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헌절과 불교의 법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4.07.21 13:07
  • 수정 2014.07.23 14:53
  • 댓글 0
불가의 핵심적 가르침을 표현하는 ‘법(法)’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 ‘다르마(Dharma)’의 번역어다. 불교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법’이라는 말은 다양한 철학적 함의로 발전하고 깊어져 왔지만, ‘다르마’라는 고대어는 붓다의 출현 이전에도 애초에 다양한 뜻을 품고 있는 말이었다. ‘고삐를 쥐다(dhr)’라는 동사에서 나온 이 말은 직접적으로는 ‘의무’라는 뜻을 곧바로 파생시켰지만, 보다 보편적으로는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우주적 섭리’ ‘본래 그러한 삶의 질서’ ‘옳음’ 등의 뜻으로도 널리 쓰였다. 동아시아에 불교가 전파되는 과정에 왜 ‘법’이라는 말로 하필 이 말을 번역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생각해 보면, 당시 ‘법’이라는 개념이 원천적으로 ‘다르마’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역으로 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는 ‘법(法)’이라는 한자를 왜 ‘삼 수(氵)’ 변에 ‘갈 거(去)’로 만들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모든 ‘의무’ 관념에는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자연스러움’과 ‘필연성’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이 필연성에 ‘자연스러움’이 사라질 때 거기에는 억압과 강제성만이 남게 될 것이다. ‘법’은 이런 점에서 늘 이중성의 긴장을 내포한다. 법은 세상의 질서가 물처럼 흐르는 우주의 자연스러운 섭리와 호응하기를 바라는 태초 이래 인간 서원의 표현이지만, 이 서원이 망각되거나 증발될 때 인간의 현실을 지옥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자연스러움’이란 또 무엇일까. ‘법’의 문제와 관련해서 보자면, 붓다가 깨달은 ‘자연스러움-질서-섭리’에 대한 생각은 당대의 바라문교와도 다르고, 동아시아의 공자·맹자나, 서구 문화의 한 기원인 성경과도 다르다. 바라문은 우주 질서의 자연스러움을 그 은밀한 의식 속에서 일종에 ‘차별’이 있는 계층적 질서로 이해했다. 공자나 맹자는 인간다움의 덕성을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깨친 ‘군자’는 사실상 특정한 사회적 위치를 지닌 지배계급이었다. 성경은 오직 인간만이 신의 모습을 닮게 창조되었다고 말한다. 이 자연의 질서를 인간 세상에 적용하면, ‘법’은 사회의 계층적 질서와 제도 속으로 수렴되고, 의무는 역사 안에서 힘없는 계층의 관점에서는 완강한 억압의 제도가 될 수도 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제대로 해석하는 일은 전문가가 아닌 내 능력 밖의 일이다. 그러나 이를 ‘법’의 관점에서 해석해 볼 여지는 있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나아가서는 모든 인간에 평등하게 잠재되어 있는 참된 가능성에 대한 자각이다. 여기에서 ‘법-섭리’는 보편적인 것인 동시에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내재해 있다. 개별적 인간에게 평등하게 참된 자각 능력이 내재해 있다는 불가의 가르침은, 인간을 물리적으로 구속하고 억압하기 일쑤인 사회 현실 속 ‘법’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법’의 본질은 세상에 실현되어야 할 자연스러운 우주의 섭리에 있으며, 불가의 관점에서 그 섭리는 공평무사한 것이다. 붓다의 가능성이 제 안에 있고, 붓다가 되겠다고 발심하는 존재가 ‘보살’이라면, 법의 본질적 가능성을 실현시킬 그 평등한 주체는 오늘날 정치공동체 속에서는 ‘시민’과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철학자 벤야민은 메시아가 미래에 임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역사의 현재 시간에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을 참조한다면, 보살과 아라한의 불국토는 불가의 경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정치공동체의 현실에서도 하나의 이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 함돈균 문학평론가
제헌절이 있는 7월이다. 국가의 여러 개별법의 기초를 이루는 법 중의 법이 헌법이다.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라고 되어 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존중되어야 할 가능성을 제 안에 지니고 있으며, 그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는 선언적 법 정신이다. 예외 없이 구현되어야 할 이 법정신은 우리 사회에서 지금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함돈균 문학평론가

 

[1254호 / 2014년 7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