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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사 용문선원장 의정 스님

“동선외면 좌선위주 한국선 이대로 간다면 쇠락”

 
청량한 바람에 몸을 맡기고 계곡물 소리 따라 숲길을 오르니 그 끝에 용문선원이 서 있다. 선원 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 그대로 절경이다. ‘잉어’ 한 마리가 이제 막 용이 되어 상원사를 넘어 가려는 듯, 모든 산 줄기가 상원사를 향해 힘차게 뻗어 나오고 있었다.
 
대학재학 중 방황 끝에 출가
노스님들, 상원사 복원 당부
문헌 찾아 선원 등 불사착수
조계종 청규 실천도량으로
 
화두를 들었단 이유 하나로
잡초 하나 뽑지 않는 관행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돼
농촌일손·노인돕기도 수행
 
70세 노인수좌 갈 곳 없어
요양설비 갖춰진 선원 절실
송담·오현스님 복지회 쾌척
승가공동체 구현 도량 발원
 
용문(龍門)! 고기(잉어)가 삼단폭포를 거슬러 올라가 통과하면 용이 되지만,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땡볕의 모래자갈 웅덩이 속에서 아가미를 드러내 놓은 꼴을 면치 못한다는 간담 서늘한 용문선담(龍門禪談)은 벽암록 60측 ‘운문의 주장자’ 편에 나온다. 이 곳 상원사에 주석했던 태고보우 선사는 ‘철벽 관문 타파하고 나니 청풍은 태고 적부터 불고 있었다’ 했으니 ‘용’이 되었을 터. 태고보우의 선맥을 이은 서산대사의 시 한수가 주련에 새겨져 있다. 인천 용화사 선원장 송담 스님 글씨다.
 
▲ 서옹 스님이 말년에 쓴 ‘용문선원’. 용문산을 떠받치고도 남을 힘이 배어 있다.

‘十年端坐擁心城(십년단좌옹심성, 십년을 단정히 앉아 마음의 성을 지키니) / 慣得深林鳥不驚(관득심림조불경, 깊은 숲의 새가 놀라지 않게 길들었구나) / 昨夜松潭風雨惡(작야송담풍우악, 어젯밤 소나무 숲에 비바람 사납더니) / 魚生一角鶴三聲(어생일각학삼성, 물고기에 뿔이 나고 학은 세 번 울음 우네)’
 
‘물고기 뿔, 세 번의 학 울음’ 소식이 뭘까 살피기도 전에 ‘마음 길’은 헌판에 꽂혔다. ‘龍門禪院(용문선원)’, 서옹 스님 글씨다. 용문선원은 2001년 개원했고, 서옹 스님은 2003년 좌탈입망에 드셨으니 스님 말년 글씨다. 입적 2년 전에 쓴 글씨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운차다. 용문산 기운을 떠받치고도 남을 힘이다. 온 정성을 다한 게 분명하다. 이 선원에서 공부한 후학 모두가 ‘용이 되라’는 간절한 당부를 전하고 싶어 저토록 힘을 냈을 것이다. 또한 이 선원을 손수 일구며 선풍을 진작하려는 용문선원장 의정 스님을 믿는다는 징표일 것이다.
 
▲ 의정 스님은 최항의 ‘관음현상기’를 참고 해 상원사를 복원하고 있다. 종루 불사를 마치기 전에 ‘상원사 범종’이 국보로 재지정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대학 재학 중 삶의 의미에 천착하며 방황했던 의정 스님은 불현듯 의문 하나를 갖는다.
 
‘성현들은 어떤 길을 걸었는가?’
 
자연스럽게 부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다 운경 스님을 만나 1973년 사문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 생각해도 묘연한 일 하나. 봉선사 노스님들은 이제 갓 출가한 30대의 의정 스님을 만나기만 하면 어깨를 토닥거리며 당부했다.
 
“봉선사 주지되거든 용문산 상원사 복원해야 한다. 알겠지!”
 
1994년 봉선사 분규가 일어나 주지 문제가 불거졌다. 그 때 의정 스님은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탄성 스님의 당부에 따라 세납 90의 주지 운경 스님을 직접 모시며 부주지직을 맡았다. “상원사 복원하라”는 노스님들 말씀이 다시 생각난 건 그 때부터였다.
 
1463년 세조가 이곳에 들렀을 때 관음보살이 나타났다는 기록을 담은 최항의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에 그려진 상원사 전경도를 참고해 복원불사를 시작했다. ‘정진’이 우선이었던 수좌답게 용문선원부터 개원했다. 이후 제월당과 요사채, 그리고 대웅전을 새롭게 조성하며 사격을 갖췄다. 봉선사 노스님들 말씀 이후 40여년이 걸린 셈이다.
 
