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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4·13 범불교도대회

낡은 악습서 벗어나기 위한 사부대중의 의지 재확인

▲ 개혁회의는 4월13일 오후 서울 조계사에서 사부대중 1만여 명이 동참한 가운데 ‘범불교도대회’를 개최했다. 사부대중은 이날 김영삼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최형우 내무부 장관의 해임, 종회권한의 개혁회의 이양, 구속자 석방 등을 결의했다. 민족사 제공

1994년 4월13일 아침 의현 총무원장의 사퇴 소식은 빠르게 전파됐다. 이날 새벽 경찰철수에 이어 의현 총무원장의 사퇴소식이 전해지면서 서울 조계사에 모인 스님과 신도들은 “마침내 개혁의 물꼬가 트였다”고 환호했다.
 
의현 원장 사퇴 알려지자
조계사 축제분위기로 가득
스님·신도 1만명 대회동참
 
종도 힘모아 개혁완수 다짐
개혁회의로 종권이양 결의
정부 사과·최형우 해임요구
 
서암 종정 마지막 교시발표
“법 무시한 개혁, 동의 못해”
개혁세력 외면…사퇴수순 밟아
 
전날까지 폭력이 난무했던 조계사 경내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총무원 청사를 장악한 개혁회의측 스님들은 파손된 기물들을 정리하며 새로운 집행부 출범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개혁회의측은 예고했던 대로 ‘범불교도 대회’를 강행했다.
 
오후 2시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은 다시 스님과 신도들로 가득 찼다. 의현 총무원장의 사퇴소식을 접한 불자들의 발길이 전국에서 이어졌다. 범불교도대회를 주최한 개혁회의측은 이날 스님과 신도 1만여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참석 대중들의 분위기는 전날과 사뭇 달랐다.
 
대회에 참석한 대중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종단개혁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구태의 상징’ 의현 총무원장을 몰아낸 것에 대해 자축했다. 서로가 서로를 격려했으며 박수를 보냈다. 의현 총무원장을 비호했던 공권력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경내 곳곳에는 ‘폭력경찰 물러가라’ ‘최형우 내무부장관 사퇴하라’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들이 내걸려 공권력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전 종정 서옹 스님을 비롯해 혜암·지종·응담·원담 스님 등 원로들이 단상에 착석하면서 ‘조계종 비상사태에 대한 범불교도대회’가 시작됐다.
 
삼귀의에 이어 직지사 조실 관응 스님이 법석에 올랐다. 스님은 법어를 통해 “앞으로 낡은 악습을 털어내고 새롭게 거듭나는 불교의 모습을 구현해 줄 것”을 당부했다.
 
비상대책위원장 탄성 스님은 “20여일 간의 거듭된 진통 끝에 마침내 불교개혁의 실마리를 찾아냈다”며 “출가승단과 재가불자는 화합된 모습으로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모든 질곡을 끊어내자”고 말했다. 참석 대중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3월26일 구종법회 이후 16일간 단식을 진행했던 도법·청화 스님도 단상에 올라 폭력사태에 대한 참회의 3배를 올렸다. 참석 대중들도 합장한 채 “새로운 불교로 거듭날 것”을 발원했다.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 지도위원 지선 스님은 “지금까지 1단계 개혁을 끝냈을 뿐 앞으로 많은 어려움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며 “모든 종도가 힘을 합쳐 개혁을 완수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법 스님은 종단개혁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스님은 “청정한 수행정진을 생활화하는 가풍 수립이 우선돼야 한다”며 “종단을 이끌어갈 인물에 대한 선발기준도 개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스님은 “문중과 지역, 친분에서 벗어나 양심적이고 개혁의지가 있는 스님들이 선발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석대중들은 또 한 번 박수와 환호성으로 종단개혁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췄다.
 
개혁 의지를 다진 스님과 신도들은 종단개혁 과정에서 경내에 공권력을 투입한 정부를 성토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최형우 내무부장관 해임’ ‘구속자 석방’을 요구했다. ‘종회 권한의 개혁회의 이양’도 결의했다.
 
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조계사를 빠져나와 가두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김영삼 정권의 불교탄압에 대한 항의를 위해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를 향하며 ‘김영삼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최형우 내무부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연도에 나와 있던 시민들도 박수로 격려했다. 그러나 공권력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시위대가 정부청사를 향하자 경찰병력은 세종로 입구에서 이들의 행진을 막아섰다. 스님과 신도들은 거리에서 연좌농성을 시작하며 경찰과 한동안 대치했다.
 
