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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기둥

뿌리가 깊은 나무는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하지 않고, 백년, 천년의 세월을 견딘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그마한 폭풍에도 뿌리째 뽑혀 넘어지고 만다. 다른 한편 연약한 풀은 뿌리도 깊지 않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오히려 거센 바람에 뽑히지 않는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외부의 힘에 굴하지 않고 굳건하고 담담하게 마주하는 힘을, 반대로 연약한 풀은 굳건하게 맞서지는 못하지만 좋지 못한 상황에서도 상황에 맞게 처신할 수 있는 유연성에 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자신 폄하·자책 보단
삶 속에 배우고 익혀
나의 삶을 사는 것이
기둥처럼 사는 방법

우리는 때로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때로는 연약한 풀처럼 살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정확한 판단이다. 지혜를 갖춘 이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속칭 가방끈이 길다고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학교의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지혜는 학문을 많이 배우고, 적게 배우고에 달려 있지 않다. 얼마나 철저하게 성찰할 수 있는지, 그리고 자신의 고집을 내세우지 않고 상황을 바라볼 수 있는지, 욕망이나 분노에 휩싸이지 않고 마음을 평정하게 유지하고 바르게 통찰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남들의 비난과 저주담긴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럼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가르침이 ‘숫따니빠따’, ‘성자의 경(muni sutta)’에 전한다.

“누군가 극단적인 말을 하더라도 목욕장에 서있는 기둥처럼 태연하고, 탐욕을 떠나 모든 감각기관을 잘 다스리는 이, 현명한 사람들은 그를 성자로 안다.”

건물안에 들어가면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주기둥을 본다. 그 기둥이 얼마나 튼튼하게 잘 세워졌는지에 따라 그 건물의 명운이 걸려있다고 해도 절대 과언은 아닐 것이다. 튼튼한 기둥에는 무엇을 기대어 놓아도 불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 기둥은 버틸 힘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SNS)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거의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통해 만나고, 대화한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연예인에 대한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대한 폭로에서부터, 같은 학교의 친구나 직장 동료에 대한 집단 따돌림, 욕설 등이 심각한 수준이다. 마땅히 비판받아야 할 일이 아님에도, 열등감이나 시기심에 혹은 잘못된 욕구로 다른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익명성이란 거울 뒤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비열함을 넘어, 측은한 마음까지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 말씀처럼 흔들림 없이 굳건히 서 있는 기둥처럼 담담히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분노에 사로잡혀 싸우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또 자신을 스스로 폄하하거나 자책하는 것도 결코 좋지 않다. 그저 자신을 잘 돌이켜 보며, 나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기둥처럼 태연하게 사는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익명성의 뒤에 숨어, 혹은 무리에 숨어서 비난과 욕설과 폭력을 일삼는 사람에게 ‘저렇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무슨 이익이 있을까.’ , ‘왜 저 사람은 인생을 저렇게 낭비하며 살까’라고 측은하게 생각하며, 그 사람을 위해 ‘저 사람이 진정한 기쁨과 행복을 알 수 있기를’이라고 기도해 주는 것은 어떨까.

다른 사람의 근거없는 비난과 욕설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삶 속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53호 / 2014년 7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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