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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종단에 대한 비애

기자명 하림 스님

어제가 초하루였습니다. 태풍에 비바람을 뚫고 불자님들이 법당에 오셨습니다.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런 말씀을 잠깐 드렸습니다. 제가 주지라고 늘 따뜻하게 챙겨주셔서 고맙고 감사하다고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두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제가 정말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으로 스스로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저는 본래 이렇게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지라는 것도 다 포장이고 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

포교 앞장섰던 스님
경질되는 것을 보며
예의·상식·배려 없는
종단현실 안타까워

그래서 가끔 이 옷을 벗고 주지라는 직함을 떼어놓고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야 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축구를 좋아해서 조기회에 가입을 했습니다. 50대 축구단에서는 가장 젊은 축에 듭니다. 거기 가서는 청소도 하고 물도 나르고 선배들에게 후배 노릇을 합니다. 잘못하면 혼도 납니다. 기꺼이 가르쳐줘서 고맙다고 인사도 합니다. 그냥 저는 축구하는 젊고 예의바른 후배일 뿐입니다.

물론 그곳에는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운동복을 입고 함께 뛰면 그저 축구하는 젊은 청춘일 뿐입니다. 권력이나 옷은 자신을 감추는 포장에 불과합니다. 그것에 의지하면 본래의 자기는 나약해지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요즘 종단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슬퍼집니다. ‘아, 이것도 포장인가? 벗어버리면 될 것인가?
큰스님도 벗어버리는데 뭐 어때’라고 생각도 하지만 한편으론 슬프고 마음속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수원에서 포교를 위해 헌신했던 한 스님이 하루아침에 아무런 배려 없이 경질되었습니다. ‘오래했으니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게 이유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스님의 포교에 대한 노력과 공로는 안보이고 혼자 오래했다는 것만 부각되는 것에 놀랐습니다. 많은 신도들이 오랜 시간 시주를 하고 불사를 하고 부모를 모시면서 그 절을 가꾸어왔습니다. 많은 신도들은 그 스님이 계속 있어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 고생하며 절을 키워 왔던 아쉬움도 묻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행정을 하는 입장에서는 법과 원칙을 내세울 수 있지만, 절이 사부대중 공동 노력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라면 신도들의 뜻도 존중이 돼야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 저기 연락을 해봐도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위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슬픕니다. 조계종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부끄럽고 서글픕니다. 이런 일은 누구나 자신에게도 해당될 터인데 남의 일보듯 합니다. 한 인간에 의해서 많은 사람이 힘들어 합니다. 예의도 상식도 배려도 없습니다.

며칠 전 노보살님께서 스님들과 저녁을 하자고 조용히 불러서 갔습니다. 첫 말씀이 ‘송담 큰스님이 저러시는데 괜찮은지 종단이 걱정이 된다’고 하십니다. 70이 넘으신 노보살님들도 종단이 걱정된다고 하실 정도니 종단운영이 바르게 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이 몸에도 의지하지 말고 심지어 법에도 집착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매일 만나는 경전에서 보고 배웁니다. 이번 기회에 경전을 더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이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종단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존재라고 여기면서도 가끔 생각하면 목에 뭔가가 걸리는 느낌입니다. 저에게는 그야말로 계륵과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 가을에 희망의 태풍은 언제나 올지 저 멀리 바다를 바라봅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63호 / 2014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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