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불교에 어울리는 말은
오늘의 불교에 어울리는 말은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4.10.13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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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OO사회라는 말이 유행이다. 사회적인 현상들을 한 단어에 집약해 드러내는 이런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그랬던 것이 2012년 ‘피로사회’라는 책이 등장하면서 OO사회라는 조어가 사회일반에 확산됐다. 특히 올해 4월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형편없는 민낯과 함께 30년 전 울리히 백이 처음 거론했던 ‘위험사회’라는 조어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사회 앞에 붙는 조어는 시대적인 상황이나 아픔이 응축돼 있다. 그래서 시대를 읽는 키워드이면서 동시대의 사람들이 함께 쌓은 공업이기도 하다. 시대를 거슬러 사회 앞에 붙은 조어가 평화로웠던 때는 드물다. 피로사회, 위험사회, 알바사회 등에서 볼 수 있듯 사회의 모순이 집약돼 있다. 최근에는 갈수록 험악한 조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만큼 우리가 처한 사회적 모순들이 격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삶은 고(苦)라고 외쳤던 부처님의 말씀을 조어 속에서 확인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사회현상 한단어로 집약한 조어
시대상황이나 아픔 응축돼 있어

후대에 선거불교 금권불교라고
조롱하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워


역사적으로 ‘명랑사회’ ‘정의사회’ ‘공정사회’ 같은 조어들도 있었다. 명랑사회는 박정희 정권 때 등장했다. 정의사회는 전두환 정권 때 만들어졌다. 법과 인권을 무시하고 국민을 억압하던, 그러면서도 스스로 부패했던 독재정권이 우울한 국민을 향해 명랑과 정의를 외쳤으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두려움 속에서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야 했을 당시의 고단한 삶이 아프다. 그리고 가장 가깝게는 이명박 정권의 공정사회가 있다. 온갖 편법과 거짓을 동원해 대기업에 삽을 쥐어주고 멀쩡한 4대강을 국민의 혈세로 파헤쳤던 이명박 정부의 구호 역시 낯간지럽기는 마찬가지다.

사회를 한 단어로 규정하듯 불교를 한 단어로 규정하는 조어도 없지는 않다. 불교가 국가와 왕실의 보호를 받던 과거에는 호국불교, 일제에서 벗어나 우리불교의 모습을 되찾을 때에는 전통불교가 회자됐다. 1980년대 민주화 열기가 전 국토를 뜨겁게 달굴 때에는 민중불교, 대중불교라는 이름으로 민주화에 동참했고 1990년 이후에는 참여불교, 실천불교가 중요한 조어로 떠올랐다. 특히 1994년 정부로부터의 예속관계를 청산하고 종단의 민주화를 일궈내고자 했던 당시는 자주불교가 가슴에 사무쳤다. 그리고 최근에는 명상의 열기를 타고 수행불교, 생활 속에서 불교를 실천한다는 의미의 생활불교도 거론되고 있다. 불교에 붙은 조어들도 사회에 붙은 조어들처럼 불교가 처한 시대적인 상황을 담고 있다. 호국불교에서는 국가와 결탁하거나 눈치를 봐야했던 시대의 굴곡이, 민중불교에서는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게 싸웠던 불자들의 결기가 느껴진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불교일까? 얼마 전부터 법륜, 혜민, 정목 스님 등 사회적 아픔을 치유하는 힐링법사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강연으로, 책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기에 국민멘토라고도 불린다. 이런 점들을 살펴본다면 현재의 한국불교는 힐링불교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 김형규 부장
그러나 종단이 처한 현 상황들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는 불교에도 쓴 소리가 담긴 조어들이 등장할 개연성이 높다. 스님들이 정치적인 견해로 편을 가르고 세간을 능가하는 각종 추문과 사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후대에는 이 시대가 선거불교, 폭력불교, 종권불교, 계파불교, 금권불교 등으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불교에는 과연 어떤 조어가 어울릴까. 종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종권다툼에 여념이 없는 스님들이 한번은 곰곰이 되짚어봤으면 한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65호 / 2014년 10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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