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부상 스님의 돈
39. 부상 스님의 돈
  • 성재헌
  • 승인 2014.10.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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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가지려는 탐심이 모든 악업의 근원

▲ 일러스트=이승윤

배금주의(拜金主義, mammonism)의 병폐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 중에 최고는 무엇일까?”

길을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들고 물어도 다들 ‘돈’이라 대답할 것이다. 자신과 세상의 다양한 가치에 대해 한창 고민할 시기의 학생들조차도 ‘돈’이라 대답한다.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 물질이란 본래 덧없는 것이고 독립된 것이 아니건만 왜 사람들은 그것을 수치화하고 계량화하여 숭배하는 것일까? 몇몇의 개인적 무지와 맹목적 믿음에 그치지 않고 이젠 온 사회에 만연한 풍조가 되었으니, 이런 세태가 한스럽기만 하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깨달음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욕망의 실현을 제1의 목표로 공공연하게 표방하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배우고 실천하자고 모인 성당과 교회와 절에서는 돈보다 진리와 깨달음을 앞세워야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얻고 뒤돌아 보았을 때 부끄럽지 않을 불교인 기독교인이 몇이나 될까?
심히 의심스럽다. 혹시 많은 기독교인 불교인들이 속으로 이렇게 외치고 있지는 않은가?

“돈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부처님께서는 욕망의 대상으로부터 ‘멀리 떠나라[遠離]’고 가르치셨다. 욕망의 대상, 과거 사회에서는 연인과 가족, 친구와 재산 등으로 다양하게 제시되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돈’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통일이 된 듯하다. 따라서 돈으로부터 멀리 떠난 사람이 있다면, 그가 이 시대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등불이요, 모범이 될 스승이라 하겠다.

수(隋)나라 때, 정덕사(淨德寺)에 부상(富上)이란 스님이 계셨다. 그의 이름만 알뿐, 고향이 어디인지, 스승이 누구인지, 함께 동문수학한 이가 누구인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최고 부자[富上]’라는 이름과 상반되게 그 스님은 가난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매일 거리로 나와 길가에 큰 삿갓을 벗어놓고는 그 곁에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종일 경전을 읽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도 시주하라고 권하는 법이 없고, 혹 삿갓에 동전을 던지는 사람이 있어도 축원은커녕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을 피해 조용한 길목만 찾아다녔기에 스님의 행색은 늘 초라하였고, 스님의 삿갓은 늘 텅 비어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불교신자가 말했다.

“스님, 여기는 가난한 이들만 모여 사는 곳입니다. 시주를 받으려면 저기 성 북쪽이나 서쪽이 수월합니다. 그곳엔 사람도 많이 살고 또 부자도 많습니다. 어쩌자고 여기서 이러십니까?” 

그러자 부상 스님이 웃으면서 대답하셨다.

“이 한 몸 연명하는데 한 푼이나 두 푼이면 충분합니다. 많아봐야 어디다 쓰겠습니까?”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부상 스님의 소문이 떠돌았다.

“그 스님은 정말로 욕심 없이 사는 분이야.”

“그 목청은 또 얼마나 좋고. 독경소리만 듣고 있어도 절로 마음이 편안해져.”

어느덧 가난한 뒷골목 사람들은 그 스님 앞을 지날 때면 발걸음마저 조심하였고, 그 곁에서 경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따라서 암송하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갔다. 소문은 능주자사(陵州刺史) 조중서(趙仲舒)의 귀까지 전해졌다. 조중서는 3대째 내려오는 권문세가의 탐혹한 관리였다. 그는 ‘욕망을 버려야 행복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터무니없는 낭설로 여겼다. 자사는 비웃었다.

“욕심 없이 사는 자가 있다고? 욕심 없는 척해서 욕심을 채우려는 것이겠지.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고 했어.”

자사는 불교를 폄훼할 심사로 일부러 옷을 바꿔 입고 관원들과 함께 그곳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말을 타고 지나가다가 슬쩍 돈 꾸러미를 떨어뜨렸다. 골목어귀를 돌아 말을 세운 자사는 한참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부상 스님은 그저 경전만 읽을 뿐 돈 꾸러미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자사는 사람을 보내 그 돈을 집어오게 하였다. 그래도 부상 스님은 독경만 할뿐 돌아보지 않았다. 자사가 돌아가 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조금 전 이곳에 돈을 떨어뜨렸는데, 스님 혹시 보셨습니까?”

부상 스님이 독경을 멈췄다.
“봤습니다.”

“그 돈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주워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하루 종일 길에 앉아있어봐야 겨우 한 푼 구걸할 뿐인데 땅에 떨어진 돈 꾸러미를 왜 가지지 않았습니까? 또 남이 집어가는 걸 보고 왜 막지 않았습니까?”

부상 스님이 합장하고 대답하였다.

“빈도의 물건이 아닙니다. 어찌 함부로 욕심을 내겠습니까?”

자사가 조롱하듯 말하였다.

“내 것이 아니라 욕심내지 않는다. 하 하. 부처님은 ‘본래 내 것이란 없다’고 하셨다지요? 그럼 스님의 가사도 본래 스님 것이 아니겠군요. 지금 스님 몸에 걸친 가사가 필요한데, 그 가사를 저에게 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상 스님이 곧바로 가사를 벗어 차곡차곡 접어서는 자사에게 내밀었다.

깜짝 놀란 자사가 되물었다.

“정말 주시는 겁니까?”

그러자 부상 스님이 싱긋이 웃었다.

“저를 시험하려고 이러는 것 압니다. 의관을 정제하고 말까지 타신 분에게 이런 낡은 천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가져가도 분명 저처럼 가난한 자의 몫으로 돌아가겠지요.”

그러자 자사가 말에서 내려 부상 스님의 발아래 예배하였다.

“죄송합니다, 스님. 저는 사실 능주자사 조중서입니다. 작은 것으로 만족하며 욕심내지 않고 사는 분이 계시다기에 일부러 찾아온 것이지, 본래 나쁜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청하였다.

“스님을 능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제가 스님께 평생 공양을 올리겠습니다.”

부상 스님은 거절하였다.

“참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빈도는 널리 중생들과 선한 인연을 맺고 싶을 뿐입니다.”

그날 이후 그 거리에서 부상 스님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누군가 양주(楊州)에서 부상 스님을 다시 보았다고 한다. 그때도 역시나 삿갓을 걸어놓고 거리에 앉아 부처님의 말씀을 독송하고 있었다고 한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66호 / 2014년 10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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