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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김재영 청보리 법사

“부족하고 아픈 나를 사랑할 때 자비의 마음 싹틀 것”

▲ 김재영 법사는 “끊임없이 변하는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보며, 바르게 아는 것이 바로 부처님을 닮아가는 삶, 행복한 삶”이라고 강조했다.

‘마음이 모든 정신적인 상태들을 앞서 나간다. 마음이 우두머리이다. 그것들은 모두 마음이 만든 것이다.’

죽음의 공포 불법으로 극복해
문화 접목 포교로 교계 새바람
동덕여고 불교학생회 등 창립
부처님 닮기 붓다스터디 전개

뽀얀 먼지 뒤집어 쓴 낡은 책에 심장이 뛰었다. 커다란 망치가 둔부를 때린 듯한 강렬한 충격 그리고 이어진 환희심. 지난 10여년간 커다란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무겁게 짓눌렀던 검은 그림자는 찰나에 사라지고 그 자리엔 광명(光明)이 가득했다. 방황과 불안, 고통의 원인이 됐던 ‘죽음의 공포’는 ‘법구경’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시원스레 씻겨 내려갔다. 스물아홉 청년은 그때부터 무작정 부처님 삶을 따랐다. 늦게 시작했으니 부처님 법 배우느라 날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인연 있는 이들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홍포하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지 반세기, 어느덧 머리에는 서리가 내렸다. 이제는 건강을 돌보고 잔잔하게 지나온 날들을 관조(觀照)해야 할 나이지만 여전히 부처님을 닮기 위해, 그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전법의 길에 서있다. 아직도 가아할 길 멀기에 전법의 끝자락을 표시하는 이정표는 보이지 않는다. 청보리 김재영(77) 법사의 삶이다.

“1970~1980년대 문화를 통한 포교활동으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새로운 불교를 제시했다. 젊은 층의 참여는 불교계의 변화를 이끌어냈고, 사찰에 어린이·청소년·청년법회가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50여년간 청소년·청년포교에 매진하며 불제자의 삶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도피안사 주지 송암 스님)

“선생님이자 동료교사이며 부처님 품으로 안내해준 법사님으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제자들에게 교과목은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을 하나라도 더 전해주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은사다. 덕과 믿음으로 제자들을 감싸며 재미있는 불교, 즐거운 불교, 실천하는 불교를 심어주셨다.”(손인희 전 동덕여고 교감)

어머니에 의해 부처님과 연을 맺었다. 가끔 어머니를 따라 마산포교당(현 정법사)을 찾으면 고암 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늘 맑은 웃음으로 맞아주는 푸근한 스님이 좋아 학생법회에 가입했다. 고등학생 때는 학생법회 회장도 맡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사범대 역사과에 입학했다. 주위의 기대에 어긋남 없는 ‘모범생’ 그대로였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늘 두려움이 가득했다. 불안했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불현듯 ‘죽음이란 무엇인가’ 의문이 일더니 알 수 없는 공포에 손과 발이 떨렸다. 잠도 이루지 못할 만큼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공포에 숨을 쉴 수도 없었다. 죽을 것만 같았다. 무작정 벗어나기 위해 공부에, 학생법회에 매달렸다. 대학 진학 후 해병대 장교로 의무를 다하고, 동덕여고 역사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겉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지만 내면의 불안은 여전했다. 늘 불안 속에서 허우적댔다.

 
“마음이 불편하니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질 못했어요. 항상 부산스러웠지요. 부처님 법을 처음 만난 날, 그날도 도서관에 볼일이 있어 갔던 건 아닙니다. 이리저리 방황하다 발 닿은 곳이 학교도서관이었고, 우연히 먼지 쌓인 책 한 권을 집어 들게 됐죠. 그게 ‘법구경’이었습니다. ‘마음이 모든 정신적인 상태들을 앞서 나간다’는 첫 문장을 읽는 순간 지금껏 엉겨있던 끈적끈적한 응어리가 벼락을 맞은 듯 씻겨 나갔죠. 시원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했죠. 그렇게 법문을 듣고 불교활동을 했으면서도 참 가르침을 못 보았다니….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선입견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두려움과 공포에 마구 끌려다녔던 거예요.”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경전과 불서는 모두 구해 부처님의 삶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탐독했다. 동국대학원 불교학과에 진학해 김동화 박사를 사사(師事)했다. 본연의 업무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소홀할 수는 없었다. 담당 과목이 역사이다 보니 불교를 깊이 있게 공부하면서 들려줄 내용이 더욱 풍부해졌다. 재미와 존중과 배려로 지도하니 학생들이 먼저 손을 내밀며 다가왔다. 1970년 청소년포교의 새로운 장을 연 ‘동덕여고불교학생회’가 창립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다.

