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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이 물러난 산 자락에 선농일치 부처님 가르침 머물다

기자명 법보신문
  • 법공양
  • 입력 2014.10.21 12:28
  • 수정 2014.10.21 12:33
  • 댓글 1

‘부처님 법 담는 그릇’ 속리산 법기암

▲ 법기암은 표지석 뿐이었다. 단출했다. 인법당 1동, 시민선방 1동이 전부였다. 그러나 속리산을 품고 속리산 가을하늘을 담고 있어 넉넉했다.

정이품 소나무(천연기념물 제103호)가 손님을 맞는다. 예서부터 세속(世俗)은 끝났다는 이정표였다.

암주 노현 스님 법호 딴 법기암
9917㎡ 영농지서 농작물 재배로
일일부작 일일불식 가풍 이어와
주말 농장체험 템플스테이 ‘제격’

속리산(俗離山)에 들었다. 산벚꽃은 봄을, 무성한 녹음은 여름을, 만산홍엽은 가을을, 소복한 눈은 겨울을 알린다는 속리산. 감나무는 가을을 가장 빨리 물들였고, 단풍도 뒤질세라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속리산 어디쯤에서 흘러 내려온 계곡물은 시리게 맑았고, 하늘은 깊었다. 미륵도량 법주사 옆길로 방향을 잡았다. 세속이 등 뒤로 차츰 멀어져 갈 쯤 충북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1길 317~5에 닿았다. 법기암(法基庵, 암주 노현 스님)이었다.

표지석 뿐이었다. 일주문은 없었다. 세속에 찌든 마음은 정이품송 앞에 내려두고 왔으니 그대로 좋았다. 암자는 단출했다. 인법당 1동, 시민선방 1동이 전부였다. 그러나 속리산을 품고 속리산 가을하늘을 담고 있어 넉넉했다.

인법당에는 현판이 없었다. 비로자나불과 은사 탄성 스님 진영을 모신 법당 그리고 다실, 방사 그 뿐이었다. 암주 노현 스님은 “아직 산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2011년 가을, 터를 잡은 법기암은 막 사격을 갖추려하고 있었다. 2015년 부처님오신날 전 문을 열 예정이라고 했다. 다실의 너른 창밖으로 성큼 다가온 가을풍경이 노크했다. 이미 가을이 산문 안에 들었다고 하자 암주스님은 웃고 만다.

암자 법기(法基)는 노현 스님 법호다. 의성 고운사 조실 근일 스님이 암주스님에게 지어준 법호를 암자 이름으로 했다. 부처님 가르침(法)이 머무는 도량(基)일 터다. 가을 하나 머금은 도량에 어떤 부처님 가르침이 깃들어 있을까. 선농일치(禪農一致)다.

법기암에서 가꾸는 영농지가 9917㎡(3000평)에 이른다. 암주스님은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땐  화두 붙잡고 씨름하다 해제 땐 법기암서 농사를 짓는다.

▲ 법기암서 가꾸는 오미자 농장.

백장 선사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며 선(禪)수행과 농사일을 병행했고 이는 백장청규로 나타났다. 근대 한국 불교에서는 용성 스님의 선농일치(禪農一致) 정신으로 이어졌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다. 오미자 4958㎡(1500평), 대추 1983㎡(600평)에 오디만 따는 뽕나무 150그루를 심었다. 표고버섯도 재배하고 있다.

▲ 법기암은 표고버섯도 재배한다.

암주스님은 땅만큼 그 마음 여실히 드러내는 물건이 없다고 했다. 물 들어가고 거름 스미면 작물들 뿌리를 튼튼하게 한다. 거기에 햇볕과 바람 도움을 얻으면 작물은 무럭무럭 자라기 마련. 그 뿐이랴. 땅은 자주 밟는 이에게 결실을 안긴다. 땅에서 나는 작물은 가꾸는 이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암주스님은 경전과 목탁을 예불에 쓰고 나면 곧 밀짚모자 쓰고 장화 신고 호미를 든다. 법당에 제 할 일 끝나면 야외법당에 나선다. 뙤약볕 내리쬐고 거름 냄새나는 땅이 암주스님 야외법당이었다. 해가 속리산을 타고 넘을 때까지 꼬박 야외법당서 울력한다. 올해도 오미자는 풍년이었단다.

암주스님은 울력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 했다. 불자든 일반인이든 상관없다고, 주말이면 농장체험 팜스테이나 템플스테이로 울력 야단법석을 펼치려 한다. 맑은 계곡물 소리 벗삼아 숲속 길로 1시간 가량 포행하면 닿는 법주사 미륵대불 참배도 빼놓을 수 없는 진풍경. 암주스님은 부처님 가르침 머문 도량에 사람이 북적이길 바랐다. ‘사람 인(人)’ 글자가 서로 어깨를 비스듬히 기대어 살듯 울력을 핑계(?)로 공생의 가르침을 전하고 싶은 암주스님 마음 씀씀이다.

