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신윤복, ‘문종심사’
38. 신윤복, ‘문종심사’
  • 조정육
  • 승인 2014.10.1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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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갖진 못해도 나누며 사는 사람에겐 향기가 난다”

“보살이 세운 수많은 서원이 하나의 큰 서원 속에 포함되는데, 그것은 정법을 섭수하는 일입니다. 즉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승만경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도
절 찾는 여인들 막지 못해

타인의 수고로움 무시한 채
대다수가 ‘내 행복’만 기원

인과 얽힌 세상 이해한다면
이웃 위한 기도로 나아가야

▲ 신윤복, ‘문종심사’, 조선 후기, 종이에 색, 28.2×35.2cm. 간송미술관.

정년퇴임한 선생님을 만났다. 얼굴이 밝아 보였다. 생기가 넘쳐 교직에 있을 때 지치고 피곤해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만나자마자 당신의 근황을 얘기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 삼아 뒷산에 올라가 약수를 떠오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밥을 먹은 후 동사무소에서 개설한 저렴한 문화강좌를 듣고 오후에는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하다보면 하루가 짧다. 저녁에는 가끔씩 친구들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인다. 한 달에 한번 정도는 골프를 치러 가고 산악회 회원들과 산행도 떠난다. 자식들은 전부 결혼하고 부부만 살다보니 마음 내키면 원하는 곳으로 차를 몰고 훌쩍 떠날 수도 있다. TV에 맛집이 소개되면 그곳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크다. 이 모든 것이 몸이 건강해야 가능하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몸이 조금만 아파도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 보험을 여러 개 들어놨으니 치료비 걱정은 없다. 일 년에 한두 번은 멀리 해외여행도 떠난다. 부부교사로 정년퇴임을 해 두 사람이 받는 연금만으로도 충분히 생활은 하고도 남아 일부는 다시 저축을 한다. 탄력 있는 노년이다. 대다수 은퇴자들이 노후 대책이 전혀 안돼 있다는 보도는 그 선생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멋진 황혼을 보내는 것 같아 보기 좋았다.

머리에 쓰개치마를 걸치고 삼회장저고리를 입은 여인이 절에 도착했다. 말구종이 이끄는 말을 타고 몸종까지 거느린 것으로 봐서 지체 높은 양반집 여인일 것이다. 그녀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까. 고깔모자를 쓴 스님이 마중 나와 허리를 깊이 숙여 공손하게 절을 한다. 화주보살은 아니더라도 절에 큰 도움을 주는 신도임이 확실하다. 스님이 걸어 나온 듯한 절 입구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여인이 절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홍살문은 원래 절이 아니라 능이나 묘, 궁전, 관아 등의 정면에 세우는 문이다. 그런데 수원 용주사처럼 왕실 원찰로 위패를 봉안한 호성전(護聖殿)이 있을 경우에는 절에 홍살문을 세운 경우도 있다.

조선시대에 여인들은 자기 마음대로 바깥세상을 돌아다닐 수 없었다. 여염집 아낙네가 아니라 양반집 규수라면 그 정도는 더 심했다. 그만큼 폐쇄적인 사회였다. 예외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절에 기도하러 갈 때다. 여인들은 돌아가신 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절을 찾았다.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불공을 드리기 위해 절을 찾았고 가족 중 누군가가 병이 들었을 때도 절을 찾았다. 남편이 바깥으로만 나돌 때도 절을 찾았고 고부간의 갈등이 심할 때도 절을 찾았다. 억불숭유정책을 기본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 부녀자들이 절에 가는 것은 공식적으로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불교는 삼국시대부터 이 땅의 여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종교였다. 여전히 많은 여인들의 가슴 속에 깊은 의지처로 남아 있었다. 아무리 강경한 유학자들이라 해도 왕실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틈만 나면 절에 기대어 마음을 달래고자 했던 여인들의 바람을 감히 어쩌지 못했다. 여인들에게 절은 기도처이자 휴식처였고 상담실이었다. 지금도 절에는 여인들이 많다.

‘문종심사(聞鐘尋寺):종소리를 듣고 절을 찾다’는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에 들어 있는 작품으로 풍속화가 신윤복(申潤福,1758~1817 이후)이 그렸다. 왼쪽 위 빈 공간에는 다음과 같은 화제(畵題)가 적혀 있다.

“소나무가 많아 절은 보이지 않고, 인간 세상에는 다만 종소리만 들린다(松多不見寺, 人世但聞鐘).”

나 또한 엊그제 절에 다녀왔다. 수원에 있는 용주사였다. 비록 말 대신 승용차를, 말구종 대신 남편이 운전한 차를 타고 갔지만 절에 가는 마음은 그림 속 여인과 다르지 않았다. 용주사 대웅보전은 김홍도가 그린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는 역사적인 장소다. 대웅보전에 앉아 금강경을 독송했다. 환희롭고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전각에서 법문이 끝난 듯 갑자기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거의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들어오기가 무섭게 삼배를 하더니 그대로 나갔다. 보시함에 돈을 넣는 사람도 있었다. 거의 약속이나 한 듯 행동이 비슷했다. 그들은 무엇을 기원하면서 절을 하고 보시금을 넣었을까. 문득 궁금했다.

승만부인이 다시 부처님 앞에서 세 가지 큰 서원을 세웠다.

