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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장한종, ‘책가문방8폭도’

기자명 조정육

“책 보시 권유하는 사람, 그것을 행하는 사람 모두 복 받을지니”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으뜸이다.” 보현행원품

책장 풍경 그린 ‘책거리 그림’
장식용 책 어떤 의미도 없어
직접 읽고 실천하는 가운데
책을 보시할 때 공덕 쌓아져

▲ 장한종, ‘책거리 그림’, 종이에 색, 195×361cm, 경기도박물관.

나는 좋은 책이 나오면 사서 읽는다. 읽고 나서 좋으면 주변에 선물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누군가에게 부탁해 책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진도를 더 나갈 때도 있다. ‘할당’을 주는 것이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몇 권을 더 선물하라는 할당이다.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내가 선정한 책은 나와 개인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더구나 내가 쓴 책은 포함되지 않는다. 오로지 그 책이 좋아서 다른 사람이 쓴 책을 순수한 마음으로 선정한다. 읽는 사람이 큰 힘이 될 것 같아서 나온 결과다. 이런 나의 행동은 책 보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조계종 신행수기 당선작을 하나로 엮은 ‘나는 그곳에서 부처님을 보았네’도 그런 책 중의 하나다. 나는 이 책을 여러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값진 교훈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과 직면하게 된다. 이 책에는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과 시련을 희망과 깨달음으로 바꾼 20여 편의 사례가 담겨 있다.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과 맞닥뜨려 절망하고 쓰러지는 대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지렛대 삼아 정면 돌파해 가는 모습은 눈물겹다 못해 숭고하다. 당연히 책보시를 강요할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어떤 사람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이라도 인생에 도움을 받는다면 책을 선물한 사람에게도 큰 공덕이 될 것이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 책에 대한 할당 강요가 계속될 것이다.

나는 독송(讀誦)용 경전이나 경전 해설서 등의 선물도 친한 사람에게 사달라고 한다. 내가 경전을 독송할 때마다 선업이 쌓이면 그 공덕 또한 선물한 사람에게 회향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궤변이 아니다. 내가 경전 해설서를 읽고 공부가 깊어지면 나의 행동이 달라질 것이다. 한 사람이 변하면 온 우주가 변하는 법이다. 어찌 그 책을 선물한 사람의 공덕이 크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물론 아무에게나 책 보시를 강요하고 할당을 주지는 않는다. 책보시를 통해 복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만 얘기한다. 그러니 나에게 책 보시를 강요당한 사람은 복을 많이 받을 것이 보장된 사람이다. 특히 절판되어 구하기 힘든 책을 구해달라고 요청받은 사람은 더욱 그러하다. 앞으로도 나의 책 보시는 계속될 것이다. 나도 복을 짓고 싶기 때문이다. 책보시의 강요도 계속될 것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이 복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장한종(張漢宗:1768~1815)이 그린 ‘책거리 그림’은 책장(冊架)에 놓인 책과 여러 가지 기물을 그린 8폭병풍그림이다. 전체는 8폭인데 양쪽 끝 2폭에 장막을 드리워 6폭 같은 착시효과를 노렸다. 책장과 장막, 기물에는 청적황(靑赤黃)의 원색을 적절히 대비시켰다. 4폭과 5폭의 책장과 책은 그 방향이 반대로 향하게 했다. 당시 유행한 투시도법을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책장 맨 아래 여닫이는 나무결을 그대로 살렸는데 2폭에는 문 한 짝을 열어 놓아 속이 들여다보게 했다. 깊이감과 입체감을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재치가 느껴진다.

책거리 그림은 책과 글을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던 조선 선비들의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는 정조(正祖)가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실(書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던 정자(程子)의 말을 인용해 자신의 서책 사랑의 의지를 피력했던 사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이 ‘책거리 그림’에서 책이 가장 많은 면적을 차지한 이유다. 책장은 책을 가진 사람의 고상한 취미를 보여줄 수 있는 가구다. 책 못지않게 중국에서 수입된 고급스런 자기(瓷器)가 곳곳에 배치된 이유다. 더불어 붓, 먹, 벼루, 연적 등의 각종 문방구류도 책장 곳곳에 배치했다.

