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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어 사유작용으로 관계망 형성해

기자명 인경 스님

29. 언어적 추론의 공허감

선(禪)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고 하거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손가락’이란 언어를 말하고, ‘마음’과 ‘달’이란 세계의 실제적 모습을 나타낸다. 우리는 자꾸 언어적인 개념을 통해 세계를 본다. 언어를 통해 드러난 세계를 실제적인 모습이라고 인식한다. 그렇다 보니 세계 존재 자체, 실제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만나기가 어렵다. 진실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말이 전혀 이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확한 표현은 우리는 세상을 언어적인 관념을 ‘통해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언어에 의존하지 않고, 존재하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추론은 언어적 사유의 결과물
경험없이 논리적 추론 가능해
자극없이 마음 이끌 수 있지만
실재없는 현상 느끼게 하기도
 
이를테면 우리가 하얀색을 본다고 할 때, 하얀색 자체를 보지 못한다. 하얀색이란 인간의 언어능력, 곧 사유에 의해 구성된 개념이다. 하얀색은 검정색의 반대고, 하얀색과 검정색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관련성을 가진다. 이 개념은 서로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개념적 관계망의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이런 관계의 맥락을 떠나서는 어떤 색깔도 이해할 수가 없다. 결국 하얀색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못하고, 언제나 다른 색깔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이런 특징은 동물보단 인간에게서 잘 적용되고, 고유한 문화라는 맥락과 인지적 활동에 의해 구성된다.
 
이런 관계망은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유사성과 차이, 조건과 인과관계와 같은 언어적 사유작용에 의해서 구성된다. 예컨대 삼단논법에서 A는 B보다 크고, B는 C보다 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직접적인 경험’이 없어도, 마땅히 A는 C보다 크다는 것을 유추하게 된다.
 
A ≫ B
B ≫ C
---------
A ≫ C
 
이런 관계적 유추는 2개의 단계로 진행된다. 제1단계는 기존의 인식된 사실이다. A는 B보다 크고, B는 C보다는 크다. 제2단계는 인식된 전제에 기반하여 ‘A는 C보다 크다’는 것을 유추해 낸다. 이런 논리적인 유추는 직접적으로 그 대상을 관찰하지 않았어도 이루어진다. 인도철학에서 자주 언급된 다른 사례를 들어보면, 우리는 일상에서 산에 연기가 일어남을 보고, 그곳에는 불이 있다고 추론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불이 있는 곳에는 항상 연기가 함께 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론은 언어적인 사유의 결과로서 매우 중요한 메타능력이다. 이런 능력은 바로 언어학습에서 비롯된 고유한 특징이다. 언어를 학습할 때,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상과 벌이라는 방식을 채택한다. 아이에게 사과라는 글자를 보여주고, 그 글자의 소리를 따라서 하게 한다. 나아가서 사과의 그림을 보여주고, 잘못할 경우는 다시 반복 연습을 하는 벌을 주고, 맞는 경우는 칭찬하거나, 실제로 사과의 맛을 경험하도록 한다. 이것이 첫 번째의 단계이다. 하지만 일단 첫 번째 단계가 학습되면, 아이는 다음에 사과의 그림이나, 언어적인 자극을 받으면 실제로 사과를 보지 않았어도, 사과의 맛을 기억해 내고, 침이 입안에 고이게 된다.
 
이것을 행동주의자들은 '조건화'라고 하는데, 이것을 우리는 ‘업장(業障)’이라고 말한다. 업장이란 과거의 행위 결과로서 현재에 장애를 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이런 식으로 일단 조건화되면, 다음 제2단계에서는 실제적인 자극이 없어도, 언어적인 자극에도 마음은 이끌려서 활성화될 수가 있다. 이런 능력은 긍정적으로 보면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 자연을 지배하고 나아가서 물질적인 풍요로움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과 같은 인간 고유한 문화를 일구게 했다. 하지만 이런 언어적인 사유와 유추 및 비교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은 부정적으로 보면, 실재하지도 않는 현상에서도 공포와 불안감을 느끼면서, 스스로 항상 뿌리가 없는 공허감에 시달리면서 혼자라는 고독감에 지독하게 힘들어한다.
 
명상상담 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57호 / 2014년 8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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