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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일상에서 느끼는 교훈

기자명 하림 스님

오랜만에 은사 스님을 위해 시간을 내었습니다. 어찌 보면 처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른 일에는 시간을 잘 내면서 정작 스님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 잘할 것이라는
자만심으로 생활하지만
실수투성인 내모습 보며
부끄러움과 겸손을 배워

 
어린 저를 키우면서 애쓰셨을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저도 한 때 아이를 키워 볼까하며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이가 너무 가까이 올 것 같아 부담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강아지라도 키워 보고 싶다고 신도님들에게 조르면 모두들 고개를 흔듭니다. “누가 먹이고, 똥은 누가 치울 것이냐”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리고 대뜸 “스님이 하실래요?”라고 말합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 덜컹 겁이 납니다. ‘매일 어떻게 밥을 주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스스로 작아지고 맙니다.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데 아이를 키우는 일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생각이 듭니다. 새삼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들이 존경스러워 보이고 은사 스님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은사 스님은 인천에 있는 조그만 절에 계십니다. 등기가 없는 건물에 임야만 200평 남짓, 차도 들어가지 못하는 작은 동네의 끝에 사십니다. 그래도 종단에서 주지 재임을 받아야 하니 서류를 만들어 오라는 연락이 왔나 봅니다. 70세가 훨씬 넘은 노인이 되다보니 좀 귀찮으셨는지 그 서류를 대신해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랜만에 찾았습니다. 가는 길에 홀로 마당에 떨어진 은행을 씻고 계시는 80세의 할머니가 눈에 들어옵니다. 세월이 흘러도 목소리는 여전하고, 살뜰히 챙겨주는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등굣길에 만나면 자전거로 모셔다 드렸던 그 때를 지금도 기억하며 대견해 하십니다.

배가 고파 밥을 먼저 달라고 졸랐습니다. 노보살님이 밥을 하는 동안 동사무소를 다녀오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은사 스님께는 제가 알아서 하겠으니 신경 쓰지 마시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막상 관공서에 들르니 챙겨야 할 서류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꼼꼼히 확인했지만 역시나 빠뜨린 것이 있었습니다. 다시 절로 돌아가 스님의 여권을 가져 왔습니다. 이제 끝났거니 하고 총무원을 갔는데 이번에는 인감도장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급하게 퀵을 불러서 조계사까지 배송을 부탁했습니다. 직할교구 사무처에 들러 서류 작업을 하는데 여기서도 어떤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지 한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답답하고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결국 실무자의 도움을 받게 됐고, 이것저것 묻게 되었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예전에 누군가를 위해 도움을 줬던 내 모습이 떠오르며 그 종무원과 입장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글픔과 놀라움이었습니다.

서류를 모두 제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자가 왔습니다. “검은색 이어폰을 두고 가셨나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순간 또 한 방을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바보인가? 이래서 어떻게 일을 하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은 제대로 하고 있나’라는 반문을 해봅니다. 자신감이 떨어지는 느낌에 슬펐고, 한 편으로 ‘앞으로 내 주장을 많이 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겸손을 배웁니다.

남의 말을 잘 듣게 되는 나이가 이순(耳順)이라는데, 이제 몇 달 남겨두고 ‘왜 이렇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실수를 받아들이고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 저 감사하게 살라는 목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옵니다. 그저 사는 것만으로 너무 감사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65호 / 2014년 10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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