이 밖에도 선비들의 필수품인 부채와 문인의 고고함을 상징하는 공작 깃털도 눈에 띈다. 문금(文禽)으로 불리는 공작은 문인들 관복의 흉배에 시문되는데 문관으로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 상징한다. 길상적인 물건도 찾아볼 수 있다. 자손번창을 소망한 석류와 복을 기원한 불수감(佛手柑) 등이 그것이다. 불수감의 佛(fu)과 福(fu)은 중국어 발음이 같다. 잉어모양의 장식물은 잉어가 변해 용이 되는 어변성룡(魚變成龍)의 고사를 바탕으로 곤궁한 사람이 부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길상적인 기물은 민화에서 더욱 극성스럽게 많이 등장한다.

장한종은 어려서부터 물고기와 게, 조개, 새우 등 어해도(魚蟹圖)를 잘 그렸다. ‘책거리 그림’의 4, 5폭 중간에 연꽃과 함께 나란히 새우 두 마리를 그린 것도 그의 특기를 보여준다. 책거리 그림은 중국 청대의 장식장인 다보격(多寶格)을 그린 그림에서 기원한 것으로 조선 후기에 유행했다. 특히 이형록(李亨祿,1808년∼?)이 그린 여러 점의 책거리 그림이 남아 있고 민화작품도 다수 전한다.

선재동자가 물었다.

“거룩하신 성인이시여, 어떻게 예배하고 공경하며, 어떻게 회향해야 합니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열 가지 큰 서원을 세우고 실천하겠다는 행원(行願)을 닦아야 한다고 대답한다. 그것이 보현보살의 십대원(十大願)이다. 십대원은 큰 원력이다. 기도를 통해 부귀영화를 누려보겠다는 자잘한 욕심이 아니다. 보현보살은 선재동자가 구법(求法)여행을 하면서 만난 53명의 선지식(善知識) 중 가장 실천력이 뛰어난 보살이다. 보현보살은 문수보살과 함께 석가모니부처를 양쪽에서 보필하는 협시보살(脇侍菩薩)이다. 문수보살이 사자를 탄 모습이라면 보현보살은 코끼리를 탄 모습으로 등장한다. 왜 코끼리인가. 인도의 코끼리는 사막에서의 낙타와 같다. 낙타는 등에 무거운 짐을 지고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을 건넌다. 사람들은 낙타가 없다면 사막을 건널 수 없다. 사람을 대신해 힘든 일을 하는 코끼리도 마찬가지다. 보현보살이 중생을 위해 보살도를 행하는 것은 코끼리처럼 고난을 대신 짊어진 것과 같다. 코끼리는 보현보살의 상징이다. 그런 보살이니만큼 중생의 이익을 위해 실천을 강조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보현보살이 서원한 십대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부처님께 예배하고 공경하겠다는 서원. 둘째, 모든 부처님을 찬탄하겠다는 서원. 셋째, 널리 두루두루 공양 올리겠다는 서원. 넷째, 모든 업장을 참회하겠다는 서원. 다섯째, 남이 짓는 공덕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는 서원. 여섯째, 설법하여 주시기를 청원하는 서원. 일곱째,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하는 서원. 여덟째, 항상 부처님의 수행력을 따라 배우는 서원. 아홉째, 항상 중생의 뜻에 따라 수순하는 서원. 열째, 지은 바 모든 공덕을 널리 모든 중생에게 회향하는 서원이다.

그 십대원 중 오늘은 셋째 서원을 살펴보겠다. 선재동자에게 첫째와 둘째 서원을 설명한 보현보살은 다음과 같이 셋째 서원을 얘기한다.

