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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불교

계절이 수상하다. 봄·여름·가을·겨울 뚜렷한 4계절이 이 땅의 자랑거리였는데 언제부터인지 봄·가을이 시나브로 소멸하고 있다. 맑고 상쾌한 봄가을은 줄고 무더위와 한파를 몰고 오는 독한 계절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고 보면 계절만 각박해져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심 또한 계절의 변화를 닮아가고 있다.

가을 찬 서리에 홀로 피는 국화
세속 달관한 수행자 풍모 담겨
절마다 국화축제로 향기롭지만
국화같은 스님들이 많아졌으면

갈수록 엷어지는 가을이라지만 절마다 가을이 가득하다. 전국의 크고 작은 사찰이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며 국화축제를 열고 있다. 국화는 가을을 상징하는 꽃이다. 절마다 총총걸음으로 사라지는 가을을 붙들고 있음으로 가을은 아직 우리 곁에 머물러있다.

서울도심 한복판 조계사에도 국화가 한창이다. ‘시월 국화는 시월에 핀다더라’는 멋들어진 이름으로 열리는 조계사 국화축제는 올해 4회째로 저물어가는 가을의 끝자락에 풍성한 추억을 선물하고 있다. 도량 곳곳에 심우도(尋牛圖)를 테마로 형형색색 물들인 아름다운 국화가 깨달음의 그림자를 좇는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다.

불교에서 국화는 남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국화는 봄이나 여름에 피는 대부분의 꽃들과 달리 가을에 꽃을 피운다. 모두가 낙엽으로 돌아가는 계절에 홀로 꽃을 피우는 고고함으로 세속의 영화로부터 달관한 수행자의 풍모가 엿보인다. 특히 추위에도 굴하지 않는 고고한 기개로 눈 속에 꽃을 내보내는 매화와 더불어 세한이우(歲寒二友)로 불린다. 서산 스님은 ‘재송국(載松菊)’이라는 시를 통해 국화를 심는 이유는 화초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색즉시공(色卽是空)의 도리를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고, 서정주 시인은 ‘국화 옆에서’라는 시에서 늦가을 피어나는 국화 한 송이에도 수많은 인고의 인연들이 얽혀있음을 이야기하며 불교의 연기론을 시로 드러냈다.

국화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는 수행자와 닮아있다. 시류를 거슬러 꽃을 피우는 모습은 세간에서 뛰쳐나와 출세간으로 몸을 던지는 출가의 정신과 맞닿아있다. 그러나 서산 스님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어렵게 피어낸 결실일망정 결국 가뭇없이 사라지는 국화를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생각마저도 결국은 집착임을 일깨우고 있다. 사찰들이 해마다 국화축제를 여는 이유도 국화에 담긴 이런 불교적인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일 것이다.

최근 조계종을 온통 뜨겁게 달궜던 종회의원 선거가 끝이 났다. 승패가 명확한 선거에서 승리를 위해 치열해지는 것은 승속의 구분이 없다. 서로 간에 허물들이 생기는 것은 선거가 가진 어쩔 수 없는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제 모든 허물을 참회하고 도량을 장엄한 국화를 보며 출가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한다.

▲ 김형규 부장
선거가 끝난 지금 조계사는 국화의 향연으로 그윽하다. 저물어가는 가을을 국화의 힘을 빌려 잠시 붙들어 놓을 수 있음이 행복하다. 새삼 곁에 아름다운 절이 있어 고맙다. 그러나 국화는 이제 곧 질것이다. 절은 떠난 가을을 대신해 차가운 겨울을 들일 것이다. 황량하고 시린 그 빈자리를 이제는 국화의 기품을 닮은 고결한 스님들이 채웠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국화보다 더 맑고 아름다운 스님들로 인해 더욱 청량하고 향기로운 가을이 도량에 가득하기를 기도하리라.

김형규 kimh@beopbo.com

[1266호 / 2014년 10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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