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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곡천(谷泉) 스님의 종이옷

기자명 성재헌

곡천, 종이옷 걸치고 수행자 사치 꾸짖다

▲ 일러스트=이승윤

세상의 통념을 벗어난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자들을 흔히 광인(狂人)이라 칭한다. 한여름에 털옷을 입고 방안에서 화롯불을 쬐거나 한겨울에 홑옷을 입고 부채질을 한다면 코를 잡고 비웃을 게 뻔하다. 하지만 통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세상은 천편일률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적 상황, 흔한 조건만 유지되고 반복되는 세상이라면 이리 복잡하고 소란스러울 리도 없다. 한여름이라고 지독한 냉병에 걸리는 사람이 없을까? 한겨울이라고 지독한 열병에 걸리는 사람이 없을까? 특수한 상황에서는 위에 거론한 행동들이 지극히 합리적이고, 또 자신을 이롭게 하는 행동일 수도 있다.

걸치고서 한 철 보내면 그뿐
비단옷 백 천 벌이면 뭣하나
매서운 추위만 막아주면 되지

기인으로 불리었던 곡천 스님
가식 떨친 진솔함으로 사자후

통념에서 벗어났다고 무조건 ‘제정신 못 차리는 놈’으로 취급해야 할까? 그렇게 따지자면, 부처님도 ‘미친 놈’ 소리 듣기에 딱 좋은 생각과 말과 행동들을 하신 분이다. 금은보화의 막대한 재산과 왕위계승자라는 막강한 권력마저 버리고 출가했으니, 당시 누가 그 행동을 옳다 했을까? 마음에 드는 것이면 일단 주머니에 넣고 보는 세상에서, 챙기면 챙길수록 기쁨이 아닌 번민과 갈등만 늘어난다고 평생을 말씀하셨으니, 당시 누가 그 말씀에 쉽게 귀를 기울였을까?

‘나’와 ‘나의 것’을 소중히 여기는 습성은 만물의 타고난 본성인데, 그게 무지(無知)라며 그 생각을 송두리째 뽑아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셨으니, 당시 누가 그 의견에 쉽게 동의했을까? 아마 찬양하고 존경하는 이들 못지않게 비난하고 비웃은 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시간이 증명해 주는 법이다. 부처님은 분명 사회의 통념에 벗어난 분이셨지만 결코 제 정신 못 차린 분도, 자신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 분도 아니었다. 세상 누구보다 편안한 삶을 영위하셨고, 자신의 삶에 대해 당당하셨고, 주변사람들에게 평안함을 가져다주었고, 생을 마감하면서 한 치의 후회와 회한도 남기지 않으셨다. 해서 통념과 영 어긋나는 그분의 생각과 말씀과 행동을 본받으려는 자들은 그를 성인(聖人)이라 불렀고, 성인이라 부르기 싫은 자들은 광인(狂人)이라 부르기도 뭣하면 어물쩍 기인(奇人)이라 칭하였다.

그런 기인들, 불교 집안에서조차 성인이라 부르기는 싫고 그렇다고 광인이라 칭하기도 뭣했던 분들은 대대로 있었다. 당나라 때 곡천(谷泉) 스님도 그런 분들 가운데 하나였다.

숭복원(崇福元)에서 출가한 스님은 스스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지 않고, 계율도 아랑곳하지 않으며 내키는 대로 살았기에 찾아가는 총림마다 곧바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멀리 북쪽에 계신 분양 선소(汾陽善昭) 선사를 찾아갔는데, 선소 선사는 그를 기이하게 여기면서 남몰래 그의 깨달음을 인가해 주었다.

깨달음을 확인받은 곡천 스님은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상(湘) 지방의 장거리를 광인처럼 떠돌았다. 그러다 분양 선사 문하에서 함께 참구했던 초원 자명(楚圓慈明) 선사가 도오산(道吾山)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도오산 계곡에는 성미가 고약한 용이 살고 있었다. 그곳에는 작은 나뭇잎 하나만 떨어져도 며칠씩 우레가 치고 비가 내리곤 하였다. 그래서 그곳을 지나가는 이들은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다. 어느 날 곡천 스님과 자명 스님이 탁발을 하고 돌아오다가 저물녘에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가을 늦더위에다 짊어진 짐까지 더해 온몸이 땀이었다. 곡천 스님이 자명 스님의 옷자락을 당겼다.

“목욕이나 하고 갑시다!”
자명 스님은 손을 뿌리치고 부

리나케 그곳을 통과했다. 그러나 곡천 스님은 옷을 훌러덩 벗더니 계곡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거짓말처럼 뇌성벽력이 치고 비린내 나는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빗줄기가 쏟아졌다. 자명 스님은 풀숲에서 벌벌 떨면서 “저 스님은 이제 죽었다” 싶었다. 하지만 곧바로 하늘이 말끔히 개더니, 물속에서 곡천 스님이 고개를 쑤욱 내밀었다. 

“아, 시원하다!”

스님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골짜기가 쩌렁쩌렁하게 소리쳤다.

“스님, 얼른 들어오셔.”

그 후 곡천 스님은 형산(衡山)의 파초암(芭蕉菴)에 은거하였다. 그는 거리에서 주운 종이로 옷을 만들어 입었기에 탁발하러 나가면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그럴 때마다 곡천 스님은 싱긋이 웃으며 멋들어지게 노래를 한곡 뽑았다.

미치광이 승려의 종이옷 한 벌
정성스럽게 바느질할 필요가 없네
걸치고서 그저 한 철 보내면 그뿐인데
누에치는 시주의 고통을 어찌 두고 보랴
반짝이는 비단옷이 백 천 벌이면 뭣하나
이나 저나 매서운 추위만 막아주면 되지

스님도 와 구경하고 속인도 와 구경하소/ 먹물 뿜어 구름과 노을에 산수가 펼쳐졌네/ 오악에 연기가 엉기니 이것이 푸른 비단이요/ 사해에 부서지는 새하얀 파도가 은실이라오

사람들 수군거리네, 저게 뭔 꼴이냐고/ 굳이 종이로 옷 만들어 고상한 척한다고/  이것저것 재질 달라도 확 섞으면 완성되니/ 밭두렁 모양새 바느질 솜씨도 필요 없다오
 
금란가사를 바치고 자색장삼을 준대도
이 미치광이는 그것엔 전혀 관심 없다오
가섭존자 이런 나를 멀리서 보신다면
하얀 털옷과 바꾸자고 하실 게 뻔하지
하지만 그분께 말하겠소
저는 노스님과 바꾸지 않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웃음거리로 여기고, 절집에서조차 괴상한 노인네라며 꺼렸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안다. 명안종사로 천하에 명망이 자자했던 초원 자명선사는 항상 그를 훌륭한 벗으로 예우하였고, 황룡 혜남선사는 그를 숙부로 공경하였다. 그들의 눈엔 가식을 떨쳐버린 곡천 스님의 진솔함이 확연하고, 그들의 귀엔 수행자의 사치를 꾸짖는 곡천 스님의 사자후가 쟁쟁했기 때문이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62호 / 2014년 9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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