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정선, ‘야수소서’
36. 정선, ‘야수소서’
  • 조정육
  • 승인 2014.09.2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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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으려하지 않고 스스로 찾는다면 삼라만상이 부처님

“선남자여, 말법시대의 중생으로서 수행하고자 하는 자는 마땅히 목숨이 다하도록 선지식에게 공양하며 선지식을 섬겨야 한다.” 원각경

▲ 정선,‘야수소서’, 비단에 연한 색, 29.5×23.5cm, 왜관수도원.

사람마다 좋아하는 경전이 다를 것이다. 나는 ‘금강경’을 가장 좋아한다. 아침, 저녁으로 독송하는 경전도 ‘금강경’이다. 그러나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은 ‘원각경(圓覺經)’이다. ‘원각경’은 일체 중생이 본래 부처임을 드러낸 경전으로 읽을 때마다 환희심이 느껴진다. ‘원각경’은 원만한 깨달음을 설명하는데 가장 뛰어난 경전으로 평가받는 만큼 수행에 대한 궁금함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모두 12장으로 구성된 경전의 내용은 문답형식으로 되어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문수, 보현, 미륵보살 등 12명의 보살들에게 여래가 깨달은 대원각(大圓覺)의 도리에 대해 설명하고 원각을 닦고 증득함에 필요한 수행법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식이다. 평소 궁금했지만 들을 수 없었던 수행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훌륭한 수행서다. 특히 중국의 석학이자 대법사인 남회근(南懷瑾:1918~2012)선생이 주석한 ‘원각경 강의’는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심오한 불교교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비전공자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친절한 설명이 곁들여져 경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해준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한다. 충만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장자방에게 병법서 건넨 노인
실제 사람 아닌 누런 돌에 불과
도는 스승이 구해주는 것 아냐
목숨을 걸고 찾을 때 내 것 돼

그 중 오늘 읽은 내용은 선지식의 자격에 대한 내용이다. 보각보살(普覺菩薩)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말법시대의 중생들은 부처님의 시대로부터 점점 멀어지면서 현인성자들은 숨고 삿된 법은 갈수록 많아지리니, 중생들로 하여금 어떤 사람을 구하며, 어떤 법에 의지하며, 어떤 행을 행하며, 어떤 병을 제거하며, 어떻게 발심하게 하여서, 저 눈먼 무리로 하여금 삿된 견해에 떨어지지 않게 할까요?”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선지식 즉 스승이다.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면 공부하는 사람의 근기가 아무리 허약하다해도 큰 성취를 맛볼 수 있다. 아무리 뛰어난 학생이라도 그 학생의 가능성을 알아주는 선지식을 만나지 못하면 자신의 뜻을 펼칠 수가 없다. 마치 튼실한 씨앗이 싹이 트지 못하고 씨앗으로 머물러버린 것과 같다. 더구나 지금은 말법시대가 아닌가. 진짜 선지식은 모습을 감추고 대신 선지식 축에도 끼지 못할 자격 없는 사람만이 오히려 자기가 선지식이라고 외치는 시대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은 선지식을 찾을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공부의 시작이자 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보각보살의 질문에 부처님은 ‘일체의 정지정견을 갖춘 사람(一切正知見人)을 구해야한다’고 말씀하신다음 다음과 같이 부연설명을 하셨다.

“말법시대의 중생이 이와 같은 사람을 보면 응당 공양하되 몸과 목숨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저 선지식이 일상생활의 행동 가운데서 항상 청정함을 나타내며 심지어 갖가지 허물을 보이더라도 마음에 교만함이 없거늘, 하물며 재물을 탐하거나 처자식 등 권속들이 있다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만약 선남자가 그 선지식에게 나쁜 생각을 일으키지 아니하면 궁극의 정각을 성취할 수 있어 마음 꽃이 광명을 발하여 시방 세계를 비추리라.”

스님이나 불교 수행자 등 우리가 만난 선지식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알려 준 귀한 정보다. 공부를 하다 보면 보는 즉시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십 년이 지나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그동안 나는 역대 조사들의 행동 중에서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상당히 많았다. 선종의 이조인 신광(神光)이 자신의 팔을 하나 베어 바쳤을 때야 제자로 받아들인 달마대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운문(雲門)대사가 목주(睦州)화상을 찾아갔을 때 운문대사를 보자마자 문을 닫아 버려 결국 운문대사의 다리가 부러지게 한 사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부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똥 닦는 막대기’라고 대답한 스승도 이해할 수 없었고,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뜰 앞에 잣나무’라고 대답한 스승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십년 동안 이해되지 않던 부분이 보각보살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됐다. 선종의 조사들이 화내고 성내고 때론 막말까지 서슴지 않은 것은 오직 제자를 가르치기 위한 최고의 교육법이었다는 사실이다. 도는 스승이나 부처가 구해주는 것이 아니다. 오직 공부하는 사람이 구해야 한다. 단순히 말 몇 마디로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목숨을 걸어야 자기 것이 된다. 그 진리를 가르쳐주고자 함이었다. 그러므로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선지식 즉 스승’이라는 표현은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사람의 자세다’

장량(張良:?~BC 189)은 자가 자방(子房)으로 한(漢)고조 유방(劉邦:BC256~195)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개국공신이었다. 그는 원래 한(韓)나라 사람이었는데 진(秦)나라가 한나라를 멸망시키자 진시황(秦始皇)을 죽이려다 실패했다. 이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장자방은 이름과 성을 바꾸고 하비(下邳)로 달아나 숨어 살았다.

그런 어느 날, 장자방이 하비의 다리 위를 걸어가는데 한 노인이 다가오더니 자기 신발을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고는 장자방에게 말했다.

