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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보광 스님

일심으로 수행하고 지혜를 체로 삼아 자비를 나누어라

 
일본의 조동종 개산조 도겐(道元, 1200∼1253)선사가 쓴 ‘정법안장(正法眼藏)’은 세상에 나온지 70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선의 나침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정법안장 95권’ 전권을 한국어로 완역한 책은 없다. 그 연유야 확연히 알 수 없지만 95권이라는 방대함만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데 ‘도겐의 선지와 사상’까지 통찰할 수 있어야만 읽어낼 수 있으니 번역을 한다는 게 그리 녹록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 병을 고치기 위해
초등학교 6년때 관음기도
청년시절 지장기도 매진
정토연구·염불의 길 걸어

日유학 중 정법안장 인연
95권 한글완역 불사 원력
수행 자체가 깨달음 현현
과정중시 ‘도겐사상’ 독특

정토의 견불·참선의 견성
알고보면 같은 경지일 뿐
정토사 만일결사 주도하며
일념일상 정진 의미 설파

교수로서 법음 전하는 일
모두 불보살님 가피 덕분
보은 위해 전자불전 운영
정토사 재산 대각회 귀속

‘정법안장’ 전권 완역 원력을 세워놓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인물은 필자가 알고 있는 한 현재 딱 한 명이다. 1993년 1학기부터 ‘정법안장’을 대학원 석박사 과정 교제로 선정한 후 번역과 주석을 토대로 강의해 오고 있는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 보광 스님이다. 이미 ‘역주 정법안장 강의’ 두 권을 세간에 선보였다. 제1권은 원본 95권 중 1권∼10권에 해당되며, 제2권은 원본 11권∼17권에 해당된다. 현재 보광 스님 교단에서 다루고 있는 부분은 원본 73권이다. 1권(2006년)에 이어 2권(2012년)이 나오는데 꼬박 6년이 걸렸다. ‘정법안장’을 10권에 모두 담는다 가정해도 현 흐름대로라면 거의 50년에 이르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광 스님 생전에 가능한 일일까?

“원력을 세웠으니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보광 스님이 도겐 스님과 처음 인연을 맺은 건 1981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 때였다. 어느 날 한 서점에 들렀는데 사진 한 장이 벽에 걸려 있더란다. 유심히 살펴보니 ‘도겐 선사’ 사진 아닌가! 도겐 선사를 향한 일본인들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보광 스님은 ‘정토사상’을 연구하면서도 틈나는 대로 ‘정법안장’을 펼쳤다. “선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을 타파할 수 있었던 건 ‘정법안장’ 덕분”이라고 스님은 단언한다.

“도겐은 달마의 골수를 얻은 사람(혜가 선사)만 인정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달마의 가죽(도부 선사)과 살(총지 비구니), 뼈(도육 선사)를 얻은 제자도 중요시 합니다.”

선문염송에 등장하는 선문답 ‘달마의 골수를 얻다’ 한 대목을 예로 들어 도겐의 선지를 설파하고 있다.
“불성을 종자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종자를 잘 다스려(수행) 싹을 틔운 후 과실(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겐 스님은 불성을 깨달음의 잠재성이나 가능성으로 인식하지 않습니다. ‘종자와 꽃, 과실 모두가 불성의 현현’이라 봅니다.”

지금, 이 자리서 일심으로 수행하고 있는 그 자체를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깨닫지 못하면 중생일 뿐’이라는 말로 수행과정을 희석하려는 시도는 ‘정법안장’에서 산산조각난다. ‘수행이 곧 깨달음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계는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나’ 조차도 없을 때(도겐의 신심탈락(身心脫落)이나 삼매경지) 펼쳐진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다. 보광 스님은 ‘반주삼매경’과 ‘관무량수경’에 등장하는 ‘시심작불(是心作佛) 시심시불(是心是佛)’을 눈여겨보라 한다. 직역하면 ‘마음이 부처를 지으면, 그 마음이 부처다’가 된다.

“시심작불에서의 시심은 중생심입니다. 중생심[是心]이 부처가 되면[作佛] 그 마음[是心]이 곧 부처[是佛]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간화선에서는 ‘시심작불’은 생략하고 ‘시심시불’ 또는 ‘즉심시불(卽心是佛)’만을 강조하다 보니 ‘중생의 마음이 곧 부처’라는 오해를 낳습니다.”

