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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넘어진 바로 그 땅 짚고 일어나기

“Were all living beings free from the sickness I also would not be sick, because the sickness of Boddhisattva arises from great compassion. 모든 중생들이 병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면 나도 아프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의 병은 대자비심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고통은 이곳에 있고
희망·행복도 여기서 시작
문제의 핵심은 바로 사람
스스로 일어나 걸어야 해

대학시절 유마경 영역본을 읽다가 가슴에 휘몰아쳐왔던 구절이다. 문수사리문질품에 나오는 내용이다. 문수사리 보살이 유마거사에게 “거사님의 병은 어디서 온 것이며 언제 낫게 됩니까?”하는 질문을 했을 때 유마거사가 답한 말이다.

실명제는 피하고, 대학 후배 한 사람이 아파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대신 아파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기보다 마음이 참 그렇다. 경제력이라도 내가 넉넉하면 어디 우주행성에서 푸짐한 알바비용을 받고 지구인을 대신해서 아파주는 외계인이라도 알아보고 싶다. 허나 우주통신비도 없고 아직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외계인의 전화번호도 확보하지를 못했다. 그런 외계인이 만에 하나 있다 해도 연락하지 말아야겠다. 급기야 대신 죽어달라고 외계인에게 송금하면서 애걸복걸하는 지구인들이 생길 수도 있으니.

또 지구인들끼리도 사기전화를 통해 국제 범죄가 횡행하고 있는데, 대신 아파주겠다고 선금으로 비용만 받고 날라버리는 외계인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래저래 망상만 떠오를 뿐 아픈 후배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이지 딱히 없다. 겨우 문자 한통 보냈다.

“좋아지려는 초대형 몸살이다. 끙끙 견디면 얼마 안있어 아주 건강해진다.”

“고마워요. 형”하고 답장이 왔다.

조선시대 어느 선비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과거도 안되고 어찌어찌 지내다가 가족부양은 해야 되고 중급관리들이 곤장형 받은 것을 얼마간의 비용을 받고 곤장을 대신 맞아주는 알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아프긴 했지만 집에 있는 부인에게 봉투 갖다 건네는 보람에 이를 악물고 엎드렸다. 그러나 사람의 몸이 줄창 내려치는 곤장을 견디기는 힘든 법. 피범벅이 된 엉덩이로 곤장을 맞다가 맞다가 ‘어이구 이러다간 내가 죽겠네. 이제 죽어도 더 이상 이놈의 알바는 못해먹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대학에 합격이라도 하면 등록금도 있어야 되고 큰딸 혼인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서 혼수 비용도 마련해야 되니 곤장대신맞기알바 이게 어딘가 하는 마음이 산산이 흩어진 채로 사립문을 밀고 비틀비틀 걸어가는데 마루에서 부인이 무슨 종잇장 비슷한 것을 여러장 들고 환하게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준다.

“여보. 기뻐하세요. 세 건이나 더 들어왔어요.”

직장이라는 곤장의 형님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온밤 내내 고심하면서 쓴 사표를 가족 먹여살리려면 별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지금 이 새벽에 쓰레기통에 실시간으로 구겨서 던지고 있는 조선시대 선비의 환생 인생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10년 저편 어느날 “제가 신문사하고는 적성도 안맞고 도저히 못 견디겠습니다”하고 진지하게 말했던 후배도 아직 여전히 신문사에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 그 속은 알 수 없으나 시를 감상하는 점잖은 글을 쓰는 난이므로 씩씩하게 다니고 있다고 써야한다.

1988년 가을에 돌아가신 고익진 교수님께서는 동국대학교 후문의 계단을 오르기가 힘드셔서 저쪽 중문의 가파른 언덕길과 정각원 옆을 오르는 오르막길을 쉬엄쉬엄 걸어오셔서 감동스러운 강의를 해주시곤 했다. 이 가을 아픔은 한편 감동이기도 한 것을.

因地而倒者 (인지이도자)
因地而起也 (인지이기야)

땅에 걸려 넘어진 자 / 땅을 짚고 일어난다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67호 / 2014년 10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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