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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불감 선사의 밥상

기자명 성재헌

불감, 공양시간 큰소리친 제자도 품어 안다

▲ 일러스트=이승윤

초기경전에 나오는 관법 가운데 사대관(四大觀)이라는 게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존재로 파악하지 않고, 흙[地]·물[水]·불[火]·바람[風]의 네 가지 요소와 또 네 가지 요소의 구성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요소의 공통된 특성은 ‘변재(遍在)하다’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어디에도 그것이 없는 곳은 없다. 이런 관법을 익히게 되면 여러 가지 심리적 유용함을 얻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평등함’이다. ‘그것’이라고 규정짓게 할 특성이 ‘그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것’과 ‘이것’ 사이에 세웠던 관념의 장벽은 와르르 무너지게 된다.

더불어 흙·물·불·바람에 대한 관찰은 무엇을 중점적으로 관찰하느냐에 따라 획득하는 좋은 심성에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특히 흙[地]에 대한 관찰은 물이나 불이나 바람과는 또 다른 유용한 덕성(德性)을 발생시킨다. 왜냐하면 흙은 다른 세 가지보다 훨씬 안정되고, 넉넉한 포용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오행(五行)에서도 토덕(土德)을 인(仁)이라 한다. 드넓은 대지는 나무나 풀처럼 화려한 꽃과 무성한 가지를 드러내지 않는다. 치성한 불꽃처럼 한밤의 어둠을 밝히는 지침도 되지 못한다. 치솟은 바위처럼 상대를 제압하며 군림하지도 못한다. 거친 바위언덕을 미끈하게 넘어서며 유창하게 노래를 부르는 계곡물처럼 크게 반향을 일으키지도 못한다. 하지만 대지는 나무가 나무일 수 있게, 불이 불일 수 있게, 바위가 바위일 수 있게, 계곡이 계곡일 수 있게 그 모든 것을 품어주고 길러준다.

오래 전에 ‘중아함경’을 읽다가 크게 감명 받은 구절이 있다. 교수사였던 사리불이 함께 안거한 이로부터 비난을 산 일이 있었다. 다들 “내가 제일 잘났다”는 생각을 타고나다시피 하니, 스승을 비난하는 제자가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만(我慢)이라는 게 그리 하루아침에 꺾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때 사리불이 대중 앞에서 스스로를 변론한 말씀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세존이시여, 저 대지는 깨끗한 것이건 깨끗하지 않은 것이건 모두 받아들입니다. 누가 대변을 보건, 소변을 보건, 눈물을 흘리건, 침을 뱉건 모두 받아들입니다. 그러는 그를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또한 더럽다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창피스럽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와 같습니다. 제 마음은 저 대지와 같아 맺힘도 없고 원한도 없고 성냄도 없고 다툼도 없습니다.”

사리불이 교수사의 자격을 갖췄던 것은 빼어난 지혜 때문만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이처럼 대지와 같은 포용력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대의 훌륭하신 스승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스승들이 각기 빼어난 덕성들을 갖추고 있었지만, 토덕(土德)을 풍부하게 갖춘 스님 휘하에서 훌륭한 제자들이 유독 많이 배출되었던 것은 사서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불감 혜근(佛鑑慧懃) 선사 역시 그 가운데 한분이셨다.

불감 선사가 태평사(太平寺)의 주지로 계실 때였다. 스님은 절의 기강을 확립하고 공사의 여러 문제들을 판결하는 유나(維那) 직을 고암 선오(高菴善悟) 스님에게 맡겼다. 선오 스님은 당시 나이는 어렸지만 매우 총명하였고, 무엇보다 기개가 남달랐다. 불감 선사가 이를 높이 사 중책인 유나를 맡긴 것이었다. 선오 스님은 한 치의 불의도 용납하지 않았고, 시비를 가림에 있어서는 지위와 고하를 막론하였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구참 납자들이 불감 선사에게 불만을 표했다. “스님, 위아래도 몰라보고 설치는 저런 사람이 유나라니요? 스님까지 욕보일까 걱정입니다.”

그럴 때마다 불감 선사는 웃으며 납자들을 다독거렸다.

“가시처럼 따갑긴 하지만 그의 말이 옳지 않은가? 성가셔도 따라 주게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결국 선오 스님의 칼날이 불감 선사에게까지 향했다. 점심공양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 대중이 차례에 따라 좌정하였다. 그때, 여느 날과는 달리 행자가 따로 상을 차려 불감 스님 앞에 놓았다. 평등공양은 절집의 무너뜨릴 수 없는 규율이다. 앉는 자리의 순서와 음식을 받는 순서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음식의 양과 질에서는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이 불문의 전통이었다. 어른이랍시고 대중과 달리 특별한 음식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 선오는 죽비를 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오백 명이나 되는 대중을 지도하는 선지식께서 처신이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후학들에게 모범이 되겠습니까?”

불호령이 고요한 방을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불감 스님은 못들은 체하고 조용히 수저를 드셨다. 대중도 따라서 수저를 들었고, 그날은 소참법문도 없이 쥐죽은 듯 조용히 공양을 마쳤다. 흩어지는 대중을 뒤로 하고, 선오 스님은 씩씩거리며 공양간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오늘 방장스님 상을 따로 차린 행자는 나오너라.”

행자 한 명이 다가와 공손히 합장을 하였다. “너 이놈, 방장스님 상을 따로 차리라고 누가 시키더냐?”

“시자 스님께서 부탁하셨습니다.”

“뭐라! 시자가 어른께는 고기반찬이라도 올리라고 시키더냐?”

“아닙니다, 스님. 똑같은 반찬에 똑같은 밥입니다.”

“그런데 왜 따로 상을 차렸느냐?”

“방장스님께서는 위장이 약하십니다. 한 번씩 탈이 나면 며칠씩 설사를 하곤 하셨습니다. 그래서 시자스님이 채소를 볶을 때 기름을 빼고 따로 요리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선오는 불감 스님이 받았던 상의 그릇들을 손으로 문질러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기름기가 한 방울도 없었다. 높였던 목소리만큼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법당 뒤쪽 그늘진 곳에 앉아 한참을 생각한 선오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방장실로 찾아갔다.

“스님, 죄송합니다.”

불감 선사가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뭐가 죄송해?”

“어린놈이 건방지게 대중 앞에서 한 집안의 어른을 욕보였으니, 어떤 벌이건 달게 받겠습니다.”

불감 선사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자네가 어디 틀린 말했는가? 자네 말이 옳아. 대중의 공양은 평등해야지.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내 잘못일세. 내가 병 때문에 상을 따로 받긴 했지만 대중보다 나은 음식을 먹은 건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아주게.”

“스님,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유나 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불감 선사께서 선오의 어깨를 다독이며 따뜻하게 말씀하셨다.

“자네는 뜻과 기상이 분명하고 원대해. 이는 칭찬할 일이지 꾸짖을 일이 아니야. 다만 만사를 순리대로 풀어가는 연습을 하면 더 좋겠지. 그래야 장애가 적어. 자네는 훗날 우리 종문의 기둥이 될 사람이야. 그러니 이런 내 말도 고깝게 듣지는 말게나.”

훗날 과연 선오 선사는 불안 청원(佛眼淸遠) 선사의 법을 이은 대선지식이 되었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63호 / 2014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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