도겐 스님도 ‘정법안장’을 통해 이 문제점을 철저하게 짚었는데, ‘착각도인’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작불’의 진의가 궁금하다.

“마음이 부처를 짓는다(작불)는 건 자신이 직접 ‘불성’, ‘부처’를 확인하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참선으로 ‘불성’을 확인하든, 염불을 통해 부처님을 친견하든 둘 중의 하나는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열반으로 가는 정진과정 동안 후퇴하는 일이 없습니다. 저 역시 부처님을 친견해 궁금한 것을 여쭈어보려 합니다.”
그렇다면 염불수행에 있어서의 ‘부처님 확인’ 즉, 작불(作佛)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보광 스님은 ‘정토삼부경’과 ‘반주삼매경’에 근거한 염불삼매와 ‘견불(見佛)’의 의미를 설파했다.

“정토교에서는 견불(見佛)과 견성(見性)을 같은 경지인 깨달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부처님을 보면 부처님 마음을 본다(觀佛身故 亦見佛心·관불신고 역견불심)’는 말은 여기에 기인합니다. 또한 염불삼매 속에서 부처님을 친견할 때 자신이 의심나는 것을 여쭈면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하셨습니다. 무착 스님 역시 불보살을 친견하는 과정에서 ‘성 안내는 그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라는 게송을 얻었습니다.”

누군가 ‘부처님이 보인다는 것 또한 관념이나 마음 장난으로 만들어진 허상일 뿐’이라며 ‘그 마저도 내쳐야한다’면 어찌할까?

“눈앞에 형상으로 나타난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부처님 마음을 볼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 문수보살 친견하겠다며 오대산으로 간 무착 스님. ‘범부와 성인이 함께 있고 용과 뱀이 뒤섞여 있다(凡聖同居 龍蛇混雜·범성동거 용사혼잡)’며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을 설한 노인이 문수보살이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몰랐던 무착 스님이었다.

보광 스님은 1982년 경기도 청계산 자락에 정토사를 창건했다. 성도절이면 100일 기도 회향과 함께 3000배를 해오던 정토사 사부대중은 2000년 6월 만일염불결사를 시작했다. 동참한 사부대중은 매일 1000번 이상 ‘나무아미타불’ 독송과 108배를 올려야 하며, 1000원 이상을 어디엔가 보시해야 한다. 만일결사 회향일은 2027년 10월22일이다. 길고 긴 여정이다. 왜 만일결사일까?

“중국과 일본은 몇 독을 하느냐 하는 수량염불에 무게를 두고 있는 반면 우리는 100일, 1000일 등 날자 중심의 일수염불이 유행했습니다. ‘아미타경’에 ‘칠일 일심불란 칭아미타불’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어느정도 해야 일심불란이냐는 물음이 생겼습니다. 당나라 도작 스님은 아미타불 염송을 ‘매일 7만번씩 하라’ 했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콩을 옮겨 가며 실천했고 급기야 염주까지 만들었습니다. 그의 제자 가재 스님은 ‘7일 동안 백만번의 염불’을 하라 했습니다. 반면, 거의 동시대의 신라 원효대사는 칭아미타불을 ‘1일에서 3일 동안 지속하면 하품극락, 4일에서 7일하면 중품극락, 8일에서 10일 동안 지속하면 상품극락에 간다’했습니다. 도작과 원효의 주장에 따라 대중의 신앙형태가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만일결사 또한 원효 스님의 일수염불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자는 정진에 대한 의지표명일 것이다. 대원력인 셈이다. 보광 스님이 정토사상을 연구하며 염불수행에 정진하는 건 어쩌면 숙연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어머님이 병환으로 누웠는데 백약이 무효했다. 추운 겨울, 단석산 백석암으로 올라가 ‘잠도 자지 말고 오로지 관세음보살을 염해라’ 한 암주스님의 말씀을 그대로 실행했다. 12월 초하루에 시작한 기도는 7일이 지나며 성도절에 이르렀다. ‘추웠다는 생각 보다는 한밤중에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질 것 같아 걱정했다’는 기억만 생생하다는 보광 스님이다.

보광 스님은 “성도절 회향 후 하산하는데 마을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소 우는 소리 등의 모든 소리가 관세음보살의 염불소리로 들렸던 적이 있다”며 “이 현상은 이틀간 지속됐다”고 회고한다. 어린 나이에 올린 염불기도였지만 일심으로 진행됐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 이후 어머님은 완쾌했고 지금도 생존해 계시다.

