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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길을 걷는다

기자명 법상 스님

신선한 삶의 활력을 얻는 때

살다보면 이따금씩 스스로 짊어지고 온 삶의 그림자가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고,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보이지 않는 삶의 무게로 한참을 주춤거리며 내 삶의 시계가 딱 멈춰 섰을 때가 있다. 시간은 흐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대로 멈춰진 채 중심 없이 외로이 흔들릴 때가 있는 법이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예전엔 생각만 해도 설레이던 일들이 무의미해지고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 어떤 사람들이 곁에 다가와도, 그 어떤 흥겨운일을 벌이더라도, 한참을 짙누르는 외로운 흔적을 떨쳐 버리지 못할 그런 때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다. 집에 들어 앉아 있어도 언젠가 나홀로 떠나 그림자와 함께 여행하던 그 바닷가 외로운 포구, 혹은 저홀로 울울창창 소리치며 그 깊은 산 우뚝 솟아 있던 소나무 한 그루가 지독하게 보고 싶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 어떤 일도,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희망도 이 길에 벗이 되지 못할 때. 오직 나홀로 이 외로운 길을 걸어가야 할 때. 바로 그 때…그 때가 있는 법이다. 그래도 외로운 건 좋은 것이다. 외로울 때 비로소 내가 나의 친구가 되어주니까. 일상에서는 내가 나의 존재를 잊고 내 바깥 존재며 일들에만 관심을 가지고
살지 나 자신에게 고개를 돌리지 못하지만, 외로울 때 나홀로 고독의 한 가운데 딱 내 버려져 있을 때 그 때 비로소 내 안에 숨어 있던 참된 친구, 어진 벗을 만나게 되니까 말이다.

이 어둔 밤, 도량 옆 조용한 산길을 걸어본다. 후덥지근 하던 열대야 더위에서나 온몸을 달달 떨어야 하는 한겨울 추위에서는 느끼지 못할 그런 청정한 산기운이 길을 걷는 한 사람의 속 뜰을 비춰줄 수 있는 그런 날. 그런 날, 바로 오늘 같은 날에 삶의 무게를 무색하게 만드는 내 삶의 외로움이 소리 없이 찾아오는 것이다.

모처럼 찾아오는 이런 외로움의 때를 예전 같으면 무기력이나 우울증 쯤으로 여기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겠지만, 가만히 그 느낌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건 우울한 때가 아닌 오히려 신선한 삶의 활력이 되는 때임을 깨닫게 된다. 이럴 때가 있다는 것이 많이 고맙고 감사하다.

사람들은 이럴 때 우울증에 시달린다고 하지만 사실 이 때가 내 삶에 있어 가장 소중한 때다. 이런 때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이 모처럼만에 성숙할 수 있을 기회를 맞이 한다는 것. 외로움의 깊이 만큼 내 삶의 깊이도 한층 깊어진다는것. 그런 것이다.

사실 외로움이란 근원적인 문제다. 그 깊은 외로움을 통해서 잊고 있었던 참된 자아와 만나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그 홀로 된 외로움을 통해서 전체와 하나로 만날 수 있는 길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밤공기가 참 좋다. 지난주에 법당앞 단풍나무 아래 널찍한 평상을 마련해 두었더니 그냥 벌렁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아무 걸림없이 그대로 세상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저 발아래 작은 텃밭도 이제 제법 어린 싹들이 사춘기로 접어드는지 재잘거리며 세상 구경하느라 싱그럽기 그지없다.

너희들도 이제 삶의 고된 때도 만나고 한바탕 거친 장마가 지고 나면 한순간 크게 성장하는 사춘기도 올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모진 삶의 때가 지나고 나면 그후에 햇살 쨍 하고 내려 쬘 때 아침 이슬이 너희 잎사귀에 노래하며 내려 앉을 때 그 때 이 외로움의 소리없는 소리를 너희들도 듣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법상 스님 buda11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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