 
상원사 용문선원은 ‘조계종 청규 실천도량’이다. 전국선원수좌회는 ‘백장청규’는 물론 기존의 한중일 청규 일체를 연구검토한 후 새로운 ‘선원청규’를 제정해 2010년 선포했다. 스님은 그 때 청규제정 위원장을 맡았다. 새 청규엔 세상과 소통하는 자원봉사 항목도 들어있다. 일례로 용문선원 수좌들은 매 안거 때마다 한 번씩 양평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한다. 방장, 주지부터 행자에 이르기까지 사중 모든 구성원이 운력에 동참하는 백장 선사의 ‘보청법’을 현대에 적용시킨 대표 사례다. 의정 스님이 이토록 ‘청규실천’에 열성을 다하는 연유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조계종이 선의 보고(寶庫)인건 분명하지만 좌선 위주의 현 수행풍토는 개선되어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간화선 또한 ‘고목사회선(枯木死灰禪)’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습니다.”
 
간화선을 주창한 대혜종고는 가만히 앉아 조용함만 즐기려는 묵조선의 폐단을 비판하며 이렇게 일갈했다.
 
‘고목과 같아 피가 통하지 않는 시체와 같고, 불에 타 버려 재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선(禪)이다.’
 
“현각 스님이 ‘증도가’를 통해 전한 ‘절학무위한도인(絶學無爲閒道人)’을 왜곡하면 안 됩니다. ‘절학(絶學)’은 곧 ‘무학(無學)’입니다. 배우지 않는 게 아니라 배워야 할 건 다 배우고, 닦을 것 또한 다 닦아, 더 이상 배울 것(無學·무학)도 닦을 것(無爲·무위)도 없다는 겁니다. 그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한가한 도인’이고 임제록에 나오는 무사인(無事人·일 없는 사람)이요, 요사인(了事人·일 마친 사람)입니다. ‘무사인 되려는 수좌’라는 이유 하나로 잡초 하나 뽑지 않으려 합니다. 이건 왜곡을 넘어 기만입니다.”
 
청규실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적확하게 간파하고 있던 의정 스님이었다. ‘깨닫기 전엔 좌복 위에서 내려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자신과 싸워갔다.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결국 상기병에 걸리고 말았다. 밥이든 죽이든 먹기만 하면 토했고 1년도 채 안 돼 몸무게는 60kg에서 40kg으로 줄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일쑤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오장육부에 염증이 발생했던 것이다. 대중과의 정진은 불가. 결국 1981년 전남 장흥 땅에 작은 집을 마련해 내려갔다.
 
다행스럽게도 그 때 일타 스님이 번역한 백은 선사의 ‘야선한화(夜船閑話)’를 손에 넣게 됐다. 수행 중 일어 난 상기병을 일종의 관법으로 다스리는 방편(연소법·軟醉法)이 명확하게 담겨 있는 책이다. 몸을 회복해 가며 차밭도 가꾸고 채소도 심으며 웬만한 건 거의 다 자급자족했다. 좌선(坐禪)과 동선(動禪)의 균형을 맞춰놓으니 상기병도 낫게 되고 화두도 성성해져 갔다. 청규실천 또한 정진이라는 걸 체득한 건 그 때였다.
 
“육조혜능 선사도 가부좌 틀고 앉아있기만 하는 걸 좌착(坐着)이라며 경계했습니다. 독거노인 돌보기, 장애우 돕기, 농촌봉사 활동, 참선 지도, 강의상담 일체의 모든 활동이 선 수행의 일환인 겁니다. 좌선만이 정진이라는 고정관념을 하루빨리 타파해야 합니다. 청규는 개인과 대중, 출세간을 연결하는 다리요, 창문입니다.”
청규가 바로 서면 간화선 또한 바로 설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그런데 의정 스님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청규를 실천해야 할 스님들이 절에 없습니다.”
 
스님이 절에 없다니! 의정 스님은 4년 전 세납 89세, 82세의 노스님이 시골집에서 잇달아 운명을 달리한 사건을 털어놓았다.
 
“산사가 아닌 토굴에서 아무도 모른 채 마지막 여정을 끝내야만 하는 현실은 수좌들에게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대책이 필요했다는 건 직감했지만 어디서부터 그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답답했다. 그 때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이 갖고 있단 전 재산(?) 4100만원을 복지기금으로 내놓았다. 이 소식을 들은 선원장 스님들이 500만원, 1000만원을 내놓기 시작했다. 선원수좌복지회 설립(2011년)의 씨앗은 그렇게 틔워졌고 적명, 고우, 무여, 혜국 스님 등 이 시대 내로라하는 선지식들이 ‘청규 제정에 앞장선 의정 스님이 수좌복지도 맡아 달라’ 당부했다. 수좌복지회 이사장과 함께 재정확보 책무도 함께 안은 의정 스님은 수행은사인 인천 용화사 선원장 송담 스님에게 달려가 저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다.
 
