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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레옹

기자명 정장진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서 핀 참 사랑의 가치 발견하다

▲ 레옹이 사랑하며 화분에 심은 ‘아글라오네마’와 소녀 마틸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아글라오네마’를 진정 사랑하는 법을 가르친다.

‘명량’에서 충무공 역을 맡았던 최민식은 이제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배우가 되었다. 1700만 관객을 동원한 전무후무한 대기록의 주인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일이라도 되어 잠재관객수가 8000만, 9000만이 되는 어느 날 통일을 다룬 감동적인 대작이라도 나온다면 모를까, 1700만이라는 이 기록은 영원히 깨지지 않을 것 같다.

뤽 베송 감독의 느와르 영화
부패한 인간군상 속 주인공들
살인청부업 레옹·소녀 마틸다

레옹이 늘 챙기며 사랑한 화분
‘아글라오네마’에 담긴 메시지
총이 상징한 남성성과 결부돼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 내리도록 돕고 물 줘야해”

‘명량’이 한참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와중에 같은 배우 최민식이 출연한 뤽 베송 감독의 ‘루시’가 한국 관객들을 찾아왔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루시’ 흥행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시’는 적지 않은 관객들에게 기대에 못 미치는 작품이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왜 그럴까?

사실 ‘루시’는 뤽 베송의 전작들인 ‘그랑 블루’나 ‘레옹’에서 보여준 뤽 베송 특유의 영화 미학을 조금 놓치고 있지 않았나 의혹이 들기도 한다. 관객들은 영화를 오락으로 여기면서도 감동까지 받기를 원한다. 이 감동은 실컷 울 수 있는 신파조의 그것일 수도 있고 마음껏 웃어볼 수 있는 코미디여도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관객 대부분은 울음이나 웃음 보다는 영화가 전해주는 감동이 깨달음으로 이어지는 조금 무겁고 종교적이며 철학적인 것이어도 흔쾌히 받아들인다. 오락 그 이상의 무언가를 원하는 것이다. 1000만을 넘긴 영화들은 대부분 이렇게 “영화나 한 편 보지…”하며 오락을 기대하고 온 관객들에게 깨달음과 철학적 성찰까지 제공하는 영화들이다.

아무리 훌륭한 시인이나 작가라도 언제나 걸작을 내놓지는 못한다. 작품 완성도나 질이 대가의 이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출판사들은 대개 작품의 제목 보다는 시인이나 작가의 이름을 더 크게 인쇄한 표지를 사용하곤 한다. 이런 경우는 영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뤽 베송, 게다가 최민식…. 그래서 추석 연휴를 이용해 극장을 간 것이다. 하지만 작품은 기대에 못 미쳤다. 영화 비평가나 전공자들 시선 보다 더 정확한 것이 일반 관객들 반응이다. 민심이 천심이듯 관객들 반응은 언제나 새겨들어야 할 메시지인 것이다.

흥행은 이유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뤽 베송 감독의 ‘레옹’은 얼마나 멋진 영화였는가! 흥미로웠고 충격적이었으며 다시 보아도 좋았고, 그래도 무언가 아직 다 못 본, 무언가 깊은 의미가 숨어있는 듯한 영화가 바로 ‘레옹’이었다. 게다가, 조금 독특한 설정이긴 했지만 암흑가를 다룬 느와르 영화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불교식으로도 볼 수 있는 여지까지 갖고 있는 영화였다.

1995년에 개봉된 영화이니 ‘레옹’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 몇 가지 인상을 제외하곤 다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와르로 불리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면서 찌릿하게 전해져 오던 감동과 그 감동의 밑바닥에 흥건하게 고여 있던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는 것은 기억에 생생할 것이다.

‘레옹’은 대부분 잘 만든 영화들이 그렇듯이, 한 번으로는 제대로 이해가 안 되는 그런 종류의 영화다. 아마도 그래서 1998년, 2003년 재개봉되었고 여전히 인기를 누렸을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인기는 주인공 레옹이 쓰고 다니던 빵떡모자와 야릇한 매력을 지닌 안경으로 이어져 이 소품들이 한 동안 유행을 타기도 했었다. 레옹 모자, 레옹 안경이 그것인데, 필자도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 레옹 모자를 쓴 학생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기도 해서 “모자 좀 벗지?”했다가 “레옹 모잔데요”라는 핀잔 아닌 핀잔을 듣기도 했다. 뤽 베송 감독이 ‘루시’ 시사회에서 한국 관객들을 만났을 때도 예의 그를 좋아하는 팬들이 이 레옹 모자와 안경을 쓰고 무대에 올라와 뤽 베송에게 꽃다발 대신 영화 ‘레옹’에 나오는 화분을 전해 주었다고 한다. 오래 된 영화이지만 사람들 뇌리에 남는 몇 장면이 있다. 이 장면들을 회상해 가며 영화를 불교적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보자.

영화 ‘레옹’은 결코 불교 영화가 아니며 불교를 통해 해석할 여지도 거의 없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공간은 미국 뉴욕 맨해튼, 그 중에서도 리틀 이탈리아로 불리는 마피아 소굴이다. 인물들도 모두 살인청부업자, 깡패, 마약범, 부패한 경찰들이다.

▲ 살인청부업자 레옹과 소녀 마틸다 그리고 화분 ‘아글라오네마’.

그런데 총알이 난무하고 피가 튀는 영화이면서도 묘하게 영화 속에서 주인공 레옹과 12살 어린 소녀 마틸다 곁에는 늘 화분 하나가 있다. 오래 되었지만 아마도 이 장면은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아글라오네마(Aglaonema)가 심겨져 있는 이 화분은 사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두 주인공 곁을 지킨다. 이 깨지기 쉽고 값도 싼 허름한 화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끝까지, 수류탄이 터지고 굴뚝으로 도망을 하면서까지 화분을 보호하려고 한 것인가? 아글라오네마가 심어져 있는 화분에 대해 레옹과 마틸다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잠시 들어보자.

