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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도덕에 맞설 평범한 영웅이 필요하다

기자명 명법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4.08.11 11:50
  • 수정 2014.11.15 15:49
  • 댓글 0
1971년 8월, 스탠포드 대학에서 평범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모의 교도소 실험이 진행되었다. 실험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수감자와 교도관 역할을 맡긴 후, 그들이 2주 동안 겪는 심리적 변화를 연구하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런데 실험이 시작되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교도관 역할을 맡은 학생들이 실험인 줄 알면서도 가학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점호시간마다 온갖 가혹행위를 창안하여 수감자들을 괴롭혔으며 반항의 기미를 보이면 독방에 감금하거나 성적인 모욕까지 서슴지 않았다. 동료 교도관들의 묵인과 방조 속에서 수감자 역할을 맡은 학생들도 아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 가혹행위를 받아들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감자 역할을 했던 학생들에게 신경 쇠약 증세가 나타나는 등 통제 불능의 상태로 악화되자 6일 만에 실험이 중단되었다.

30년 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비슷한 상황이 일어났다. 미군병사들이 이라크 포로를 학대하는 장면이 찍힌 사진들을 통해 미군기지 내의 학대행위가 전 세계에 알려지자 미국정부와 전 세계 언론은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7명의 ‘나쁜’ 병사들이 어떻게 그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는지 그 원인을 밝히려고 애를 썼다.

바로 그 때, 스탠포드 실험의 주관자였던 짐바르도 교수는 ‘루시퍼 이펙트’라는 책을 출판하고 이라크 포로학대의 가장 큰 원인은 스탠포드 교도소 실험과 마찬가지로 상황과 시스템에 있다고 주장했다. 선량한 시민이 아무 죄의식 없이 포로를 학대하는 잔인한 병사로 돌변하게 된 데에는 위험에 노출된 교도소 위치, 지도력 없는 상급자, 열악한 근무 환경과 함께 학대문화를 만들어내고 지속시키도록 작용한 복잡한 시스템이 큰 영향력을 미쳤다는 것이다.

2014년 한국에서도 군대 내 가혹행위로 한 사병이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아들 가진 부모들은 군대에 보내기 두렵다고 아우성이고, 그러니까 정치권에서는 엄마에게 고자질할 수 있도록 사병에게 휴대폰 사용을 허락하자는 의견이 나온다. 내부고발체계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생각해낸 고육지책이겠지만 참 딱하다. 이러다간 대학에 들어간 자녀를 위해 대학 앞에 오피스텔을 사서 진을 치고 있는 엄마들이 군대 앞에 텐트를 칠 일도 곧 일어날 것 같다. 가해자 이 병장조차 초년병일 때 학대를 당한 당사자라고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것은 개인의 성격만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요구된 역할과 그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아랫사람일 때 비난했지만 윗사람이 되고 보니 이해된다며 폭력이나 가혹행위를 ‘효과적인 통제’라고 정당화하는 일은 위계질서가 엄격한 폐쇄사회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올해 들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심각한 위기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 군대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일상화된 폭력과 무관심, 무책임이 이제 임계점에 임박한 것 같다. 스탠포드 실험이 보여주듯이 평범한 인간이라도 어떤 환경과 체계 속에서 쉽게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악이 평범한 것처럼 이타적인 행위도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짐바르도 교수의 말처럼 다르게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다수의 생각에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승가대학에서 강의를 할 때 하반에서 상반으로 올라가는 학인스님들에게는 스탠포드 실험을 소재로 2001년 독일에서 제작된 영화 <엑스페리멘트>를 보여주었다.(2010년 미국 리메이크판도 있다) 바로 그 때부터 그들이 행동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었다. 짐바르도 교수의 말처럼 우리에게도 비도덕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그에 맞서는 평범한 영웅이 필요한 때가 아닐까?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256호 / 2014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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