송담 스님은 “내 시대에 할 일 제대로 안 해서 의정 스님 같은 후학들이 고생한다”며 “힘껏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송담 스님은 지난 3년 동안 12억3000만원을 수좌복지회에 전했다. 뿐만 아니라 “수좌복지회가 알아서 잘 쓰라”며 경기도 소재의 땅 16만평을 내놓았다.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 역시 첫 만남 자리서 2억원을 내어준 후 2014년엔 8억원을 보내와 벌써 10억원을 지원했다.
 
1200여명의 재가불자들이 정기적으로 후원(CMS)하고 있다. 납자들에게도 회비를 받는다. 법납 20년 이하는 월 5000원, 20년 이상은 월 1만원인데 현재 1000여명이 동참하고 있다. 수좌복지회 활동이 점차 전파되면 출재가 후원은 더 늘어날 터. 지난해만도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는 40여명의 수행자들을 돌보았다.
 
“40대 한 스님이 10년 전부터 눈이 아팠는데 방치했습니다. 해제하면 병원 가야지 하면서도 병원비가 없어 못 간 겁니다. 결국 두 눈 다 녹내장으로 실명했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썩은 눈을 적출하고 의안을 넣는 것만도 1000만원의 수술비가 필요하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의정부 망월사에 살던 한 스님은 지난 겨울 눈 쓸다 넘어져 허리를 다쳐 하반신 마비가 왔습니다. 해마다 30명에서 많게는 50명이 결제 중 다치거나 병을 얻습니다.”
 
의정 스님은 무엇보다 토굴 난립을 우려했다. 2300여 수좌 중 현재 토굴을 보유한 수좌스님은 1200여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숫자다.
 
“대중생활을 기피하는 수좌가 토굴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나이 들어 더 이상 대중과 함께 정진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토굴에 사는 수좌가 많습니다. 현실적으로 세납 70이 넘은 수좌가 머물 산사 공간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의정 스님은 송담 스님이 보시한 땅 16만평을 활용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중이다. 전국의 수좌를 대상으로 한 설문은 물론 어른스님과 전문가들의 고언도 수렴하고 있다. 현재 봉암사에 불사 중인 원로선원 또한 롤모델 중 하나다. 단순한 요양원 건립이 아니라 수행과 전법이 체계화된 승가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안을 마련해 보겠다는 원력이다.
 
승가복지에 여념이 없는 의정 스님이지만 희망 하나를 더 품고 있다. ‘가짜’ 오명을 쓰고 국보에서 탈락했던 비운의 상원사 범종(해제 당시 국보 367호)을 다시 국보로 재지정 하겠다는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통과학기술사업단 도정만 박사팀의 연구결과에 무게를 실은 눈치다.
 
“도 박사는 종 재료에 섞인 납의 세 가지 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남부지방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구리·주석·납의 구성 비율 또한 성덕대왕신종 등 신라시대 종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나아가 신라시대 범종인 오대산 상원사 범종(725년), 성덕대왕신종(771년)처럼 당시 범종에 주로 사용했던 밀납 주조공법이 적용됐다고 보고 있습니다. 범종 표면의 비천상의 선녀가 당나라 시대의 4현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것도 제작 연대를 신라시대로 추정하는 근거입니다.”
 
적어도 과학적 측면에서 볼 때 이미 ‘가짜 오명’은 벗은 셈이다. 성덕대왕신종 보다 오래 되었는지의 여부만 남겨 두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정만 박사의 연구 결과가 학계에서 인정받는다면 용문산 상원사 범종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범종이 된다.
 
수좌들의 미래를 담보할 복지 불사에 너무 매진하고 있는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서기 직전 여쭈어 보았다.
“송담 스님에게 받은 ‘판치생모’는 아직도 성성하십니까?”
 
“낮엔 차 한 잔 밤엔 잠 한 숨(晝來一椀茶 夜來一場睡·주래일완다 야래일장수) / 푸른 산 흰 구름 더불어 생사가 없음을 함께 설하네(靑山與白雲 共說無生死·청산여백운 공설무생사 ).”
 
수좌복지회 이사장을 맡기 전이나 후나 다르지 않다는 의미를 서산대사의 시를 통해 전하고 있음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1259호 / 2014년 9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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