“그걸 무척 사랑하는군요. / 제일 친한 친구지. 항상 행복해 하고 질문도 안 해. 나 같지. 봐봐. 뿌리도 없거든 /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돼요. 내가 자라길 바란다면 나에게야 말로 물을 줘야죠.”

아직 레옹이 부패한 경찰이 이끄는 깡패들과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기 전, 같은 아파트에 거주하게 된 마틸다가 화분에 열심히 물을 뿌리고 가꾸는 레옹에게 질문을 하며 자신에게도 물을 주라고 한다.

보잘것없고 툭 치면 깨질 것 같은 평범한 화분이 레옹과 마틸다 사이에 있다. 이 있음 그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레옹’은 이 화분의 상징성을 통해 느와르 영화에 머물지 않고 전혀 다른 영화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12살 어린 소녀의 입에서 나온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돼요. 내가 자라길 바란다면 나에게야 말로 물을 줘야죠”라는 말을 무심히 흘려버리지 말고 새겨들어야 한다. 말하자면 영화 ‘레옹’의 아글라오네마 화분은 선불교의 선승들께서 면벽수련을 하실 때 던지는 화두(話頭)인 것이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조주 선사께서 “뜰 앞의 잣나무”란 대답을 하셨다는 일화는 불자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뜰 앞의 잣나무라니! 동문서답도 이런 동문서답이 따로 없다. 하지만 불성을 보는 것, 즉 견성(見性)을 수행의 핵심으로 하는 불자들에게 이 동문서답은 동문동답을 지나 달마가 왜 서쪽에서 오셨는지, 서문서답으로 인도하는 말 그대로 화두인 것이다.
사실 사는 게 그렇지 않은가. 삶의 깊이 속에는 동문서답 투성이 아닌가! 어찌 보면 사(死)는 생(生)의 화두이며 그 역도 진실일지 모른다. 깊고 오묘해 마주 볼 수조차 없는 연(緣)과 겁(劫)의 세계에서 우리 중생의 모든 움직임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며 시작조차 아니지 않은가! 동문서답이 오히려 답일 것이다.

화두를 동양인들이나 불교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도 속 좁다. 화두는 영화를 포함한 서양 현대 예술의 중심 기법이자 태도이고 주제이기도 하다. 서양의 추상화가 대표적인 예인데, 액션 페인팅 화가 잭슨 폴락이 그린 그림 제목은 ‘넘버 5’이지만, 제목과 그림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작품은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붓으로 물감을 마구 뿌려놓은 기이한 낙서에 지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 자체가 풀어야 할 “뜰 앞의 잣나무”인 것이다.

어려운 화두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영화를 보면서 아글라오네마 화분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화분의 뜻이 딱히 무엇인지 꼭 집어 말하지는 못했지만, 모두들 아주 흥미롭게 영화를 봤고 가슴으로 동감했으며 재개봉을 했을 때도 또 극장을 찾았다. 화두는 어쩌면 이렇게 삶 속에 녹아들었을 때 진가를 발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궁금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과연 말로 표현은 못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관객들이 깊게 이해를 한 아글라오네마 화분이라는 화두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법상종의 팔식(八識)이 어느 정도 답을 들려줄 수 있다. 팔식에 의하면, 아글라오네마는 모든 표상으로서의 존재를 낳는 근본식인 아뢰야식과 근원적 자아 집착 의식인 말나식(末那識)의 두 가지 심층심리에 의거해서 해석될 수 있다.

조금 더 풀어보자, 살인청부업자 레옹의 총은 남근 상징물로서 모든 어린 소녀들의 잠재의식 속에 깊이 숨어있는 금지된 욕망의 대상이다. 영화에서 마틸다는 복수를 위해 총을 쏘는 법을 배우려고 하지만, 이런 줄거리 밑에 숨어있는 것이 이 욕망의 다른 모습인 총, 즉 남근을 갖겠다는 것이다. 이를 남근선망(男根羨望)이라고 한다. 레옹과 마틸다는 도저히 서로 사랑할 수 없는 관계다. 마틸다가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레옹은 숨을 거두기 전 “너 때문에 삶의 의미도 알았고 살고 싶어졌어”라고 말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총이 있고 그리고 화분이 있는 것이다. 총이 상징적 남근이라면 화분은 여성성을 상징한다. 마틸다가 죽지 않는 한 화분도 깨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틸다는 “내가 자라길 바란다면 나에게야 말로 물을 줘야죠”, “정말 사랑한다면 공원에 심어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돼요”라고 말한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가서 마틸다는 공원으로 가 화분 속의 아글라오네마를 옮겨 심는다.
법상종 팔식(八識)에는 서구의 정신분석을 능가하는 참으로 놀라운 마음 살핌의 지혜가 들어있다. 이런 식의 팔식과 정신분석에 의거한 해석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면, 묻고 싶다. 영화 ‘레옹’에 대해 우린 어떤 해석을 할 수 있을까? 부패한 경찰과 미국 사회의 부패고리를 고발하는 영화? 이건 해석이 아니다. 뤽 베송은 감독부터 ‘레옹’의 화두를 다시 풀어야 한다. 감독도 자신이 제작한 작품을 다시 깊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작품은 작가 보다 위대하다. 

정장진 문화사가 jjj1956@korea.ac.kr

[1265호 / 2014년 10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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