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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기자명 정장진

영문 모를 단단한 비석 하나가 미래 향한 인식을 확장하다

 
▲ 영화가 던진 화두는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비극적 미래를 그린 것인가? 영화는 스스로가 답을 내리길 원한다.

“밤하늘을 가르는 혜성에 로봇이 착륙한다, 생각만 해도 멋진 일이죠. 상상이 아닙니다. 지난 2004년 유럽의 과학자들이 혜성에 착륙시킬 로봇을 탐사선에 실어 우주로 보냈는데, 10년 만에 목적지에 닿았습니다. 탐사선의 속도가 시속 5만km가 넘었습니다. 그렇게 10년, 64억km를 날아온 로제타가 오늘(6일) 드디어 혜성에 도착했습니다. 오는 11월11일 혜성 착륙에 성공하면 과학자들은 태양계 형성의 기원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될 전망입니다.”

인류의 달 착륙 1년 전 개봉한
SF 영화서 던진 진지한 화두
‘드넓은 우주서 인간의 의미’

미스터리한 검은 비석의 존재
진화론서 시공간 역전현상까지
다양한 해석 가능하게 만들어

지난 8월 어느 날 한 방송의 8시 뉴스에 나온 소식이다. 태양계 형성의 비밀을 풀 수 있는 단서가 곧 나올 수도 있다고 한다. 그 후 며칠 지나지 않아 한 신문사의 인터넷 판은 “우린 언젠가 ‘안드로메다’와 하나가 될 거야”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더욱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 은하의 거리는 약 250만 광년,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별이 가득 모인 중심부뿐으로 하나의 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1조개라는 엄청난 수의 별을 가지고 있다. 1925년 에드윈 허블이 제대로 안드로메다를 촬영한 사진을 제시할 때까지 논란은 계속됐다. 안드로메다가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깝다고 하지만 빛의 속도로 가도 250만년이 걸린다. 하지만 130억 광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광대한 우주의 크기에 비하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 은하가 언젠가 합쳐질 것이라고 한다. 안드로메다 은하는 우리 은하 쪽으로 초속 110㎞ 정도의 속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머나먼 미래, 대략 40억년 정도 뒤에는 두 은하가 완전히 합쳐질 것이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예상이다. 두 은하를 합치면 1조5000만개에 가까운 별이 있다고 한다.“ 40억년, 130억년…. 1조5000만개의 별, 두 은하의 충돌….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40억년이 아니라 400억년이면 어떻고, 1조5000만개의 별이 아니라 수십 조 개의 별이면 어떤가,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가? 우리 대부분은 오늘날 이런 우주과학 소식을 갈수록 자주 접하고 있다. 지구에 사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런 뉴스들에 우리는 둔감하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며 지나친다. 하지만 영화는 그리고 문학을 포함한 예술은, 또 종교는 그렇지 않으며 또 그럴 수도 없고 나아가 그래서도 안 된다.

흔히 SF, 즉 공상과학영화라는 장르영화로 분류되는 영화의 최고 걸작 중 하나인 1968년 작,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를 보자. 1968년이면 1969년 인간이 최초로 달에 착륙하기 바로 1년 전이다. 하지만 영화는 달 착륙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달 착륙은 이 영화를 보면 쉽게 말해 ‘아이들 장난’에 지나지 않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의 우주정복일 뿐이다. 그렇다고 목성 탐사까지 다루는 이 영화가 단순히 우주 정복이나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 같은 SF 영화의 장르화된 공식을 반복하고 있지도 않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인간은 무엇인가, 이 드넓은 우주에서?”라는 누구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그래서 진지하며 무섭고 답을 하는 방식에 따라 인생과 우주에 대한 자신의 신조를 지키기 위해 전쟁마저 각오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기도 하다.

“인간은 무엇인가, 이 드넓은 우주에서?” 이 근원적 질문을 던지면서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 속에 검고 거대한 화두를 하나 던진다. 이 유명한 장면을 다시 한 번 보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음악이 쩌렁쩌렁 울리며 시작된 영화는 ‘인류의 여명’이라는 자막과 함께 호모사피엔스 이전의 유인원들을 보여준다. 대충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알만 하다. 하지만 이 유인원들은 단순히 다윈의 진화론을 주장하려고 등장한 것이 아니다. 대사 하나 없이 10여분이 지나자 영화는 눈부신 햇살에 잠에서 깨어난 유인원들을 보여주는데, 갑자기 소리를 질러댄다. 물을 먹던 웅덩이에 느닷없이 높이 4m가 넘는 거대한 검은 비석이 우뚝 서있는 것이다. 평소에는 못 보던 것이었고 게다가 하나의 통 돌로 정교하게 직육면체 형상으로 다듬어져 있어서, 유인원들은 몰랐겠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이 비석이 누군가 고도의 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아니면 제작할 수 없는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고릴라 모습을 한 유인원들이 깜짝 놀라 이 검고 거대하며 반들반들 마제된 비석 주위에 몰려 소리를 지르며 손을 대고 만져본다. 그러자 화면이 바뀌어 도구로 사용하던 죽은 동물의 뼈가 공중으로 튕겨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다시 화면이 갑자기 바뀌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유명한 ‘푸른 도나우강’ 왈츠를 들려주며 행성 근처를 유유히 떠다니는 멋진 우주선들을 보여준다.

얼마가 지났을까, 화면은 이런저런 우주선 안의 신기한 볼거리들을 보여준 다음, 달 표면에서 발견된 외계생명체의 흔적을 찾아 나선 우주인들을 보여준다. 외계생명체의 흔적이란 다름 아닌 영화 도입부에서 유인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 정교하게 다듬진 검은 색의 거대한 비석이다. 하지만 그 비석에 다가가 사진을 촬영하려고 하는 순간 고주파가 흘러나와 모두 쓰러지고 만다.