“부처님, 저는 진실한 서원으로 수많은 중생이 편안하고 안온하도록 힘쓸 것입니다. 이 선근으로 어떤 세상에 태어나든지 정법의 지혜 얻기를 발원합니다. 이것이 첫 번째 서원입니다. 제가 정법의 지혜를 얻은 후에 싫증내지 않고 중생을 위해 법을 설할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서원입니다. 제가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고(攝受正法) 육신과 생명, 재물을 보시해 정법을 수호하고 지켜나가겠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서원입니다.”

부처님께서 승만부인의 서원을 듣고 말씀하셨다.

“승만부인의 세 가지 서원은 보살들의 수많은 서원을 모두 포괄하고 있다. 이 삼대원(三大願)은 매우 광대하고 무변하다.”

승만부인이 부처님께 말했다.

“보살이 세운 수많은 서원이 하나의 큰 서원(一大願)에 포함되는데, 그 것은 정법(正法)을 섭수(攝受)하는 일입니다. 즉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진실로 큰 서원입니다.”

부처님께서 승만부인을 찬탄하셨다.

“세 가지 큰 서원 중에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은 과거,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셨고, 미래의 부처님이 설할 것이다.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공덕이 매우 많으며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다.”

‘승만경(勝鬘經)’에 나오는 내용이다. 재가신자인 승만부인은 부처님께 ‘보광여래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여인이다. 남성 위주의 초기불교교단에서 여인은 출가하기도 힘들었다. 성불하기 위해서는 남자 몸으로 한 번 바뀐 다음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승경전인 ‘승만경’에서는 여인인 승만부인이 부처님께 직접 수기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설법까지 하고 있다. ‘유마경’이 남성재가자인 유마거사가 설한 경전이라면 ‘승만경’은 여성재가자가 설한 경전으로 짝을 이룬다. 두 경전은 재가자도 출가 수행자처럼 부처님께 수기를 받고 성불할 수 있다는 여래장(如來藏) 사상이 녹아 있다. 여래장은 일체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이다.

정년퇴임한 선생님의 모습은 보기 좋았다. 그런데 뭔가 조금 아쉬움이 남았다. 넉넉하고 여유로워 보였지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삶이었기 때문이다. 여유를 넘어 풍족해 보이기까지 한 그 분의 삶에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은 철저히 배재되어 있었다. 돈이 없어도 이웃과 나누며 사는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향기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 그 작은 아쉬움이 의외로 넓어 보였다. ‘앞만 보고 달려 온 세월’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마음껏 즐기며 사는 자세도 결코 나쁘지 않다. 시쳇말로 남을 귀찮게만 하지 않아도 도와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이라면 그 선생님은 아주 훌륭하다. 내가 번 돈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항의해도 딱히 대꾸할 말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내가 번 돈은 나 혼자 번 돈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도움 속에서 살아간다. 배고플 때 내 배를 채워준 쌀은 내가 수확한 것이 아니다. 농부는 모내기부터 타작까지 나를 대신하여 수고한다. 나는 그저 돈 몇 푼으로 그 수고로움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뿐이다. 그렇다하여 농부의 수고로움에 대한 감사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줬기 때문이다. 내가 지불한 돈의 수백 배를 받는다 해도 나는 쌀 한 톨 만들어낼 줄 모른다. 내가 일터로 가기 위해 타는 지하철도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대신 해 땅을 파고 철로를 깔고 차량을 운행하고 신호등을 설치해 내가 이용하게 해줬다. 나는 단지 티켓을 사 그 수고로움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만 그것으로 전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줬기 때문이다.

나를 대신해 수고한 사람이 어찌 농부나 철도원뿐이겠는가.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이 시대 모든 사람들이 수고한 사람이다. 결국 나는 내 모든 이웃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지 대가를 지불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번 돈은 오로지 나의 것으로 생각한다. 이웃의 보살행이 나의 삶과 상관없다 단정 짓는다.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지독히 상관있다. 당장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가 일주일만 나타나지 않아도 나의 삶은 오물 투성이로 뒤범벅된다. 그러니 내 이웃이 아프면 내가 아파야 한다. 아니, 아플 수밖에 없다.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옆집에서 가스가 폭발하면 우리 집까지 그 영향이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 할 공업(共業) 중생이다. 손가락이 아프면 온 몸이 아픈 한 몸이다.

절에 가서 우리는 무슨 기도를 할까. 무엇을 위해 치성을 드리고 누구를 위해 불공을 드릴까. 우선은 나를 위해 기도한다. 그리고 내 가족과 친구들이 잘되기를 기도한다. 말을 타고 절을 찾은 그림 속 여인의 기도 또한 남편 차를 타고 용주사를 다녀 온 나의 기도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기에 멈추지 말고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자는 뜻이다. 내 가족까지만 포함된 기도의 테두리를 나의 이웃까지 넓혀주는 것. 그것이 바로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일’로 ‘정법을 섭수하는 것’이다. 승만부인이 세운 세 가지 큰 서원에는 이웃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보살심으로 충만하다. 나만을 위한 삶에 내 이웃까지 포함시켜주는 것이야말로 승만부인처럼 사는 것이다. 절에 가서 절하고 보시금내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보살행이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65호 / 2014년 10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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