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일본 호넨이 황녀 쇼쿠시에게
17. 일본 호넨이 황녀 쇼쿠시에게
  • 이재형 기자
  • 승인 2014.10.27 18: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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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염불하면 우리는 반드시 정토서 만날 것이외다”

천황 딸이었던 문인 쇼쿠시
번잡한 세상 떠나 암자서 생활
죽음 앞두고 호넨에 도움 요청

관승 화려한 옷 벗어던지고
백성들에게 염불 전하던 호넨

그녀에게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쇼쿠시에 염불할 것 거듭 당부

“쇼뇨보(正如房), 당신의 병환이 매우 위중하다는 얘기를 듣고 무척 놀랐습니다. 당신의 청대로 꼭 한번 뵙고 싶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만남이야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무리해서 만나면 스러져가는 육신에 집착이 생길 뿐이겠지요.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저 먼저냐 나중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원컨대 임종 때 아미타불께서 모습을 드러내시어 자비로써 이끌어 주시고 정념(正念)에 머물 수 있도록 부디 마음 속 깊이 발원하고 소리 내어 외우십시오. 이것이 최선이니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당신을 떠올리면 이렇게 가슴 절절한 것을 보면 우리의 인연이 이번 생애뿐 아니라 전생부터 이어져 왔음이 틀림없습니다. 비록 이번에 당신이 먼저 (정토에) 가시더라도, 혹은 제가 먼저 갈지라도 결국 같은 아미타 정토에 이르러 다시 만나 뵈올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쇼쿠시 나이신노(式子內親王, 1153~1202, 법명 쇼뇨보)의 편지를 읽은 호넨 겐쿠(法然源空, 1133~1212)는 깊은 갈등에 휩싸였다. 천황의 딸이자 일세를 풍미했던 여류 문인 쇼쿠시가 자신을 간절히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며 절망과 두려움에 휩싸인 채로….

호넨은 자신을 향하는 쇼쿠시의 각별한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내 생명이여 끊길 테면 끊겨라. 더 이상 살면 애써 숨긴 내 사랑 들킬까 두렵구나’라는 그녀의 유명한 와카(和歌)가 자신을 염두에 두고 쓴 시라는 얘기들도 들려왔다. 평생 수행자의 길을 걸어온 호넨이었건만 그의 마음은 점점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물들어갔다.

호넨은 쇼쿠시의 애틋함을 이해했지만 넘지 못할 선이 있었음을 잘 알았다. 20년이라는 세월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호넨은 이번 생을 중생구제를 위해 살겠노라고 서원한 정토행자였기 때문이다.

▲ 일본 정토종의 개조인 호넨. 그는 끊임없는 전란과 잇따른 천재지변으로 고통 받던 민초들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누구든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염불의 성자 호넨. 그는 유력한 무사집안의 외아들이었다. 부친 우루마 도키쿠니(漆間時國)는 지방관으로 치안을 맡고 있었으며, 어머니 진씨(秦氏)는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 출신이었다. 당시 일본은 전란의 시대로 치닫고 있었다. 귀족들에 억눌려있던 무사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지고는 했다.

평탄하던 호넨의 가정이 산산조각 난 것은 그가 9살 되던 해였다. 정적이었던 아카시 사다아키가 야습을 감행해 호넨의 부친을 살해한 것이다. 우루마는 임종 직전 어린 아들에게 원수를 갚으라거나 무사의 길을 걸으라 하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호넨에게 “원수를 원수로 갚으면 원한은 끊일 날이 없다. 어서 출가해 보리(菩提)를 구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과 유언은 호넨의 일생을 뒤바꿔놓았다.

호넨은 부친의 유언에 따라 천태종 총본산인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曆寺)에 올랐다. 15살에 그곳에서 계를 받은 호넨은 울음을 삼키며 악착 같이 경을 읽어나갔다. 문득문득 증오와 원망이 그를 휩쌀 때도 있었지만 불법은 호넨을 조금씩 바꿔갔다. 부친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아카시 다아키조차 불쌍한 중생임을 깨달은 것이다.

호넨은 하루가 다르게 불보살의 오묘한 세계에 젖어들었다. 계율을 엄격히 준수하고 방대한 대장경을 수차례 열람한 그는 ‘지혜제일 호넨’ ‘대세지보살의 화신’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한 번은 젊은 호넨이 히에이산 천태좌주의 물망에 오르내릴 때였다. 이를 전해들은 호넨의 어머니는 “닭 벼슬과 같은 명리 때문에 네가 출가했느냐?”며 호되게 경책했다.

