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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본래 밝은 전깃불 바라보기

전깃불 아래 태어나서 그냥 전깃불에 익숙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복이 많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산골 마을에 비로소 전기가 들어왔다. 시골 마을이 온통 난리법석이었다. 전봇대를 세우느라 꽁꽁 언 땅을 파서 큼지막한 구덩이를 만드는 과정을 제법 오랫동안 보았던 추억이 있다. 길옆에 길다란 전봇대들이 무더기로 쌓이고 전깃줄을 연결시키느라 지붕이며 처마 밑이며 먼지가 풀석였다. 벽을 뚫어대는 드릴의 위력은 실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변압기를 매다는 정교한 작업이 공중에서 펼쳐졌다. 줄에 매달린 채 능숙하게 손놀림을 하는 것이 그땐 참 경이로웠다.
 
아미타부처님의 밝은 빛이
중생 마음에 켜지는 찰나가
바로 온 몸이 감격하면서
내면의 눈이 떠지는 순간
 
드디어 전기가 들어오고 안방 전구에 불이 환하게 켜졌다. 지금처럼 벽에 붙인 스윗치를 켜는게 아니고 전구를 직접 붙잡고 켜는 방식이었다. 감동이었다. 그 눈부심이라니. 전기가 들어오기 전에는 제삿날 촛불만 켜도 대낮처럼 환했었다. 어느 정전된 날 촛불을 켰는데 촛불이 그렇게 침침한 불인줄 예전엔 정말 몰랐었다. 전깃불의 환한 맛을 본 눈에 이제 촛불은 불도 아니었던 것이다.
 
저 윗동네에서 할아버지 한 분이 전구에서 담뱃불을 붙이려다가 감전당할 뻔 했다는 얘기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들려오기도 했다. 조그만 마을 한집에 설치된 텔레비전을 보려고 그 얼마나 애를 썼던가. 유제두 선수의 세계챔피언 도전 경기가 있던 날 그 집 앞에 동네 청년들이 발을 동동구르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흑백텔레비전을 감동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차범근 선수가 일본전에서 감격에 겨운 골을 넣는 모습도 그 무렵에 방영되었다.
 
전깃불 이야기를 갑자기 끌어들인 것은 다음의 게송을 읽기 위해서이다. 우선 게송을 읽어본다.
 
靑山疊疊彌陀窟 (청산첩첩미타굴)
蒼海茫茫寂滅宮 (창해망망적멸궁)
物物拈來無罣碍 (물물염래무가애)
幾看松亭鶴頭紅 (기간송정학두홍)
 
이 게송의 끝 구절을 ‘소나무 정자에 앉아있는 학의 머리가 붉어지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던가’하고 더러 해석을 많이 한다.
 
이제 다시 읽어보니 단정학의 붉은 머리에 전깃불이 들어오는 소식이다. 단정학의 본래 빨간 머리꼭대기는 머리가 붉어지는 것을 새삼 볼 것이 없이 붉다. 그 붉은 머리가 전구에 전깃불이 들어오듯이 훤하게 밝아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미타부처님의 광명이 중생의 몸과 마음에서 환하게 전깃불로 켜지는 찰나이기도 하다.
 
첩첩한 청산은 아미타부처님의 굴이고 / 망망한 푸른바다 부처님의 궁전일세 / 사물을 마주할 때 대상과 걸림이 없어지면 / 소나무 정자 단정학의 머리에 전깃불 들어오는 것이 보이리라.
 
대학시절 여름방학 때 시골집에 갔다가 비로 칠흑 같은 어둠을 실감했다. 서울의 가로등에 지칠대로 지쳐있던 눈이 시골의 깜깜한 밤의 빛깔을 전깃불 끄고 보고 있노라니 한없이 편안해졌다. 은행나무들은 누가 들고 가지도 않는 가로등을 지키느라 저 고생을 하고 있다.
 
전깃불을 켰더니 깜깜했던 시골 방이 환하다. 전깃불에 마냥 익숙해져있던 온몸이 참으로 오랜만에 깜깜한 세계에서 광명의 세계로 찰나에 이동하는 체험을 한 것이다. 또 금방 전깃불에 익숙해지지만 그 환해지는 찰나에 사실은 온 몸이 감격하고 있는 것을.
 
소나무 정자에 앉아있던 단정학도 붉은 머리에 전깃불이 들어오는 순간 솔잎 하나하나의 잎맥까지 보았을 것이다. 자신의 발톱에 앉아있는 세균의 세 번째 뒷다리에서 뜀뛰기 운동을 하고 있는 미세 세균도 틀림없이 보았을 것이다. 사실은 전깃불이 들어온 것이 아니라 단정학의 내면의 눈이 떠진 것이지만.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58호 / 2014년 8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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