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도행 스님의 계행
31. 도행 스님의 계행
  • 성재헌
  • 승인 2014.08.25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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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냇물 두고 거울 사용은 욕심일 뿐”
▲ 일러스트=이승윤

길한 일이건 흉한 일이건 만사는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기미를 잘 살펴 단속하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게 세상사이다. 길흉화복의 세간사만 아니라 출세간사도 마찬가지다. 청정한 삶, 만사에 여유로운 자유인, 생사의 공포마저 아랑곳하지 않는 대장부는 한 순간에 되는 것도 한 순간에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공들여 쌓아야 이루어지는 것이 열반의 탑이고 해탈의 성이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땅에서 불쑥 솟는 것도 아니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작은 벽돌로 삼고 인내와 노력을 접착제로 삼아 하나하나 쌓아야만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청정한 삶이다.
 
어리석은 견해를 고수하는 습성과 탐욕과 분노는 실로 뿌리가 깊다. 불교적 표현을 빌리자면 아득한 세월에 걸쳐 온 우주를 돌아다니면서 익힌 덕분에 골수까지 배인 습성이다. 툭 건들기만 해도 감당할 수 없는 악취가 풍기는 그 집착과 번뇌를 계율이 아니면 어떻게 단속할 수 있고, 선정이 아니면 어떻게 잠재울 수 있고, 지혜가 아니면 어떻게 제거할 수 있겠는가?
 
물론 봇도랑 하나쯤 막는 것이야 큰 공력을 들일 필요도 없다. 좀 허술한 구석이 있어도 엔간하면 버텨내고, 또 허물어져도 쉽게 복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기 하나만 구제하려고 든다면야 그리 탄탄하게 구축할 것도 없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 셋 가운데서 어느 한 구석이 허술해도 자기 하나 구제하기엔 충분했던 사례가 역사에도 허다하다. 하지만 자신을 넘어 타인까지 구제하는 스승, 고금에 걸쳐 만인의 표상이 되는 성현이기 위해서는 그것으론 부족하다.
 
그들은 큰 산골짝을 통째로 막아선 거대한 제방과 같은 분들이다. 거대한 제방을 이루는 것도 작은 돌 하나에서 시작하고, 거대한 제방이 무너지는 것도 작은 돌 하나에서 시작한다. 또한 거대한 제방은 이루기는 어렵고, 무너지기는 쉽다. 따라서 고금의 수많은 스승들은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서도 보통사람보다 몇 배나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설당 도행(雪堂道行)선사 역시 그런 분이셨다.
 
도행 스님은 괄창(括蒼)사람이다. 그의 집안은 처주(處州) 섭씨(葉氏)로 명문 귀족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태상박사(大常博士)였다. 그 역시 어린 시절부터 유학을 공부해 어린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進士)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후원에서 미친 듯이 짖어대는 개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달려가 보았더니, 우물 앞 버드나무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개 앞에서 몽둥이를 든 하인들이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잿빛이 된 개의 눈동자는 이미 뒤집어져 있었고, 입가에 그득한 거품 사이로 긴 혀가 축 늘어져있었다. 충격이었다. 어제까지 귀엽다며 쓰다듬고 밥까지 챙겨주던 사람이 오늘은 몽둥이로 내려치며 웃고 있는 것이었다. 힘없이 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는 읽던 책을 덮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다른 생명체를 희생해 얻는 행복이라면, 피 묻은 입가를 씻으며 흐뭇해하는 늑대나 호랑이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한 끼 입맛을 돋우기 위해 생명을 해치는 짓은 개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의 아픔을 웃음거리로 삼고, 나의 기쁨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고, 나의 이익을 위해선 하루아침에 얼굴을 바꾸는 인간사가 개에게 하는 행동과 하등의 차이가 없었다. 나날이 웃음을 잃어가던 그는 어느 날 결국 편지 한 장만 남기고 집을 나왔다. 그리고 신분을 감춘 채 산천을 떠돌다가 사주(泗州) 보조왕사(普照王寺)에서 영(英)선사에게 출가해 도행이란 법명을 얻었다. 이후 도행은 명성을 좇아 서주(舒州) 용문사(龍門寺)로 불안청원(佛眼淸遠) 선사께 찾아갔다. 몇 년을 여름이고 겨울이고 누더기 한 벌로 지냈던 탓에 도행의 외관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청원 선사는 맑은 눈빛을 알아보고 그를 시자로 삼았다.
 
