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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수행 김희영 씨

기자명 법보신문
▲ 보현·50
빨래가 생각난다. 내 빨래는 밤바람에 나부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 가기 전 빨래해서 긴 장대 꽂은 빨랫줄에 널어놓고 가면 해지고 야간 자율학습 마치고 집에 오면 그 때까지 내 옷들만 펄럭이고 있었다. 때론 비오는 날에도 가로등에 비춘 내 얇은 속옷이 내 속살 인양 부끄러웠다. 서둘러 빨래를 걷어 집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렇게 새엄마는 내 옷만 남겨둔 채 다른 빨래들을 걷었고, 내 마음엔 빨랫줄에 남은 내 옷가지들처럼 서운함이 하나 둘 늘었다.
태어나면서 익숙한 엄마 냄새는 할머니가 채웠다. 잠자는 나를 가만히 어루만져 아늑한 꿈으로 이끌어 준 것도 할머니였다. 할머니가 생모에게서 버림받은 애틋한 손녀딸을 살뜰하게 챙기는 마음만큼 새엄마와의 갈등은 더 깊어진 것 같다.
 
결혼을 할 때도 혼자서 해내야 할 때마다 서운함과 원망까지 들었다. 베갯잇이 젖도록 울었다. 아이를 낳았을 때도 엄마는 시부모님 보기 면구스럽게 손님처럼 병원을 찾았다. 원망은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시부모님 보살핌과 남편 사랑 속에 가슴속 응어리는 다 녹아내린 줄로만 착각했다. 아팠던 마음들은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채 그냥 포개지고만 있었다. 그래서일까? 생각지도 못한 질병이 찾아왔다. 자가면역질환 중 하나인 한랭알러지 탓으로 약을 먹기 시작했고, 병은 좀처럼 나아지는 기미가 안보였다. 대학병원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차도는 없었다. 그렇게 약을 먹으며 다른 병들과도 싸워야 했다. 위장병, 자궁근종…. 서랍에 가득 들어있는 조제된 약봉투를 보며 남편은 나를 안고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섰다. 집 근처 절에 나가 1년 넘게 매일같이 새벽예불을 올리며 절을 했다. 그러나 절을 많이 하면 할수록 몸은 더 아파왔다. 허리도 무릎도…. 우연히 법왕정사를 알게 돼 2010년 6월 남편과 3000배를 하러 갔다. 그날 처음 본 청견 스님은 명상과 함께 우리 몸 각각 구조를 건강과 연관시킨 법문을 했다. 올바른 수행이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씀은 나와 남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날 3000배를 하면서 절 한 번 한 번에 얼마나 간절함을 실었던지…. 생전 처음 비 오듯 땀을 흘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몸과 마음이 정말 후련했다.
 
잘못된 절 동작과 생활습관으로 병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청견 스님이 일러주신 대로 와선, 행선, 바른 먹거리 섭취, 절 그리고 염불까지 수행을 하다 보니 질병들은 하나 둘 내게서 멀어져 갔다. 질병의 원인을 청견 스님이 강조하는 호흡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엄마를 원망했던 과거를 떠올리면서 부정적인 생각 속에 부정적인 호르몬이 나오고 그 순간 내 호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몸은 차가워졌던 것이다.
 
요즘엔 집에서도 따로 기도방을 만들어 방석 위에 하얀 포를 깔고 무릎 꿇고 앉아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날마다 더 행복해지고 있다. 매달 3000배를 회향하면 늘 엄마에게 전화를 드린다. “엄마 평안하신지요?” 나이든 엄마 목소리엔 반가움이 묻어난다. 원망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엄마를 이해하게 되고 고마워하게 되었다. 함께 목욕탕에 가본 적은 없지만 엄마를 모시고 온천에라도 가야겠다고 전화를 끊고 독백처럼 다짐하게 되었다.
 
엄마에게 고맙다. 이제 우리 집 너른 옥상 빨랫줄엔 내 마음의 해와 달이 걸려 방긋 웃고 있다.

[1258호 / 2014년 8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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