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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거문고와 샘물의 향기

오세암을 다녀왔다. 백담사를 지나 설악산을 오르는 산길이 지난번 봉정암 갈 때 낯을 익혀서인지 더욱 가뿐하다. 조금 걷자마자 이마에 시원한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지구와 우리 몸과 우주는
절로 울리는 거문고 같아
인간사도 거문고와 같기에
줄 잘 고르는 것이 우리 몫

오세암 직전의 깔딱고개에서 걸음을 정성스럽게 조절했다. 뼛속 마디마디 깊은 곳, 아직도 에너지 고속도로에서 교통정체가 더러 있는 곳을 알려주는 산행길이 참으로 고맙기만 하다. 안내해주는 분이 계셔서 관세음보살님을 모신 법당 아래에서 오세암 약수를 마셨다. 대장과 소장의 벽을 파고 드는 시원함이라니 감로수가 따로 없다.

시무외전(施無畏殿) 앞에서 합장을 하고 주련을 바라보았다. 멋진 흘림체 붓글씨이다.

觀音菩薩大醫王 (관음보살대의왕)
甘露甁中法水香 (감로병중법수향)
灑濯魔雲生瑞氣 (쇄탁마운생서기)
消除熱惱獲淸凉 (소제열뇌획청량)

관세음보살님 대의왕이시라 / 감로정병에서 법수의 향기 피어오르네 / 마군의 구름 씻어주는 서기가 뿜어져 나오니 / 뜨거운 번뇌 사그러들고 청량함이 온몸에 번져가네.

초청해주신 자원봉사 거사님과 저녁공양을 함께 했다.

“다 헬기가 실어올리는 반찬입니다. 맛있게 드십시오.”

산길을 걸어 올라온 몸이라 모두가 꿀맛이다.

거사님은 대화를 잠시 나누고 처소로 갔다. 임시 요사채에 몸을 눕혔다. 꿈결에 법당에서 정근하는 염불소리가 잔잔하게 귓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몸이 물이 가득 차있는 병 속의 바닥에 누워있다. 저 위쪽 물 위에 둥근 달이 떠있다. 물속인데도 숨쉬는데 전혀 곤란이 없다. 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으면서도 한없이 편안하다. 물 표면으로 떠올라보았다. 물위인데 방바닥처럼 편하게 앉을 수가 있다. 사방을 둘러보니 사방팔방으로 수평선이 펼쳐진다. 한 호흡 들이쉬고 크게 휘둘러보니 관세음보살님의 정병 속이다. 그림에서 볼때는 조그마한 병이었다. 아! 사실은 어마어마하게 큰 병이로구나. 관세음보살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살펴보니 오세암 뒤쪽과 왼쪽에 있는 큰 바위에 이 어마어마하게 큰 병이 입체적으로 매달려있다.

병 위쪽에서는 어디서 흘러들어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병 속으로 끊임없이 물이 흘러들어오고 있다. 동시에 병이 깨져있지도 않은데 병 속의 물이 사방으로 미세하게 뿜어져나가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염불정근 소리가 잦아들었다. 눈을 떠보니 요사채 방바닥이다. 걸어 올라오느라 뻐근했던 종아리가 편안해져 있다. 오호라. 오세암 자체가 관세음보살님의 정병 속에 들어있는 것이로구나.

백담사로 내려오는 길. 훈훈하다. 거대한 사우나 속을 걸어내려오는 느낌이 든다. 모공까지 다 시원하다. 산길을 올라오는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예, 잘 다녀오십시오. 쪼끔만 더 가면 깔딱고개입니다.”

백담사 1.9km 팻말이 붙어있는 곳에서 나눈 인사이다. 산길을 내려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고 올라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살짝 맺힌 땀 속에서 웃고 있다.

雪琴自鳴 (설금자명)
泉香萬里 (천향만리)

설악의 거문고 저절로 울리니 / 약수 샘물의 향기가 만리를 흘러가네.

두 구절만 떠오르고 나머지 두 구절은 저 샘 깊은 속에서 떠오르고 있다.

설악산 전체가 거문고이다. 지구도 우리 몸도 우주전체도 거문고이다. 저절로 울리는 거문고이다. 거문고 줄을 잘 고르는 일은 우리가 할 일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61호 / 2014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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