너덜너덜한 누더기를 걸치고 시자실로 들어서자 동료들이 난리가 났다. 옷을 빌려주어도 기름때에다 악취까지 풍기는 옷을 통 벗으려들질 않는 것이었다. 말 못할 사정이 있나보다 싶어 그날은 참고 넘어갔다. 하지만 다음날 또 난리가 났다. 온 방에 이와 벼룩이 득실거리는 것이었다. 동료들이 억지로 그의 누더기를 벗겨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이와 벼룩이 아예 누더기 속에다 집을 지어놓고 있었다.
 
우두머리 시자가 도행을 꾸짖었다.
 
“대중생활의 기본은 청결입니다. 이렇게 게을러서야 어찌 수행자라 하겠습니까?”
 
도행은 정중히 말하였다.
 
“제가 게을러서가 아닙니다. 이와 벼룩도 생명체이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첫 번째 계율로 정하신 것이 불살생입니다. 수행자가 어찌 감히 살생을 범할 수 있겠습니까?”
 
“옷을 빨지 못하겠다면 이 방에서 생활할 수 없습니다. 나가십시오.”
 
대중의 미움을 산 도행은 결국 외톨이가 되었고, 불당 한구석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대중들이 불안 선사에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불안 선사는 불러서 꾸짖기는커녕 참다운 수행자의 자세라며 오히려 도행을 두둔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상당법문을 하려고 법상에 오르려는데 마침 도행이 옆에 서있었다. 이를 보고 불안 선사는 껄껄거리며 큰 소리로 대중에게 말하였다. 불안 선사는 사천성 출신이었다.
 
“사천성 출신 스님들은 장난꾸러기에다 망나니인데, 절강성 출신 스님들은 참 깔끔하고 반듯해. 여러분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나와 도행 시자를 비교해 보라.”
 
모든 대중이 깔깔대며 웃었다. 그리고 이후 대중도 도행을 무시하던 태도를 바꾸어 그의 뜻을 존중하며 배려하는 자세를 견지하였다. 훗날 불안 선사의 지도로 크게 깨달은 도행 선사는 오거산(烏巨山)에 머물며 후학을 지도하였다.
 
산중의 주인이 되고서도 소소한 계율조차 범하지 않는 그의 도타운 행실은 계속되었다. 납자들은 검약과 겸손이 몸에 배인 도행 선사의 삶을 존경하면서도 한편으론 변변한 소지품 하나 없는 그의 삶을 답답해하였다. 어느 날, 한 납자가 쇠로 만든 거울 하나를 선물하였다. 하지만 도행 선사는 정중히 거절하였다.
“성의는 고맙지만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네.”
 
“왜 필요가 없습니까? 머리 깎고 수염 깎을 때 얼마나 요긴합니까.”
“그 거울이 아니라도 시냇물이 맑아 훤히 비춰주지 않는가? 꼭 필요치 않은 걸 쌓아두면 욕심만 늘어.”
납자가 웃으며 말했다.
“스님도 참, 이것이 뭐 그리 값비싼 물건이라고 욕심타령까지 하십니까?”
 
도행 선사가 정색을 하며 말씀하셨다.
 
“천리나 되는 튼튼한 둑도 개미떼에게 무너지고, 아름다운 흰 구슬도 작은 흠 때문에 버려진다네. 하물며 위없는 오묘한 도를 둑이나 옥 따위에 비하며, 탐욕과 성내는 허물을 개미나 옥의 흠집 정도에 비하겠는가. 작은 것을 단속하지 못하면 큰 것도 단속하지 못해.”
 
그 말씀에 납자는 도행 선사에게 크게 절을 올렸다.
 

[1258호 / 2014년 8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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