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사실과 평가
30. 사실과 평가
  • 인경 스님
  • 승인 2014.08.2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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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평가보단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해야
우리는 꽃을 볼 때, 색깔과 향기를 보고 냄새를 맡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고 다른 꽃과 비교하고 평가 한다. 이런 현상은 대인관계에서 훨씬 복잡하게 일어난다. 상대방에 대해서 “그는 나를 무시했어”, “그는 언제나 친절하지만 자꾸 나를 간섭하는 경향이 있어”라고 끊임없이 평가한다. 나 자신에 대해서도 “나는 쓸모가 없어”, “그때 난 참 잘했어. 나는 영리해”라고 말하곤 한다.
 
내 안경 쓰고 상대 보는 것은
학습화된 내용과 기억들일 뿐
안경 벗고 단지 그냥 바라보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삶 보여
 
이렇게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가의 덫에 걸리게 된다.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선 상대방의 평가에 의지해야 하고,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자신을 부정적으로 질책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을 둔 엄마는 오늘 아들에게서 내일 시험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아들의 공부를 돕고자 한다. 아들은 수학문제를 푸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다. 삐딱하게 앉아서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문제를 푸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을 지체한다. 그래서 엄마는 화가 나고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다. 아들을 향하여 잔소리를 한다. ‘바르게 앉아라’, ‘빨리 하라’ 큰소리를 지른다. 아들이 걱정이다. 과연 아들은 잘 할 수 있을까? 공부를 잘 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압도해 온다.
 
여기서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 평가를 구분하여 보자. 나를 화나게 하는 감각자료는 아들의 삐딱한 자세와 느린 문제풀이 등이다. 반면에 ‘아들은 게으르다’, ‘아들은 공부를 잘 못한다’, ‘저렇게 해서 장차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야’ 등은 아들에 대한 엄마의 근심, 주관적 평가이다.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행동치료라면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서, 보상과 벌이라는 체계적인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그래서 상담자는 아이가 학습에 대한 그 능력을 평가하여 적절한 보상을 줄 계획을 세우라고 엄마에게 코칭할 것이다. 반면에 인지치료 입장이라면, 아들에 대한 엄마의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는데 초점을 둔다. 문제를 느리게 푼다는 것이 꼭 아이가 수학을 못한다는 지지증거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한다. 또한 문제해결의 방법을 아이에게 학습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명상치료는 어떻게 하는 걸까?
 
주지하다시피 명상은 대상을 평가하지 말고 그냥 그 자체로 바라보게 한다. 첫 번째로 ‘게으르다’ 혹은 ‘못한다’는 주관적인 평가를 하지 말고, 아들의 행동을 그냥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연습을 한다. 이것은 평가적 태도를 멈추는 것이다. 두 번째는 눈에 보이는 감각자료로서, ‘삐딱한’ 자세와 ‘느린’ 문제풀이를 그 자체로 보라고 말한다. 단지 바라만 보라고. 그리고 잠시 후에 아들의 행동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묻는다. 그랬더니, 뜻밖에 아들이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인다고 말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시험에 대한 압박감과 졸리는 눈으로, 그래도 문제를 푼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고 말한다.
 
그런데 처음에는 왜 이렇게 보지 못했는지를 묻자, 엄마는 갑자기 자신의 불안을 본다. 항상 시험 때만 되면 긴장하고 불안했던 자신의 문제를 본다. 지금 내일 시험을 보는 사람은 아들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인지도 모른다. 투사적 동일시에서 벗어나, 아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엄마가 항상 시험을 잘 보아한다고 채근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겹친다. 시험 때가 되면 항상 불안해했던 나의 모습을 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안경을 쓰고서 상대방을 본다. 그 중심은 나의 조건화된 학습내용, 언어, 기억들이다. 이것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 '단지 그냥 바라보라'는 것은 안경을 벗고 보라는 의미이다. 세상을 순수한 그 자체로 경험하고, 평가하지 않는 채로 삶을 보면, 전혀 다른 관점이 보인다. 삶이란 참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아들의 태도는 엄마의 반응에 대한 거울이다. 아들을 통해서 엄마는 자신을 본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행동치료, 인지치료, 명상치료는 서로 다른 접근방식이고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진다. 행동은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인지는 합리적인 사유방식을, 명상은 초월적인 관점을 제공한다. 이들은 모두 다 필요하다. 어느 쪽은 이쪽이 강점이고 다른 쪽은 저쪽에서 약점을 보여준다. 통합적인 운영이 필요한 이유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 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58호 / 2014년 8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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