규모가 매우 작다. 부속 전각 모두가 1950년대 이후에 지은 것으로 보이고, 그 안에 모신 산신도와 독성각 의 나반존자상 역시 모두 한국전쟁 이후에 만들어진 최근 작품이다. 법운암의 불상과 그림, 조각 등은 조성연대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문화재적 가치는 크지 않지만 근래 북한의 불교조각이나 불교회화의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평양 인근의 경치 좋은 곳에 자리한 탓에 인파가 붐비는, 그러니까 북한의 관광사찰격인 법운암을 끝으로 북한사찰의 순례 일정이 마무리 된다고 생각하니 좀처럼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조선불교도연맹 청사에서 위원장 박태화 스님을 비롯하여 간부진들이 우리 일행과 작별 인사를 나누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에 예서 더 머물 수도 없는 형편이다.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채 용악산에서 내려온다. 평일인데도 관광객 몇몇이 눈에 띤다. 손을 흔드니 반갑게 손인사로 답을 한다.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발표한 6·15 공동선언 이후 북한 주민들의 남쪽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몰라보게 부드러워진 실례라고 동행한 법타 스님이 귀뜸한다.

이윽고 우리 일행을 실은 승합차가 조선불교도연맹 청사에 당도했다. 중앙위원장 박태화 선사, 부위원장 황병준 스님, 류인명 스님 등 낯익은 얼굴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북과 남의 불자들이 조국통일을 위해 앞장서야 하고 그 일을 지난 10여년 이상 꾸준히 교류를 해온 평불협이 앞장서주기를 바란다”는 박태화 스님의 말씀에 이어 평불협 회장 법타 스님이 “따뜻한 환영에 감사드리며 조국통일을 위해 남과 북의 불자들이 선봉에 서자”는 답사가 오간다. 두 스님은 마치 혈육처럼 두 손을 맞잡고 뜨겁게 포옹한다. 간소한 선물이 오가고, 이어 방문 기념 촬영에 들어갔다. 이제 이별을 한다는 생각에 애틋한 마음이 인 탓인지 서로의 손을 맞잡고 동족의 정을 교환하기 바쁘다. 같은 피를 나눈 한민족의 정이 이렇듯 깊은 것인지를 새삼 느낀다. 또 오시라는 손 인사를 뒤로하고 우리 일행은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숙소로 향한다.














<사진설명>상단왼쪽부터
본전 주불인 비로자나불상.
산신각 '산신탱'의 모습.
본전 지붕 모서리 마다 기왓장을 쌓아 올렸다. 보상화의 문양이 재밌다.
법당안 구석에 놓여있는 좌종. 주로 일제강점기에 사용된 일종의 불구이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평양의 전경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빠져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던 소중했던 순간들이었다. 북한불교를 둘러본 것 외에, 이념과 체제가 다르지만 동족으로서의 정은 조금도 변치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흐뭇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일행들 사이에서 내일 아침 7시 일찌감치 순안공항으로 떠나도록 되어 있어 일찍 쉬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간다. 그러나 평양의 마지막 밤에 쉽게 잠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리라. 객실 창 바깥으로 내다보이는 보통강변 수양버들의 가지들이 유난히 휘적거리고 있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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