법기암 풍경은 아직 노래하지 않았다. 곧 도량 찾는 이들 발걸음 격려하며 노래하리라.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마음이 찾아간 줄 알라던 정호승 시인 말처럼 선농일치의 삶을 꿈꾸는 수행자들 마음도 이곳을 향할 테니. 법기암 내려오는 길, 세속에서 불어온 바람이 속리산을 타고 넘는다. 법기암 풍경의 기다림이 무르익었다. 010-5738-14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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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하고 인내하는 수행자들 선불장

시민선방 감인선원

법기암엔 부처님을 발견하는 도량, 선불장(選佛場)도 있다. 암주 노현 스님이 선원장이다. 법주사 소임 내려놓고 결제 때마다 화두와 씨름했던 경험을 전한다. 스님은 ‘전등록’ 일화처럼 재가자들도 시민선방에서 부처님이 되길 바랐다.

 
당나라 천연 선사는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길에 황매산을 지나다 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이 벼슬 뽑는 것보다 부처님을 뽑는 도량을 이르자 그 길로 삭발염의했다. 선원장스님도 재가자 누구든 열심히 화두를 참구하면 자신 안에 부처님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미 마음에 갖춰진 부처님을 발견하려면 어째야 할까. 견디고 또 견디는 것이다. 그래서 선원 이름이 감인선원(堪忍禪院·사진)이다. 은사 탄성 스님이 1983년 함허 득통 스님의 선풍 드날렸던 공림사에 세웠던 선원과 같다. 그 선풍을 그대로 이어받길 원하는 암주스님 바람이다.

온갖 번뇌망상보다 돌연 일어나는 분노, 세속 인연에 사로잡히면 본래 부처님은 먹구름 속에 숨을 터다. 세속 떠난 도량 속리산에 들었으니 번뇌망상, 분노, 세속 인연이 떠오를 때마다 끄달려가는 마음을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한다는 뜻이 담겼으리라. 순간적으로 쏟아지는 졸음과 세속 티를 아직 벗지 못해 밀려드는 수많은 욕정도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만 한다.

선원장스님은 하안거 동안거 결제 때 함께 정진할 대중 15명의 방부를 들이려 한다. 해제 땐 하루든 1주일이든 자율정진하도록 개방한다. 2층 구조로 된 감인선원은 148㎡(45평) 규모다. 2층엔 2개의 정진방이 있고 세면시설도 갖췄다.

선원장스님은 법기암서 실천 중인 선농일치의 삶도 수행자들과 함께하고 싶어 했다. 가부좌 틀고 방구석에만 틀어 앉아 벽만 바라본다고 부처님을 발견하긴 어렵다는 것. 농작물 가꾸며 울력이라는 대중생활로 서로의 마음공부를 점검할 수 있어서다. 천혜의 속리산 자연과 법주사 미륵대불을 마음에 담는 건 부처님 가린 번뇌를 일시에 걷어가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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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담는 그릇으로 일궈나갈 것”

법기암 암주 노현 스님

 
노현〈사진〉 스님은 법호 ‘법기(法基)’처럼 살고 싶다고 했다. 법기암이 그곳이다. 암자를 부처님 담는 그릇으로 일구겠다고 원력을 세웠다. 지역과 상생하는 일은 최우선이었다. 새롭게 지을 198㎡(60평) 규모의 공양간도 그 일환이다. 속리산에서 나는 나물(산채)로 사찰음식을 만들어 누구나 점심공양을 무료로 할 수 있도록 문을 연다. 나물은 시민선방 감인선원 수행자들이 울력으로 거두고, 그 공덕을 모든 이들과 나누겠다는 것. 그래서 법기암 자체가 부처님 담는 그릇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스스로도 부처님 담은 그릇으로서 부처님 닮은 인천의 스승이 되고자 한다. 11세 때 봉화 각화사로 은사 탄성 스님과 일대사 인연을 맺은 뒤 평생 갈고 닦아온 마음자리였다. 출가 직후부터 전국 선방을 돌며 수행에만 전념했다. 각화사 주지로 금봉암(동암)과 태백선원 등 크고 작은 불사로 각화사 면모를 일신했다. 각화사에 수행풍토를 심은 일도 큰 불사였다. 하루 15시간, 9개월 정진 가행정진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조계종 교구본사인 법주사 주지 소임을 맡아서는 공개살림하며 매년 보은군 내 초중고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고, 다문화가정과 노인초청 행사를 열었다. 불교대학도 운영하며 사찰과 지역의 상생 모델을 선보였다.

“나라고 할 게 없습니다. 내려놓으면 되지요. 하심인 셈입니다. ‘아상’ 비운 자리엔 뭐가 있을까요. 아마도 부처님 마음, 곧 불성일 겁니다. 부처님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 작은 암자도 사부대중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 부처님 마음자리를 발견하도록 돕고 싶어요.”
웃는 노현 스님 주름이 고왔다. 삶의 궤적이 그대로 얼굴에 피었다. 빛을 퍼뜨리는 방법은 촛불이 되거나 그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것. 스님은 거울이었다.

[1266호 / 2014년 10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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