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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 딜레마

박근혜 대통령이 야심차게 준비한 통일준비위원회가 발족했다. 한반도 평화통일을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총 50명으로 구성된 이 위원회의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때맞춰 정부가 농업·축산·보건의료 분야의 민간단체 대북사업에 총 30억 원 규모의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드레스덴 선언’의 후속 조치라 보면 틀리지 않다. 언뜻, ‘통일대박’이 금방이라도 터질듯해 보인다. 그럴까?
 
2010년 발효된 5.24조치를 상기해 보자. 천안함 피격사건 후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며 재발방지대책 촉구 일환으로 남북교류협력과 관련된 인적, 물적 교류를 잠정적으로 중단했다.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 불허, 남북교역 중단(개성공단 제외), 남한 국민의 방북 불허,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 불허, 대북지원 사업의 원칙적 보류 등이 주요 내용이다. 물론 이 조치는 잠정적이다. 언제 풀릴 수 있다는 것인가 하면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의 사과 및 재발방지약속을 할 때 가능하다.
 
이명박 정부의 막이 내려지는 그날까지 이 조치는 풀리지 않았다. 진의여부를 떠나 북측은 ‘천안함을 폭침한 바 없어 사과할 게 없다’는 주장을 제기했고, 남측은 ‘사과 안 하면 지원도 없다’는 입장만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역시 5.24조치는 거둬들일 생각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형성됐던 남북교류 급랭전선이 현 정부 들어서서도 이어졌던 건 이 때문이다.
 
그런데, 통일독일의 상징도시 드레스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기조연설을 통해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 등 3가지 구상을 북측에 제안했다. 3대 제안의 배경 설명이 압권이다. ‘이제 남북한은 교류협력을 확대해가야 한다. 일회성이나 이벤트식 교류가 아니라 남북한 주민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면서 동질성을 회복할 수 있는 교류협력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의 화두로 떠오른 ‘드레스덴 선언’이다.
 
뭔가 이상하다. ‘5.24조치’와 ‘드레스덴 선언’이 충돌하고 있지 않은가? 5.24조치에 따르면 인적물적 교류를 할 수 없다. 교역도 안 되고, 신규투자도 안 되고, 방북도 안 되는 상황에서 무슨 재주로 ‘드레스덴 선언’에 명시된 공동번영을 꾀한단 말인가? 정부 차원에서는 5.24조치가 해제되지 않고는 그 어떤 교류도 할 수 없다. 그러니 5.24조치를 해제하던지, 아니면 ‘드레스덴 선언’을 거둬들여야 한다. 박근혜 정부 스스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꼴이다.
 
심각한 건 정부의 딜레마로 인해 민간교류까지 새로운 국면에 봉착했다는 사실이다. 그 일례로 북한의 아시안게임 선수단과 응원단이 인천에서 응원할 순 있어도 그 반대는 허용되지 않는다. 남한 국민의 방북은 불허한다는 조치 때문이다. 민간교류 일환이었던 만해 스님 합동다례재 승인 과정에서 방북인원이 축소된 연유도 여기에 있다고 봐야 한다. 민간교류 허용이라 하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여기에 북측은 ‘드레스덴 선언’ 정책에 따른 지원은 받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순수한 민간교류마저 드레스덴 정책 일환이라는 오해마저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이리되면 그나마 열려있던 작은 민간교류 창구마저 닫힐 공산이 크다.
 
▲ 채문기 상임 논설위원
박근혜 정부는 자박한 굴레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 5.24조치를 해제하면 된다. 드레스덴 선언의 의지를 확연하게 천명하는 것이고, 나아가 드레스덴 정책의 순수성을 담보하는 길이다. 사명유정은 화두를 진심으로 살피다 보면 ‘한 주먹에 철옹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설파했다. 통일을 향한 진정심이 ‘드레스덴 딜레마’를 깰 수 있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254호 / 2014년 7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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