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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상처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살다 보면 어떠한 형태로든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라서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도 있고, 제법 큰 상처라 치료를 요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의 경우 상처가 나면 소독을 하고 상처에 약을 바르고, 그것이 덧나지 않도록 조심한다. 사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잘 관리하지 않으면 크게 고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의 판단 의심하며
대상에게 현혹 말고
욕망 자세히 살피면
마음의 평온 얻게 돼

상처가 나면 신경 쓰고, 관리하듯이 우리가 신경 써 관리할 것이 또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감각기관이다. 부처님께서는 감각기관을 상처 돌보듯 세심하게 관리하여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넷째, 상처를 치료하지 못한다 함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는 눈으로 형상을 보았을 때 전체적인 인상과 세세한 것들에 집착하여 탐욕과 근심,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눈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더라도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눈의 감각기관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을 말하느니라. 마찬가지로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혀로 맛을 보고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의식으로 사실을 인식할 때에도 전체적인 인상과 세세한 것들에 집착하여 탐욕과 근심,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각각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더라도 그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각각의 감각기관을 지켜내지 못하는 것을 말하느니라.”(Majjhima-nika-ya, “Maha-gopa-lakasutta” 중에서)

우리의 감각기관은 여섯 가지가 있다. 그것을 육근(六根)이라고 한다. 눈, 귀, 코, 혀, 피부(몸), 의식을 말한다. 우리는 잠시도 쉬지 않고,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한다. 그리고 그 대상에 대해서 ‘좋다’, ‘싫다’ 등등의 인상을 갖게 된다. ‘좋다’라는 인상을 갖게 되면, 그것을 취하고자 하는 욕망, 탐욕이 일어나고, 그것이 충족되지 못하면 근심하고 슬퍼하게 된다. 반대로 ‘싫다’라는 인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배척하고 버리려고 하는 욕망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역시 근심하고 괴로워한다.

그런데 ‘좋다’, 혹은 ‘싫다’와 같은 판단은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지, 대상이 본래 좋은 것이거나 싫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좋다’, 혹은 ‘싫다’라는 판단에서 생겨나는 근심과 걱정과 괴로움은 대상을 바꾼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바로 나의 판단을 바꾸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나의 판단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대상을 바꾸려고 노력한다.

예를 들어, 갖고 싶은 ‘상품’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 현재는 살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것을 꼭 갖고 싶어 한다면 어떠한가. 그 상품의 값을 임의로 내릴 수는 없으며, 그냥 가져갈 수도 없는 것이다. 눈앞에 그것이 아른거려 욕망이 커지면 어떤 사람은 그것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자 마음먹기도 한다. 혹은 훔쳐갈 생각도 할 것이며, 돈을 빌려서라도 사고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감각기관을 지켜낸다’라는 것은 현재의 나의 재정 상태와 그것이 꼭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냉철하게 판단하여 물건에 현혹되어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눈으로 들어온 정보를 제어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내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된다. 즉 내가 보고, 듣고, 접촉하는 것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무분별하게 대상의 특징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게 되면 우리는 대상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56호 / 2014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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