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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청동그릇

청동그릇을 다른 말로 유기그릇이라고도 하고, 놋그릇이라고도 한다. 요즘 놋그릇이 새삼 주목받고 있기도 하다. 놋그릇에 음식을 담아 놓으면 살균 작용으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지연시켜 줌은 물론 사람 몸에 이로운 작용도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그릇이 수요가 많지 않다 보니, 다소 비싸다는데 있다.

청동그릇의 가치는
음식 따라 달라지듯
내면 관찰과 통제가
아름다운 삶의 기본

우리가 청동그릇, 말하자면 놋그릇은 절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부처님전에 공양물을 올릴 때 사용되고 있다. 잘 닦여진 청동그릇은 반짝반짝 윤이 나면서 보기에도 참 좋다. 그리고 또 볼 수 있는 곳이 한식당이다. 여하튼 청동그릇은 정갈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그곳에 담긴 음식도 더 맛깔나게 보인다.

이런 청동그릇을 비유로 한 가르침이 경전에 전한다. 그 대략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벗이여, 예를 들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그릇이 깨끗하고 광채가 나더라도 그 안에 뱀이나 개나 인간의 사체를 담아 다른 청동그릇을 덮어 다시 시장으로 내간다면, 뭔가 귀중한 음식이 담겨 있다고 여겨 궁금해 하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는 혐오감을 느끼고 불쾌해지고 메스꺼워져서 배가 부른 사람은 물론이고 배가 고팠던 사람들조차 식욕이 달아날 것입니다. … 중략 … 벗이여, 예를 들어 시장이나 대장간에서 가져온 청동그릇이 깨끗하고 광채가 나는데 그 안에 맛있는 흰 쌀죽과 여러 가지 국과 반찬을 담아 다른 청동그릇을 덮어 다시 시장으로 내간다고 합시다. 궁금해 하던 사람들에게 그가 청동그릇을 열어 그 안의 내용물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배가 고팠던 사람은 물론이고 배가 부른 사람들조차 먹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Majjhima Nikāya, Anangana sutta 중에서)

위 경전은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문답을 나눈 내용 가운데, 사리뿟따 존자의 말씀이다. 이 내용이 나온 배경은 이러하다. ‘악하고 해로운 욕망을 버리지 못한 수행자가 겉으로는 탁발로 살아가고, 분소의를 입고, 나무 밑에서 거주한다고 해도 진실한 수행자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악하고 해로운 욕망을 버린 수행자는 비록 보시받은 좋은 가사를 입고, 공양받은 좋은 음식을 먹고, 마을 근처에서 머문다고 해도 청정한 삶을 수행자로부터 존경과 공양을 받을 것이다.’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설하면서, 전자를  뱀이나 개나 인간의 사체가 담긴 청동그릇에 비유한 것이고, 후자를 맛깔난 음식에 담긴 청동그릇에 비유한 것이다.

이는 우리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르침이다. 비록 겉모습은 수행자의 모습을 하더라도, ‘욕망에 찌든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누가 그를 존경하겠는가?’ 라는 것이다. 세속의 삶을 사는 재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 ‘예쁜 아내는 3개월, 착한 아내는 3년, 지혜로운 아내는 3대에 걸쳐 행복하다’이다. 아내 대신 남편을 넣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보기 좋은 청동그릇이 더욱 가치 있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음식이 보기 좋고 맛난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반짝이고 좋게 보이는 청동 그릇이라도 그 안에 담긴 음식이 혐오 음식이라면 누구라도 그 그릇에 손가락도 대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늘 ‘자신의 내면을 잘 관찰하라’고 말씀하신다. 욕망과 분노를 잘 관찰하여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삶이 주인으로서의 삶이며, 또 그렇게 사는 것이 진정한 아름다운 삶이라는 것이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1266호 / 2014년 10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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