“젊은이, 내려가서 신발을 주워 와!”

장자방은 노인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보고 화가 났지만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억지로 참고 아래로 내려가서 신발을 가져 왔다. 그러자 노인이 말했다.

“나한테 신겨!”

장자방은 이미 노인을 위해 신을 주워 왔으므로 몸을 뻗고 꿇어앉아 신을 신겨 주었다. 노인을 발을 뻗어 신을 신기게 하고는 웃으면서 가 버렸다. 장자방은 크게 놀라서 노인이 가는 쪽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일 리 쯤 가다가 다시 돌아와서 말했다.

“젊은이가 가르칠 만하군! 닷새 뒤 새벽에 나와 여기서 만나지.”

장자방은 괴이하게 여기며 꿇어앉은 채 “알았다”고 대답했다.

닷새째 새벽에 장자방이 그곳으로 가보니 노인은 미리 와 있다가 노여워하며 말했다.

“늙은이와 약속을 하고서 뒤늦게 오다니 어찌 된 일이냐?”

그러더니 ‘닷새 뒤에 좀 일찍 만나자’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닷새 뒤 닭이 울 때 장자방이 약속장소로 갔다. 노인은 먼저 와 있다가 다시 노여워하며 말했다.

“늦다니! 어찌 된 일이냐?”

노인은 ‘닷새 뒤에 좀 더 일찍 오라’는 말을 남기고 가버렸다. 다시 닷새 뒤 장자방은 밤이 반도 지나지 않아 그곳으로 갔다. 얼마 있으니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은 기뻐하며 말했다.

“마땅히 이렇게 해야지.”

노인은 한 권의 책을 내놓으며 말했다.

“이 책을 읽으면 왕 노릇하려는 자의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십 년 후에 그 효과를 보게 될 것이다. 십삼 년 뒤에 젊은이가 또 제북(濟北)에서 나를 만날 수 있을 것인데, 곡성산(穀城山) 아래의 누런 돌(黃石)이 나다.”

말을 마친 노인은 결국 떠나니, 다른 말도 없었고 다시는 만날 수도 없었다. 날이 밝아 책을 보니 ‘태공병법(太公兵法)’이었다. 장자방은 그 책을 기이하게 여겨 익히고 외운 끝에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정선(鄭敾,1676-1759)이 그린 ‘야수소서(夜授素書)’는 장자방이 하비의 다리 위에서 황석노인에게 병법서를 받는 장면이다. 그림의 내용은 한 눈에 봐도 이해될 정도로 선명하다. 지팡이를 든 노인이 병법서를 주자 장자방이 무릎을 꿇은 채 공손하게 받고 있다.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없었다면 받을 수 없는 귀한 책이다. 노인이 장자방의 사람됨됨이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차례 부과한 시험을 그는 무사히 통과했다. 그 비법이 장자방의 공손한 자세에 담겨 있다. 사마천(司馬遷)은 장자방을 일러 이렇게 평가했다.

“장막 안에서 꾀를 내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승리한 것은 자방이 그 일을 꾸몄기 때문이다. 그는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고 용감한 공적도 없었으나 어려운 것을 쉽게 해결하고 큰일을 작은 일로 처리했다.”

장자방에 대한 내용은 사마천이 지은 ‘사기(史記)’ ‘유후세가(留候世家)’에 나온다. ‘유후세가’에는 장자방이 병가(兵家)와 황로(黃老) 사상을 갖춰 황제 다음 가는 2인자로서의 임무를 탁월하게 수행한 내용이 실감나게 적혀 있다. 그렇다면 장자방이 만난 괴짜 노인과의 인연은 어떻게 됐을까. 괴짜 노인이 떠나면서 남긴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후대에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진 독자가 있을 것을 예상한 사마천이 ‘유후세가’ 끝에 장자방과 괴짜 노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적어 놓았다.

‘장자방이 처음에 하비의 다리 위에서 만난 노인이 자기에게 ‘태공병법’을 주고 나서 십삼 년이 지나 유방을 따라 제북을 지나갔는데 과연 곡성산 아래에서 누런 돌을 보게 되어, 그것을 가지고 돌아와 보물처럼 받들며 제사까지 지냈다. 장자방이 죽자 누런 돌도 함께 매장했다. 그 후 사람들은 무덤에 오르거나 복일(伏日)과 납일(臘日)에는 누런 돌에도 제사를 지냈다.’

그렇다면 결국 장자방이 만난 노인(黃石公)은 사람이 아니라 누런 돌(黃石)이었다는 뜻이 아닌가. 장자방이 병법을 배운 것은 황석공 같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서라는 뜻일 것이다. 그가 병법을 연마할 때 그 곁에 바위가 있어 이런 신비스런 얘기가 전해 내려오게 되었을 것이다. 그의 병법이 워낙 뛰어나다보니 바위가 병법을 가르쳐주었다는 식으로 각색된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만약 장자방이 병법을 익히면서 바위가 들려주는 얘기를 새겨듣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병법의 대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바위가 놓인 위치, 바람이 지나가는 방향, 물이 흐르는 속도 등을 읽지 못했다면 그는 결코 천기(天氣)가 가르친 병법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바위도 물과 바람처럼 그의 스승이라는 말은 맞다. 알고 보면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스승 아닌 것이 없고 삼라만상이 부처님 아닌 것이 없다. 하물며 직접 말을 하며 몸으로 가르침을 전해주는 스승은 말해 무엇하랴. 아무리 성질이 고약하고 한심한 스승이라 해도 내게 가르침을 주는 분은 위대한 스승이다. 오늘도 우리는 눈만 뜨면 도처에서 스승과 선지식을 만날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63호 / 2014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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