정부의 불교탄압과 경찰의 조계사 경내 진입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범불교도대회에 참석하지 못한 불자들은 성명으로 동참했다. 대구·경북불교도 모임은 이날 김영삼 대통령의 사과와 최형우 내무부 장관의 해임, 의현 총무원장의 구속을 요구했다. 우리는 선우 등 33개 범불교 신행문화단체들도 성명을 내고 “개혁회의는 적법한 최고의결기구”라며 “전 종도들은 이에 동참할 것”을 독려했다. 경제정의실천불교시민연합(경불련)도 “의현 총무원장의 사퇴는 민주시민 사회를 건설하는 불자들의 위대한 승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에 앞서 3시30분경 원로회의가 다시 소집됐다. 4월10일 승려대회 결의사항을 추인하기 위해서였다. 총무원 청사 1층 회의실에서 열린 원로회의에는 혜암·지종·응담·원담·승찬·도견 스님과 통도사 방장 월하 스님을 대신해 부방장 청하 스님이 참석했다. 회의는 의현 총무원장의 사퇴로 특별한 이견 없이 신속하게 진행됐다. 원로회의는 이날 종단 사태의 책임을 물어 의현 총무원장의 승적을 아예 박탈하는 ‘치탈도첩’을 결의했다. 개혁회의 출범을 결정한 4월10일 승려대회 결의도 인준했다. 정부에 대해서는 공권력투입에 대한 책임자 문책과 사과를, 중앙종회에는 모든 권한을 개혁회의에 이양하고 자진 해산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따라 개혁회의는 종단 내 공식 기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오후 4시50분경 개혁회의 대표들은 총무원 청사 1층에서 ‘대한불교조계종 개혁회의’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과도집행부 출범을 예고했다. 개혁회의는 입법·행정·사법 등 종단 내 모든 권한을 갖는 기구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종단 입법기구인 중앙종회의 해산절차가 필요했다. 당시 종헌종법에 중앙종회 해산권은 특별히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중앙종회가 자체적 결의에 따라 해산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그러나 중앙종회가 스스로 그 권한을 내려놓고 해산하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개혁회의측은 기존 종회의원들을 개혁회의에 끌어 들였다. 특히 ‘의현 총무원장의 3선 결의’를 주도했던 중앙종회의장 종하 스님을 개혁회의 부의장으로 선출했다. 이는 개혁회의가 기존 세력의 반발을 최소화하고 안정적 운영을 위한 포석이었다.
 
개혁회의 집행위원장 도법 스님은 “당시 기존 종회의원들을 끌어들이는데 개혁세력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개혁회의가 선명한 개혁 노선을 고집할 경우 상대적으로 이에 반발하는 세력도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반대 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으로 선별해 기존 종회의원 그룹들을 끌어안는 것이 최선이라고 봤다”고 회고했다.
 
개혁회의가 기존 종회의원을 포섭한 것은 종단제도의 운영에 대한 경험 부족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개혁세력들의 상당수는 30~40대 젊은 스님 그룹으로 종단의 법과 제도에 미숙한 점이 많았다. 개혁회의 입법체계를 마련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존 종회의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들의 포섭은 훗날 1994년 종단개혁의 한계로 평가 받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 시각 종정 서암 스님은 서울 종로 대각사에서 한 언론과 마주했다. 스님은 당시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저해하는 승려대회를 금지하는 교시를 내렸다는 이유로 원로들로부터 불신임을 당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스님은 종단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스님은 언론 인터뷰(동아일보, 1994년 4월15일자)에서 “승려대회는 종단의 분열을 초래하기 때문에 교시를 통해 금했다”며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승려대회는 인정할 수 없으며 승려대회를 통해 성립된 개혁회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로회의의 불신임 결의에 대해서도 스님은 “종정이라는 자리는 누가 불신임하고 밀어낸다 해서 밀려 나갈 자리가 아니다”며 “스스로 나갈 때를 결정할 수 있는 지혜를 요구하는 자리인 만큼 내 스스로 판단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암 스님은 언론인터뷰 직후 다시 종도들을 향해 종정교시를 발표했다. 이미 종정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한 상태였지만 스님은 종도들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스님은 “법질서를 무시하고 물리적 힘으로 몰아 붙여서, 신성해야 할 청사를 점거하는 꼴은 경·율·론 삼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비불교”라며 “그러한 모양의 수단이라면 삼보께서 벌써 등을 돌렸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님은 “비불자적 소수인의 선동에 휘말려 그런 추태를 양출(釀出)하게 된 데는 도제교육이 철저하지 못한데서 기인한 것”이라며 “이러한 폐단을 시정하는 개혁이 급선무이니만치, 특히 원로·중진·종회가 규합해서 이 사태를 정시(正視)하고 책임을 다하여, 불조 앞에 죄인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서도 스님은 “종단이 바른 궤도를 찾아갈 때 부덕한 책임을 통감하고, 새로 추대하는 이 자리를 여법하게 물려드려야 하지 않겠느냐”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서암 종정의 교시가 개혁세력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스님은 ‘마지막까지 의현 총무원장을 비호한 종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스님은 그로부터 10여일 뒤 ‘원로들에게 올립니다’라는 짧은 글을 남기고 홀연히 종정직에서 물러났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58호 / 2014년 8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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