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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을 가르치는 사람들 - 중앙승가대 재가 교수

기자명 이재형

“출·재가가 서로 존경하는 독특한 관계”

가르칠 땐 제자로… 인생 문제 상담 땐 스승으로

‘인천의 스승’이 불러주는 ‘스승의 은혜’엔 감격

우연히 들른 사찰서 제자 만나면 반갑고 보람


뭇 중생에게 삶의 가치와 바른 길을 일러주는 인천(人天)의 사표, 스님. 그런 까닭에 재가불자들은 거룩한 스님들께 삼보의 예를 올리고 청법가로써 법을 구한다. 또 많은 사람들이 스님들의 가르침에 감화를 받아 새로운 인생을 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온갖 하소연을 털어놓고 위안을 받기도 한다.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에 위치한 중앙승가대학교. 조계종 스님들의 기본교육기관으로 현재 300여 명의 스님들이 공부하며 수행하는 이곳은 스님들이 재가불자를지도하는 일반적인 상황과는 달리 스님들을 가르치고 이끌어주는 머리 기른 사람들이 있다. 불교학과, 역경학과, 포교사회학과, 사회복지학과에 재직하는 9명의 재가교수(겸임 포함)들이 바로 그들. 예비 스님인 사미·사미니는 물론 비구·비구니계를 받은 정식 스님들에게 이들 재가교수들은 불교학을 비롯해 현대 학문을 가르치는 스승인 것이다.


존칭이 지켜지는 사제지간

“스승에 출가자 재가자가 따로 있나요. 가르침을 주면 모두 선지식이고 스승이지요.” “우리 학교가 일반 전통강원과 달리 현대학문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것은 재가 교수님들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중앙승가대 학인 스님들의 말이다.

중앙승가대가 스님들의 학교인 탓에 여느 일반대학의 수업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탁…탁…탁… 죽비소리와 합장으로 시작되는 강의. 교탁 위에 다소곳이 놓인 한 잔의 차와 상호간에 이뤄지는 철저한 존칭.

오랜 산사생활로 인해 대부분의 스님들이 한문이나 경전에 대한 이해는 높지만 상대적으로 현대학문은 생소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 탓에 교수들은 기본적인 개념부터 하나하나 설명해야 경우가 많지만 스님들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누구 못지 않다는 것이 재가 교수들의 설명이다.

“호주, 미국 등 외국에서 십수 년간 공부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서구사상이 몸에 밴 것 같아요. 간혹 강의시간에 던지는 스님들의 예기치 못한 질문에서 오히려 배울 때가 많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강의를 시작한 사회복지학과 허구생 교수의 설명이다.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일방적인 지식의 전달방식이 아니라 삶과 세상에 대한 앎을 나누는 교류의 장인 것이다.

중앙승가대가 재가교수들을 뽑기 시작한 것은 지난 90년. 강원의 성격에 더 가깝던 승가대학이 학위를 인정받는 정규대학으로 승격하면서부터다. 이것은 스님의 교육을 스님이 시키던 오랜 전통을 깨는 파격적인 일이었다. 처음 일부의 반발도 없지도 않았지만 스님들도 일반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취지를 공감해갔고 결국 재가교수를 채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임용된 재가교수들은 스님들이 공부하기 어려운 역사학, 사회학, 복지학, 전산학 등 일반학문을 불교적인 관점으로 접목해 지도했고 학인 스님들의 반응도 대단히 좋았다.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의 말처럼 “재가 교수들은 학인 스님들이 꼭 배워야 할 부분임에도 스님들이 지도할 수 없었던 분야를 가르치고 있는 감초 같은 분들”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인천의 스승 키우는 행복

“지난 91년 제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30대 초반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학인스님들의 대다수가 저보다 10년 이상 나이가 많으셨지요.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최선을 다했고 스님들 또한 열심히 배우셨습니다.”(불교학과 김상영 교수) “일반 대학이 졸업한 뒤 살아가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과 달리 중앙승가대는 마음의 이치를 깨닫기 위해 배우고 수행하는 도량입니다. 이곳에서 공부한 스님들이 여법한 인천의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일조한다는 것이 제게는 큰 행복 입니다.”(역경학과 송찬우 교수)

그러면 이곳 중앙승가대의 스승의 날 행사는 어떨까. 5월 15일이 되면 학인 스님들은 매년 교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선물을 준비한다. 선물의 종류는 다기(茶器)나 차, 그리고 학인 스님이 직접 쓴 선화(禪畵)나 감사의 마음이 듬뿍 담긴 편지도 있다. 심지어 하루에 열댓 통의 차를 받는 재가교수도 있다. 또 한 때는 강의 시작하기 전에 ‘스승의 은혜’를 불러주던 시절도 있었다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도 고마운데 이렇게까지 하니 저희가 오히려 미안하고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포교사회학과 유승무 교수)

간혹 학인 스님들은 은사 스님이나 도반 스님에게도 말 못하는 속내를 털어놓기도 하지만 반대로 교수들이 힘들어 할 때면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것도 학인 스님들이다. “속 깊기야 어떻게 스님을 따라가겠어요. 작은 일에도 남을 배려하고 서로 돕는 것을 보면 역시 스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역경학과 최태선 교수)

재가교수들의 가장 큰 보람은 뭐니뭐니해도 스님들이 이곳에서의 공부를 바탕으로 종단에서 제몫을 하거나 혹은 열심히 수행정진하고 포교에 전념하는 것을 볼 때다. 그럴 때면 은근한 자부심까지 느낀다고. 또 우연히 찾은 사찰에서 같이 공부하던 스님을 만났을 때의 기쁨은 일반불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이곳 재가교수들만의 즐거움이다. 반면에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스님이 갑자기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주말이면 목탁을 쳐주고 보시금을 받는 부전 아르바이트를 하는 스님들, 특히 학인 스님들이 본의 아니게 종권 다툼에 휘말리는 것을 볼 때면 누구보다 안타까워하는 이들 중 하나가 바로 재가교수들이다.


서로에게 스승이자 제자인 관계

스님들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할 수 있어 흐뭇하다는 이들 재가교수들. 대학의 특성상 종단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야 누구보다 잘 알지만 다른 대학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이 나아지고 연구 및 교육 이외의 잡다한 업무도 줄었으면 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다.

가르치는 출가자와 배우는 재가자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넘어 서로가 서로에게 스승이고 제자인 독특한 관계. 상호공경과 치열한 학문정신을 바탕으로 이들 스님들과 재가교수들은 출·재가의 이상적인 모습을 제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중앙승가대를 그 옛날 인도불교 부흥의 구심점이었던 나란다대학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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