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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공화국의 인과와 연기

참사공화국. 대한민국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물론 수치다. 자살공화국, 드라마공화국, 학벌공화국, 삼성공화국, ‘빨리빨리 공화국’ 따위의 대한민국 ‘별칭’에 부끄러운 하나가 더 늘어난 셈이다.

미리 전제하거니와 자학할 뜻은 전혀 없다. 하지만 참사가 끝없이 이어지는 데도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상은 또렷하다. 2014년 4월16일의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을 ‘국상의 슬픔’으로 몰아갔는데도 대한민국은 6개월 넘도록 ‘진상규명 특별법’조차 만들지 못했다.

그 뿐인가. 참사가 일어난 바로 옆 바다인 홍도 부근에서 9월30일 유람선이 좌초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승객과 선원 110명 모두 구조는 됐다. 주목할 점은 사고가 난 유람선의 ‘나이’다. 1987년 일본에서 건조돼 선령이 27년이다. 더구나 이 배가 홍도 바다에서 유람선으로 운항한 시점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다. 세월호를 참담하게 지켜본 홍도 주민들은 낡은 배를 홍도에 들여오는 데 반대하는 탄원서를 해경에 냈다. 하지만 해경은 선박안전기술공단에서 안전 검사를 마쳤다며 27년 된 유람선에 2023년까지 10년 운항을 허가했다.

유람선 사고가 난 뒤에도 해경은 “27년 선령과 사고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사뭇 당당하게 밝혔다. 물론, 해경의 주장처럼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좌초이기 때문에 ‘운항 부주의’로 판단내릴 수도 있다. 일본이 더 사용하지 않고 중고로 매각한 낡은 배의 어디서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선령이 10년을 넘으면 선체가 낡고 엔진에 고장이 잦아 매각할 때 이미 단가가 낮아진다. 실제로 세월호의 전 선장은 “특별히 큰 결함은 없었지만, 작은 기계적 문제는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세월호를 한국에 판매한 일본 선사는 세월호가 “당시 18년 돼서 낡은 호텔 같았다”고 증언했다. 

바로 여기서 불교의 지혜가 돋보인다. 불교는 단순히 인과율에 머물지 않는다. ‘인연’은 원인 못지않게 연기의 조건을 촘촘하게 살핀다. 인과율만 따지는 ‘공권력’의 작태는 비단 유람선에 국한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가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는 규제완화 정책과 이어져 있다는 분석과 비판은 어느새 흐릿해져가고 있다. 여기에는 여론시장을 독과점하며 정부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신문사들과 정부 영향 아래 있는 공영방송사들의 책임이 크다. 세월호 참사가 ‘규제 완화’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오히려 눈 홉뜨는 대학교수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보라.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선령 제한을 ‘완화’하는 과정에 선박 안전을 위해 ‘선박 정비 평가’를 강화해야 한다는 선박검사기관의 의견을 정부가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정부는 관계 부처 협의를 이틀 만에, 법제처는 법령 심사를 나흘 만에 끝냈다. 낡은 여객선 관리 방법을 1년에 하루라도 교육받게 하자는 건의도 정부는 “새로운 의무 부과”라며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선령 제한 완화 뒤 선박 수입에서 15년 이상 된 노후 선박 비중은 2009년 이후 가파르게 치솟았다. 세월호와 홍도유람선이 승객을 태울 수 있던 ‘조건’이었다.

해양수산부는 “당시 선령 제한 완화는 법제처나 국민권익위에서도 국무회의에 보고할 만큼 공감대가 있었던 사안”이라고 해명 아닌 ‘해명’을 언죽번죽 했다. 하지만 그 ‘공감대’는 당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내건 이명박 정권의 규제완화 정책과 그를 적극 두남둔 독과점 신문과 방송 때문에 형성됐을 따름이다.
더 큰 문제는 박근혜 정부가 지금도 ‘규제완화’를 ‘신주’처럼 모시는 데 있다. 드러난 인과관계만 맹신하는 걸까? 아니면 인과율을 핑계로 기업의 이윤 추구를 내놓고 돕겠다는 뜻일까. 하지만 기업이 잘돼야 나라가 잘 된다는 착각은 이명박 정권의 실패로 이미 드러났다. 그래서다. 인과를 넘어 연기를 꿰뚫어본 붓다의 지혜가 사무치는 오늘이다. 조계종단이 현대사회에 요구되는 담론을 적극 펴나가길 기대한다.

손석춘 건국대 교수 2020gil@hanmail.net

[1267호 / 2014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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