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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암스트롱 선생의 발자욱

시골 마을 운동회에서 모든 사람이 집중해서 보는 경기는 운동회 끝무렵 저녁 어스름에 벌어지는 이어달리기이다. 다른 경기는 한눈도 팔고 어디 다녀오기도 하면서 보다가 여러 선수가 이어달릴 때는 화장실이 간절하게 불러도 어지간하면 꾹 참고 보게 된다.

이어달리기의 특징은 첫 번째 주자로 나선 선수들의 등수가 경기가 끝났을 때의 등수와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세 번째 선수까지 꼴등으로 달리다가 마지막에 달리는 선수가 몇십미터 앞서있는 선수까지 추월하면서 골인지점을 향해 달려갈 때 추월하는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함성은 하늘 끝까지 높아지고 이등이나 삼등으로 달리는 선수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탄식은 추월당하는 순간 지구를 뚫고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푹푹 꺼지게 한다.

열 살까지의 삶이 첫 번째 달리기 주자이고 스무살까지가 두 번째 주자이고 서른살까지가 세 번째 주자이다. 다섯 번째 주자까지 신나게 잘 달리다가 여섯 번째 내 인생의 주자가 발가락 끝 하나만 삐끗해도 그만 난리가 나게 된다.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건강한 사람도 있다. 태어날 때부터 죽는 순간까지 신음소리를 내다가 그만 그렇게 마무리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린 시절에 비실대다가 중고등학교 다닐 즈음에 갑자기 키도 크고 건강해지면서 한참 잘 나가다가 대학에 입학해서 성분이 약간 다른 수분을 과다섭취하는 바람에 삼십대 사십대를 위장약으로 때우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가 다시 회복돼서 성분 다른 수분을 또다시 즐기다가 아예 편안하게 누워서 지내는 사람도 더러 보았다. 성분이 다른 수분 섭취와 기체 섭취와 또 하나가 있는데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화엄사상 공부를 할 때 한 번쯤 접하게 되는 게송을 읽어본다.

懷州牛喫草 (회주우끽초)
益州馬腹脹 (익주마복창)
天下覓醫人 (천하멱의인)
灸猪左膊上 (구저좌박상)

회주에서 소가 풀을 뜯어먹었는데 /
익주의 말이 그만 배탈이 나버렸네 /
천하에서 의원을 찾아내어 /
돼지의 왼쪽 허벅지에 뜸을 뜰지어다.

회주와 익주는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어서 비행기로는 금방 갈 수 있지만 달리기를 잘 못하는 사람은 몇 달을 잠안자고 달려야 겨우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의 소가 풀을 뜯었는데 다른 곳의 말이 배탈이 나다니 지금 무슨 개그콘서트냐고 물을 독자는 없겠지만 월스트리트의 증권바람이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은 실시간으로 배탈이 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어떤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 놓기도 한다. 잘되는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와 미미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 그놈의 경우의 수도 다양하다.

암스트롱 선생이 달나라에 발자욱을 찍는 바람에 틀림없이 우리지구촌 곳곳의 밀물과 썰물의 방향과 파도의 세기가 달라져 있을 것이다.

밀물과 썰물을 연구하는 사람을 혹 만나게 되면 ‘달표면에 찍힌 암스트롱의 발자욱이 대한민국 동해바다 속초해수욕장의 백사장 모래알 수에 미치는 영향 연구’라는 논문을 한 번 써보도록 권할 참이다. 달나라에서 제정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달나라 노벨발자욱상을 받는 논문이 될지 말지 알아서 무엇하겠는가.

한 번 살다 가는 우리 인생도 그 안에 이어달리기가 있는 마라톤이고 그 마라톤 이어달리기가 세세생생 이어지면서 보살행의 마라톤을 하는 중생도 있고 그 마라톤 선수의 발가락 틈에 서식하는 무좀의 마라톤을 펼치는 중생도 있다. 마라톤 선수가 비지땀을 쏟아낼 때 무좀은 풍부한 영양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생각을 할 것이다. 물도 마시고 때로는 단풍 마라톤 선수 옆에서 쉬면서 달릴 일이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65호 / 2014년 10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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