사원이 권력의 각축장으로 전락하고 칼과 창을 든 승병들 간의 싸움이 끊이질 않던 시대. 대다수 승려들에게 민중의 고통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세상은 불경에서 일컫는 말법시대를 닮아가고 있었다.

호넨을 향한 어머니의 경책은 그가 호화로움을 등지고 평생 둔세의 길을 걷도록 했다. 호넨은 지금까지 헛똑똑이로 살아왔음을 알았다. 세간의 호평과 달리 자신은 우매해 삼학(三學)의 그릇이 못돼 깨달음이 어렵다고 깊이 자각했다. 이후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리석은 호넨’이라고 소개했다. 호넨은 자신에 적합한 법문을 찾아 나섰고, 오래지 않아 겐신(源信, 942~1017)의 ‘왕생요집(往生要集)’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호넨은 자신도 더러움이 없는 깨끗한 세상에 가겠다는 ‘염리예토 흔구정토(厭離穢土 欣求淨土)’를 깊이 발원했다.

그런 호넨에게 기연이 찾아온 것은 43살 되던 해였다. 중국 선도(善導, 613~681)의 ‘관무량수경소’를 읽던 호넨은 “일심으로 오롯이 미타의 명호를 염불한다”는 구절에 이르러 불법의 요체가 ‘나무아미타불’ 6자에 있음을 확신했다. 특히 그는 법장보살의 48대원 중 제18원을 읽으며 크게 감격했다. ‘만약 내가 부처가 될 때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지극한 마음으로 기꺼이 믿으면서 나의 땅에 태어나고자 열 번 염불했음에도[乃至十念] 불구하고, 만약 나의 국토에 태어나지 못한다면 나는 정각을 얻지 않으리라’는 발원이 그것이었다. 비록 많이 배우지 못했더라도, 선업을 쌓지 못했더라도 오로지 정토를 그리워하며 부처님 명호만 부르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염불이야말로 범부중생이 서방정토에 왕생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호넨의 깨달음은 곧 전수염불(專修念佛)의 주창으로 이어졌다.

호넨은 천황의 허가를 얻지 않고 정토종을 열었다. 그는 관승(官僧)들의 화려한 백의를 벗어던지고 검은 승복을 입은 채 민중 속으로 들어갔다. 국가에 종속된 불교교단에 대한 단호한 거부였으며, 기득권층을 떠나 대중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처절한 다짐이었다.

호넨은 누구를 만나든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혼돈, 끊임없는 전란, 잇따른 천재지변으로 고통 받고 죽어가야 했던 민초들에게 호넨의 법문은 감로수 자체였다. 민중들은 그의 말을 떠받들었고, 염불소리는 일본 전역으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성들뿐만 아니라 귀족과 지식인들도 호넨에게 속속 귀의했다. 그는 이제 다른 종파에서 두려워하는 요주의 인물로 급부상했다.

▲ 일본 중세기 최고의 여류 문인이었던 쇼쿠시 나이신노.

호넨과 쇼쿠시의 만남이 이루어진 것도 이 무렵이다. 만백성이 우러러보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황녀 쇼쿠시, 겉으로는 늘 밝게 웃는 그녀였지만 속으로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버지 고시라카와(後白河天皇, 1127~1192) 천황은 하루하루 권위를 잃어 갔고 신하들은 서로 죽고 죽이는 권력 투쟁을 일삼았다. 7살 때부터 11년 간 황녀로서 신사에서 봉사해야 했던 그녀는 21살 때 병이 들어서야 그 일을 그만둘 수 있었다. 속세로 돌아왔지만 그녀의 삶은 여전히 힘겨웠다. 2년 뒤인 1171년 여동생의 죽음을 시작으로 어머니와 후견인 외삼촌과 잇따라 사별했다.

이런 그녀에게 위안이 돼 준 것이 바로 와카였다. 황족이 아닌 그 어떤 사람과 결혼은 물론 사랑조차 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와카는 상상력과 자유의 날개를 달아줬다. 그녀는 와카의 형식을 빌려 세상을 향해 자신의 외로움과 사랑의 속내를 털어놨다.

‘그리워하다 내 마음도 보세요. 이 세상 뜬 후 말 못한 내 마음을 당신도 알게 되리.’

쇼쿠시는 독특한 감수성과 탁월한 언어조율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의 와카에는 연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담겨 있었다. 젊은 연인들은 누구나 쇼쿠시의 와카를 따라 불렀다. 사람들은 모두 쇼쿠시가 정열적인 ‘금단의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다. 그 대상 중 하나가 바로 호넨이었다.