출가 후 대학 2학년 당시 보광 스님은 경주 중생사에서 15일 동안 눕지도, 앉지도, 잠을 자지도 않으며 지장기도 철야정진을 한 적이 있다. 7일이 고비였다. 한밤중 요사채의 코고는 소리, 잠꼬대 소리까지 들려왔지만 7일이 지나면서 소리에 끌리지 않게 됐다. 10일을 넘어서니 잡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회향하고 보니 몸무게는 10kg이나 줄어 있었다.

“피골은 상접해 있는데 마음엔 분명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마음이 가볍다’, ‘마음이 맑다’라는 선지식들의 일언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의 관세음기도와 청년시절의 지장기도 체험이 정토염불 정진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임에 분명하다. 보광 스님이 염두에 둔 ‘부처님 마음’이란 어떤 것일까?

“차별 없는 자비 즉, 무연자비(無緣慈悲)로 모든 중생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보광 스님은 현재 인권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당시 “학생들의 자율의지를 믿어줘야 한다”며 두발복장 규제 완화를 주장해 관철시켰다. 밀양 송전탑 사건과 관련해서는 ‘탑이 세워진 자리는 물론 선로가 지나간 자리까지 보상해야 한다’는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보광 스님은 일익을 담당했다. 하지만 스님은 ‘인권은 곧 불성이요, 생존권’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시사하 듯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돌봐야 합니다. 자식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조건 기초생활수급자에 포함될 수 없다는 건 말도 안 됩니다. 그 아들이 부모 제대로 부양하는지부터 살펴 결정해야 합니다. 인간의 권리만 주장하는 것도 편견입니다. 함부로 자연을 파헤쳤습니다. 자연으로부터 뺏어왔던 권리도 이제 자연으로 되돌려 주어여 합니다. 동물의 학대를 멈추고 그 동물들의 권리도 지켜줘야 합니다.”

연기로 이뤄진 이 세상에서 생명의 존엄성은 차별 없이 지켜져야 한다는 뜻이다.

문화재청 근대문화재분과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보광 스님은 최근 용성 스님의 ‘조선글화엄경’을 비롯해 통도사 ‘마애아미타여래존상’, 진주 ‘의곡사 괘불’ 등 21건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했다. 2002년 2월 등록문화재가 시행된 이후 지금까지 등록된 불교 관련 문화재가 9건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실적이다. 보광 스님은 80건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보광 스님이 역동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불사 중 하나가 ‘용성 대종사 총서’를 발간하는 일이다. 18권의 ‘용성 대종사 전집’이 나와 있지만 새롭게 발견된 자료와 그간의 학술세미나를 통해 검증된 대각사상을 집대성해 총서를 내놓겠다는 원력이다. 용성 스님의 ‘불교대중화’ 원력을 은사 도문 스님을 거쳐 그대로 이어받은 셈이다.

보광 스님이 이 시대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이냐 묻자 ‘지체비용(智体悲用)’이라 전했다. ‘지혜를 체로 삼고 자비를 쓴다’는 문구를 접한 건 처음이다. 그 출처가 궁금했다.

“제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지(智)에 편중되다 보면 종교로서의 불교는 온데간데없고 철학으로만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悲)에 편중되다 보면 불교가 자칫 ‘샤머니즘’이나 ‘신비주의’로 흐를 수 있습니다. 지용을 갖춰 법을 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스님들은 이제 내전은 물론 외전까지 뚫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 지혜를 바탕으로 차별 없는 자비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리라.

▲ 보광 스님은 연지로 유명한 정토사를 미련 없이 대각회에 귀속시켰다.

보광 스님은 일본유학 당시 학비가 부족해 공부를 중단하려 했다. 그 때 문부성 장학생으로 선발돼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39살에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보광 스님은 일본 인도학불교학회가 젊은 인재들에게 수여하는 학술상을 받는 크나 큰 명예도 얻었다. 귀국해서는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들에게 불교학을 전하고 있다. 이 모든 게 ‘불보살님의 가피’라고 확언한다. 전자불전연구소를 가동해 불음을 전파하려는 일이나, 500억원 대의 정토사를 대각회에 ‘미련 없이’ 등기 귀속시킨 것도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한 작은 실천’이라 전하는 보광 스님의 만면에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1265호 / 2014년 10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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