“선남자여, 널리 두루두루 공양 올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시방삼세의 무수한 티끌 티끌마다 부처님이 계시고, 그 낱낱 부처님이 계시는 곳에 수많은 보살이 둘러 계신다. 내가 보현행원의 원력으로 깊은 믿음과 분명한 지견을 내어 여러 가지 으뜸가는 공양구로 공양하되, 수많은 꽃과 음악, 일산, 향, 의복, 기름 등 갖가지 공양구로 공양 올리는 일이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공덕이 이와 같다. 그 중 가장 큰 공덕은 어떤 것일까. 보현보살의 다음 이야기가 이어진다.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으뜸이다. 부처님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이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공양이고, 중생의 뜻을 따르는 공양이며, 중생의 고통을 대신 받는 공양이고, 부지런히 선근을 닦는 공양이며, 보살의 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이고,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이다. 선남자여, 앞에 말한 공양으로 얻는 공덕은 일념 동안 닦는 법공양의 공덕에 비한다면 백분의 일, 천분의 일, 백 천 만억 분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며, 말씀대로 행하면 수많은 부처님이 출생하기 때문이고, 또한 보살들이 법공양을 행하며 여래께 공양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수행이 참된 공양이다.”

사람들에게 책보시할 기회를 준 것이 복을 쌓게 해준다는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책보시 즉 법공양은 보현보살님이 ‘수많은 꽃과 음악, 일산, 향, 의복, 기름 등 갖가지 공양구로 공양 올리는 일’보다 그 공덕이 훨씬 더 크다. 얼마나 큰가. 백 천 만 억 배 더 크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뜻이다. 어찌 이 좋은 기회를 놓치겠는가. 알고 보면 내게 책보시를 권유받은 사람은 무척 복 많은 사람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수행과 실천이 필요한가. 그냥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중국의 불교학자이자 수행자인 남회근(南懷瑾:1918~2012)선생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부처님을 배우기는 쉽지만 행원은 어렵다. 도를 깨달은 뒤에는 수행해야 한다. 수행이란 자기의 행위를 수정하는 것이다. 내면의, 마음을 일으키고 생각을 움직이는 심리행위로부터 외면의 행위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행위를 수정하는 것이다. 이른바 자비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실제로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남회근, ‘원각경 강의’, 마하연:2012,p.139)

실천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이론만으로는 내 것이 되지 않는다. 눈과 귀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몸을 통해 실천해야 내 것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아는데 왜 내 것이 되지 않는가. 다시 한 번 남회근 선생의 얘기를 들어보자.

“우리의 불교 공부는 인과가 전도되어 있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요? 원인을 결과로 잘못 안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가 원인을 결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성본공(自性本空)이니, 모든 것이 인연에 의거한다는 등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배워서 안 이론에 불과합니다. 우리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그렇게 오랫동안 고행을 거친 후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겁니다. 그것이 기록되어 전해짐으로써 우리가 비로소 알게 된 겁니다. (중략) 우리는 그저 부처님의 성과를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직접 수행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석가모니부처님과 마찬가지로 선정(禪定)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진정한 수련의 길에서 스스로 연기의 본성이 공(緣起性空)임을 체득해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이치를 알게 된 후, 이것이 마치 자기의 성과인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남회근, ‘불교수행법강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3, p.20)

배워서 안 이론은 실천을 통해 내 것이 된다.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이론은 ‘책거리 그림’에 등장하는 책을 보는 것과 같다. 책은 읽어야 한다. 장식으로 꾸며놓고 본다고 해서 나의 지식이 되지 않는다. 직접 읽고 실천하고 보시하는 것. 그것이 기존의 업식(業識)에 젖어 있는 내 행위를 수정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론이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이 좋은 계절에 너도 나도 책을 읽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기원한다. 좋은 책을 읽고 감동받았다면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은 어떨까. 그럼 더욱 멋진 계절이 될 것이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61호 / 2014년 9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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