쇼쿠시에게 호넨은 각별했다. 그녀는 호넨에게서 용기와 자비, 한없는 자유로움을 보았다. 난해하게 여겨지던 불교도 그를 거치면 단순하고 명료해졌다. 그녀는 호넨의 말에 귀 기울였고 그의 가르침에 따라 일심으로 염불했다. 쇼쿠시에게 호넨은 자비로운 법사이자 엄격한 스승이었다. 하지만 때때로 연모의 감정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드는 건 그녀도 어찌할 수 없었다. 얼마 후 호넨이 멀리 떠나 자주 볼 수 없을 때조차 쇼쿠시의 애틋한 그리움은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세속을 떠나 불문에 들었다. 산 속 암자에 머물며 나무아미타불 칭명하고 와카를 지었다.

‘새벽녘의 닭 우는 소리가 맘 깊이 스미네. 오랜 번뇌의 꿈을 생각하는 나에겐.’
‘조용한 새벽마다 둘러보면 아직 깊은 밤, 이 현세에 꾸는 번뇌의 꿈이야말로 슬프도다.’

때로는 똑똑 떨어지는 눈 녹은 물을 보며 봄이 온 기쁨을 노래하기도 했다.
‘산이 깊어서 봄 온 지도 모르는 오두막 문에 눈 녹은 물방울이 끊일 듯 떨어지네.’

세월이 흘러 쇼쿠시는 자신이 불치의 병에 걸렸음을 알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염불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넘어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닥쳐보니 아니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는 그녀를 칭칭 옭아맸다. 두려움과 고통으로 밤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럴 때면 쇼쿠시는 호넨을 떠올렸다. 그라면 분명 자신이 겪는 이 고통을 없애주고 편안히 정토로 이끌어 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쇼쿠시는 마지막 힘을 모아 호넨에게 편지를 썼다. 자신이 겪는 고통과 두려움을 털어놓은 뒤 자신의 곁으로 와달라는 간곡한 요청이었다.

쇼쿠시의 마음을 전해 받은 호넨은 결국 가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녀와의 인연이 이번 생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가르침을 원하는 사람들의 간절한 시선을 외면할 수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호넨은 그녀에게 자신이 그곳으로 갈 수 없는 안타까움과 임종의 순간까지 염불을 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 그녀가 정토에 반드시 갈 수 있다는 확신을 담은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중죄를 지은 사람도 지극한 염불 한 번에 왕생할 수 있다했거늘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리 걱정입니까. 지난 오랜 세월 극락왕생을 믿고 출가까지 행하며 오로지 염불수행을 하지 않았습니까. 어찌하여 자신의 왕생을 의심하십니까. 열이면 열, 백이면 다 왕생한다고 (중국의) 선도(善導) 스님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오직 아미타부처님의 본원을 믿고 매달리세요. 절대로 마음 약하게 먹으면 아니 됩니다. 아아, 갈 수 없는 이 몸. 그저 안타깝고 황송할 뿐이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쇼쿠시는 아마도 호넨의 간절한 바람처럼 더없이 편한 마음으로 세상과 이별을 고했으리라. 자신을 그리워했던 천황의 딸을 떠나보낸 호넨도 힘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전심전력으로 법을 펼쳤다. 주변의 요청에 따라 왕생을 위한 업으로는 염불이 으뜸임을 밝힌 ‘선택본원염불집(選擇本願念佛集)’도 펴냈다.

제자가 사형 당하고 자신은 유배형에 처해지는 등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전법에 매진하던 호넨은 80살이 되던 1212년 1월25일 서방정토로 향했다. 그녀가 떠난 지 꼭 10년 뒤였다. 일본 정토종 개조 호넨이 일본 중세의 최고 여류 가인 쇼쿠시에게 보낸 편지는 ‘法然全集(호넨전집)’(春秋社)에 수록돼 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참고 자료 : 법연상인 저·석도실 역 ‘정토신앙의 지남(선택본원염불집)’(민족사), 마츠오 겐지 저·김호성 옮김 ‘인물로 보는 일본 불교사’(동국대출판부), 원영상 ‘일본 정토사상에 나타난 수행과 깨달음의 세계-호넨과 신란을 중심으로’(원불교사상과 종교문화 57집), 김종덕 외 ‘일본문학 속의 여성’(제이엔씨), 최충희 저 ‘일본시가문학 산책’(제이엔씨), 中井眞孝 編 ‘念仏の 聖者 法然’(吉川弘文館).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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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 2014-11-02 14:19:04
나는 행복한 사람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잊혀질때 잊혀진대도
그대 사랑받는 난 행복한 사람
떠나갈땐 떠나간대도

어두운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부처님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

어두운 창가에 앉아 창밖을 보다가
부처님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
이 세상에 그 누가 부러울까요
나는 지금 행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