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과 보살
프란치스코 교황과 보살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4.08.2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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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집경(大集經)’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살은 보리도를 수행할 때 길을 잃은 중생에게 바른 길을 가르쳐주며, 길 위의 기와와 돌멩이 가시덤불을 제거하며, 건너야 할 물이나 험한 곳에 다리를 놓으며, 어두운 곳을 위해 등불을 단다.”
 
약자를 향한 교황의 위로는
국민들에게 큰 울림 다가와
 
불교서 멀어진 삶 경책위해
곁에 온 보살이라 생각해야
 
보살의 길을 이토록 쉽게 설명한 경전도 드물 것이다. 보살의 삶은 엄청난 희생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길 잃은 사람들에게 바른 길을 일러주고 어두운 곳에 등불 밝혀주는 것도 보살의 삶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작은 배려마저도 어렵다. 남의 상처에 재 뿌리고 덧나게 하는 것이 다반사다. 세월호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책임져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노숙자라 비아냥거리고 교통사고에 불과하다느니, 좌파라느니 온갖 모욕을 주고 있다. 상식이 짓밟히는데 국민들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절규하는 이들의 아픔을 감정 없는 로봇처럼 지켜보고만 있다.
 
그러나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가 짙게 드리운 우리사회의 무기력에 작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4박5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지만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한국에 있는 동안 교황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만나 위로했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고통을 나눴다. 그런 교황의 모습을 보며 ‘행동이 보살과 악인을 구분하는 기준’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아프게 다가갔다. 교황의 초청은 말이 많았다. 부정선거 의혹과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들로 민심에서 멀어진 현 정부의 시국전환 의도와 교세 확장을 노린 가톨릭의 절묘한 합작품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정부와 가톨릭을 위한 초청이고 행사였다. 그러나 교황은 겸손함과 소박함, 약자를 향한 진정어린 위로로 많은 울림을 주었다. 앞에서 울고 뒤에서는 웃는 비정함에 치떨었던 많은 국민들은 예기치 않은 위로를 받았다.
 
교황은 자본주의의 천박함과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모든 제도에 대해 비판했다. 그러면서 불과 5일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 위안부 할머니, 강정마을과 밀양마을 주민을 두루 만났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용산참사 가족들과 아픔을 함께 했다. 새터민과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이 땅의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슬픔을 어루만졌다. 광화문에서 열린 시복식 날 교황은 거대한 인파의 한 가운데서 차에서 내렸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수십일 째 단식하고 있는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교황은 그의 앙상한 손을 붙들고 가슴 속 절절한 말들을 경청했다. 실종된 자식들을 찾지 못해 피맺힌 울음으로 남은 가족들에게 손수 위로의 편지를 썼다. 세월호 가족을 바빠서 만나지 못한다는 이 나라의 대통령과 달리 교황은 그 짧은 기간, 틈틈이 만나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고 또 위로했다.
 
▲ 김형규 부장
부끄럽게도 교황을 모습을 보며 ‘대집경’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종교가 다르다는 불편함에도 교황의 삶은 보살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교황은 교회가 부자들의 교회가 아닌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물욕화 되고 있는 이 땅의 모든 종교에 대한 경고였을 것이다.
 
교황은 떠났다. 혹시라도 그의 울림이 한국 가톨릭의 교세확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불자답게 살지 못하는 한국불교계의 당연한 업보라고 생각하자. 그리고 받아들이자. 불교적인 삶에서 너무나 멀어져 버린 불자들을 경책하기 위해 교황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온 보살님이라고.
 

[1258호 / 2014년 8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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