“반신반의했어요. 불교, 솔직히 재미없잖아요.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재미있고 즐거워야 관심을 가져요. 전통은 유지하되 재미와 즐거움을 더했습니다. 노래와 춤, 연극, 만화 등 아이들이 좋아할 내용은 모두 가져다 접목했어요. 그리고 아이들 스스로 자유롭게 만들어가도록 했습니다. 부처님을 주제로 한다면 모든 것을 허락했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겁니다. 전교생의 절반이 넘는 750여명이 불교학생회에 가입하겠다고 찾아왔죠.”

그의 전법(傳法)은 동덕여고 울타리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서울 대원정사, 청룡사 등 사찰 학생법회가 개설될 수 있도록 마중물이 되었다. 불자청소년들이 학교와 사찰에서 갈고닦은 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무대도 열어 주었다. 1971년부터 시작된 ‘연꽃들의 행진’이 바로 그것이다. 불자청소년들의 축제인 ‘연꽃들의 행진’이 열리는 날이면 학생들과 스님 그리고, 구경 온 불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000명을 수용하는 대학 강당이 가득 찼다. 어린 학생들의 공연 모습에서 불교의 미래와 가능성을 발견한 스님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법당은 엄숙하고 경건해야 한다는 불교계의 고정관념에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동덕여고, 대원정사, 청룡사 등의 학생법회 인연은 졸업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청년불자모임 ‘청보리’가 결성됐다. 그러나 ‘청보리’라는 이름만 존재할 뿐이다. 처음부터 조직이나 단체를 구성할 생각이 없었다. 민들레 홀씨가 바람을 타고 내려앉아 싹을 틔우듯 청년불자들이 청보리를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푸른 보리의 인연을 꽃 피우길 바랐기 때문이다. 다만 그리운 얼굴들을 만나고 부처님을 배우기 위해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고 있다.

“1999년 정년퇴임을 할 때도 동덕여고불교학생회는 재학생 500여명이 가입할 만큼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여기에는 광덕, 석주, 정무, 무진장 큰스님을 비롯해 서창업, 반영규 선생 등 많은 분들의 동참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학생법회를 거쳐 간 아이들이 1만여명에 이릅니다. 대학에 진학해 불교학생회를 조직하거나 대불련 등을 통해 불교활동에 동참한다 합니다. 여전히 많은 청보리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꽃을 피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청보리 역할은 충분합니다.”

김 법사의 전법행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부처님 가르침을 펼쳐 보이듯 ‘붓다스터디운동’이라는 새로운 전법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해 청보리 회원들과 인도 8대성지를 순례하며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10부작 영상작품 ‘붓다 석가모니’를 제작했다. 그냥 영상기록물이 아니다. 탄생에서 열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의 생애를 공부하고 함께 토론하는 학습용 교재다. 지난 9월 서울 장충동 우리함께빌딩에서 첫 번째 시사회 겸 대중스터디가 개최됐고, 10월28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두 번째 대중스터디가 열린다.

“불교의 중심은 부처님이 돼야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한국불교는 참선, 위빠사나, 염불, 간경 등 방편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방편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불교의 본질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붓다스터디는 부처님과 법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일이 불교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불교공동체운동의 씨앗을 퍼뜨리는 작업입니다. 붓다스터디운동은 불교를 되살리고, 혁신과 연대를 밝히는 새로운 전법운동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그는 붓다스터디를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느 곳이라도 달려가 돕겠다고 했다. 또 교계 단체 지도법사들을 초청해 영상교재 ‘붓다 석가모니’을 전하고 붓다스터디 동참을 권선할 계획이다. 부처님과 가르침 안에 행복의 길이 있음을 확산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처럼 살려 노력해야 합니다. 천분의 일이라도 그렇게 살면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대상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보며, 바르게 아는 것이 바로 부처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무상을 이해한다면 집착하고 경쟁할 대상이 사라집니다. 삶이 행복해지는 이유입니다.”

‘오늘의 나는 지난날 내 행동의 결과다. 오늘의 내 행동은 내일 나를 이루는 바탕이요, 내일의 나를 만드는 기반이다.’ ‘아함경’의 핵심 가르침이다. 행복에 겨워 즐거워하는 나도, 아픔에 고통스러워하는 나 역시 ‘나’일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떠한가? 지치고 힘겨워 하는 나에게 위로 한마디 건넨 적 있는가? 그렇지 않다. 김재영 법사가 소소(少笑)를 짓는다. “나와 함께 남에 대한 일체의 자비와 나눔은 나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에서 비롯된다”는 진언을 남긴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64호 / 2014년 10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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