▲ 목성 탐사선 안 인공지능.

화면이 다시 바뀌어 목성 탐사를 시작한 우주선을 보여준다. 이 목성 탐사선 안에는 ‘HAL9000’이라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장비되어있다. 이 붉은 외눈박이 할은 단순한 장비가 아니라 우주선의 전체 시스템을 제어하는 초고성능 컴퓨터로서 인간과 대화도 자유스럽게 한다. “사적인 의견이지만…”이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한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우주인들을 죽이려는 살의까지 품는다. 기계와 인간의 싸움이 시작되는데, 이를 의심한 우주인들이 음성인식 장치를 멈추고 몰래 대화를 나눌 때에도, HAL은 멀리서 두 우주인의 입 놀리는 모습만 보고도 그들의 대화 내용을 다 알아듣는다. 이렇게 해서 한 우주인은 우주고아가 되어 죽는다. 구하러 나간 또 한 사람의 우주인은 기계식으로 모선의 문을 열고 들어와 HAL의 주기억장치과 연산 장치들을 꺼버린다. 카드를 하나씩 꺼낼 때마다 비명을 지르는 대신 HAL은 자신의 마음이 사라진다고 되뇐다. HAL이 죽은 것이다.

하지만 화면이 바뀌어 이렇게 HAL이 사라진 공간에서 우주인은 자신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그러기를 한 5분, 아름답지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영상들이 빠르게 펼쳐지다가 문득 멈추는 순간, 느닷없이 18세기 말 후기 로코코 풍의 정갈한 귀족저택의 거실을 보여준다. 이 거실에 도착한 우주인은 두 번 놀란다. 우선 시간 여행을 한 것인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젊은 30대에서 폭삭 늙은 60대 노인이 되어있었고, 이 보다 더 놀라운 일은 이 귀족의 저택에 유인원들에게 나타났고 달 표면에도 나타났었던 예의 그 높이 4m의 정교하게 제작된 검은 비석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 사이 우주인의 분신인 60대 노인은 더욱 늙어 임종을 눈앞에 둔 채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다. 서서히 이 장면이 사라지면서 침대 위의 노인은 죽어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에 이제 막 형상을 갖추기 시작한 태아가 양수 가득 찬 풍선 같은 구슬 속에서 빙글빙글 돌며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휴식시간까지 있는 2시간30뿐 짜리 긴 영화는 영화가 시작할 때처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같은 음악을 쿵쾅대며 막을 내린다.

이 정교하게 다듬어진 높고 검은 비석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풀어야 할 화두임에 틀림없다. 비석에는 아무 글자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비석은 각인된 문자가 아니라 직육면체 형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그 모습 자체가 메시지였다. 400백만 전의 유인원들에게도, 우리 현생 인류에게도 또 시공을 초월한 우주의 끝에서도 다시 만나는 이 비석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영화를 보면 유인원들이 처음으로 손에 잡았던 도구인 동물의 뼈와 이 뼈가 하늘로 튕겨 올라가면서 순간 화면이 바꾸며 나타나는 우주선 사이에는 외관상의 분명한 유사성이 존재한다. 우주선은 진화한 인류의 도구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런 외관상의 유사성은 인공지능 컴퓨터 ‘HAL9000’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HAL 역시 검은 비석처럼 직육면체의 얇은 비석처럼 생겼다. 그러면 영화가 던진 화두는 이게 다일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비극적 미래를 그린 것인가? 그러면 우주인이 자신의 다 늙은 미래 모습을 본 것과 다시 태아로 돌아간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니체가 ‘짜라투스트라’에서 말한 바 영겁회귀(永劫回歸)의 세계를 말하는 것일까?

영화는 이렇게 질문만 하고 답은 줄듯 말듯 주지 않고 끝난다. 하지만 화두란 본시 그런 것 아닌가. 그래서 높이 4m가 넘는 거대한 크기의 정교하게 마제된 검은 비석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을 여행하는 듯한 마지막 5분간의 화려하고 신비한 영상과 태아의 탄생을 연결시켜 봐도 답은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또 비록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이미지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영화가 이런 초보적인 생물학을 보여주자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느닷없이 나타난다, 검고 크고 정교한 비석은. 이 이유 없는 출현,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는 비석의 출현, 이것이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를 통해 던지는 화두일 것이다. 하나의 막일 수도 있고 태양 질량의 수십억 배나 된다는 블랙홀의 단단한 심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검고 단단한 화두의 본질은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화두로 인해 우리는 참으로 많은 질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화론에서부터 시공간도 휘어질 수 있다는 상대성 원리를 거쳐 시공간의 역전현상까지. 또 우주와 생명의 기원과 관련된 모든 의문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생각의 대상으로 삼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지금 여기서”의 인간 의식 현존까지. 화두는 불교 전유물이 아니다. 잘 만든 영화는 언제나 화두를 던진다. 사실, 영화에 등장하는 검고 정교하게 만든 비석은 먼 옛날 선사인들의 선돌(menhir)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선돌에서 건축과 석조미술이 나오지 않았는가. 부처님도 이 돌 속 어딘가에 숨어 계시다가 중생들이 가여워 스스로 마애(磨崖)하시고 현현(顯現)했을 것이다. 유인원의 먼 후손일지도 모르지만 수보리는 영화 속의 검은 화두를 이렇게 풀어본다.  

정장진 문화사가 jjj1956@korea.ac.kr

[1263호 / 2014년 10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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