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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한승원 장편소설 ‘사람의 맨발’

기자명 이미령

출가자의 걸음은 어디를 향했는가, 맨발을 보여다오

‘사람의 맨발’
한승원 장편소설
불광출판사
소설가 한승원의 장편소설 ‘사람의 맨발’을 만났을 때 참 이상한 제목도 다 있구나 생각했습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일대기를 소설로 쓴 거라는데 제목 어디에도, 그리고 표지 그림 어디에도 부처님을 보여주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얀 바탕에 햇볕에 그을리고 주름진 누군가의 벌거벗은 왼쪽 발 하나만 턱하니 올려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게 참 묘하기도 한 것이 “아!”하고 오는 뭔가가 있었다는 점입니다.

소설은 붓다의 맨발로 시작합니다.

“싯다르타의 두 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집을 떠난 출가자의 슬픈 표상이었다. 평생 대중교화를 위해, 온 세상의 험난한 길을 밟고 다닌 맨발이었다. 발가락과 발톱들은 돌부리에 차이고 삐죽한 자갈과 가시에 찔리고 긁히는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고, 또 상처를 입었다가 아물기를 거듭한 까닭으로 곳곳에 암갈색 옹이들이 박히었고, 짐승의 낡은 가죽을 덮어씌운 것처럼 두껍고 너덜너덜 보풀이 일어나 있었다.”(8쪽)

맨발의 묘사로 시작된 소설은
낮은 곳 향한 행보  주목하며
붓다의 일생 새롭게 그려내

상처 가득 옹이 박힌 맨발은 
하층 계급의 고단한 삶 다독인 
수행자의  삶을 오롯이 상징

뒤늦게  도착한 카샤파 위해
관 밖으로 내보인 거친 맨발은 
제자들에 전한 마지막 가르침

현대 수행자에게 맨발의 서정
어떤 의미로 다가갈지 궁금

스승의 곁을 떠나 유행하느라 그 최후를 지켜보지 못한 불충제자 카샤파는 뒤늦게 달려왔지만 이미 스승은 수없이 많은 천으로 휘감겨 관 속에 들어간 뒤였습니다. 아무리 수제자라 할지라도 그걸 풀거나 헤집을 수는 없습니다. 그 짙은 회한을 느끼셨는지 죽은 스승은 그 제자를 향해 마지막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관 밖으로 거친 맨발을 쑥 내밀었던 것입니다.

“아, 이것은, 죽는 날까지 영원히 이 맨발의 뜻을 잊지 말라는 당부이다. 카샤파는 싯다르타의 맨발을 두 손으로 감싸 보듬은 채 어흑어흑 하고 울었다.”(8쪽)

붓다가 맨발을 내보인 최후에서 시작한 소설 ‘사람의 맨발’은 시계바늘을 되돌려 그의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왕자 시절 이야기는 새로울 게 없습니다. 싯다르타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고생 하지 않고 권력의 중심에 자리 잡은 채 29세까지 지내온 그 삶에 대해 덧붙여 설명할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성불하여 붓다로서 사람들을 교화한 이야기가 그리 많이 담겨 있지도 않습니다. 소설은 왕자의 어린 시절과 궁중에서 젊은 왕자로 지내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그런데 작가의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늘상 만나왔던 소략한 줄거리에서 한걸음 더 들어가 싯다르타는 권모술수와 부정(不正)과 암투와 갈망과 애증이 난무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한시도 자유롭지 못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소설 속 싯다르타에게는 세 자매가 나란히 아내로 시집을 오게 되지만, 싯다르타는 그중에 야소다라에게만 유난히 이끌립니다. 청년 싯다르타가 야소다라를 밤마다 찾는 장면은 에로틱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외로움과 질투에 몸부림을 치는 다른 왕자비들의 모습은 궁중 야사를 보는 듯합니다.

소설 속 싯다르타는 장차 왕위를 이어갈 존재로서 나라 안팎의 사정을 두루 살피려고 애를 씁니다. 계급에서도 한참 밀리며 굶주리기를 밥 먹듯 하는 하층계급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 와중에도 이들은 저들끼리 서열을 짓고 편을 가르고 상대방의 목숨을 빼앗습니다. 싯다르타는 이런 사람들 속으로 헤집고 들어갑니다. 그리고 왕자로서 이들을 위해 할 일을 고민하고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자립의 길을 열어줍니다.

하지만 가슴속에는 늘 ‘존재라는 것이, 사람의 현실이란 것이 왜 이럴 수밖에 없는 걸까’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늘 정치적 라이벌이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싯다르타의 장인인, 재정대신 다리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사람의 선한 면을 믿고 행복을 일구려고 애쓰는 싯다르타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리는 권력지향적인 인물입니다.

그리고 싯다르타는 이런 다리나와의 대결에서 밀리고 맙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허수아비처럼 얌전히 지내면서 야소다라의 남편으로서 왕자로서 품위를 지키며 늙어가는 일밖에 없었습니다.

하여, 그는 출가를 감행합니다. 권력의 중심부에 자리해봤자 적대감만 부를 뿐이요,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어봤자 또 다른 독점욕만 키울 뿐이라는 현실에 그는 지쳤습니다. 조금 더 나은 행복을 찾고자, 조금 더 완전한 행복을 찾고자 싯다르타는 오래 전부터 막연히 품어왔던 바람을 실현하기로 합니다.

소설 ‘사람의 맨발’은 싯다르타의 출가 당일 풍경을 아주 자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동안 불전(佛傳)에서 “한밤중에 곤히 잠든 야소다라와 라훌라의 모습을 지그시 내려다본 뒤 말을 타고 성을 넘어 떠났다”는 한 문장으로만 만났던 싯다르타의 출가입니다. 독자들과 불자들은 싯다르타의 출가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었기 때문에 그때의 심정을 짚어볼 마음을 전혀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한 나라의 왕자가 무소유의 유리걸식의 삶을 택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는 권력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명예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사치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안락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관행을 내려놓았습니다.

출가를 결심한 그는 세상의 익숙한 모든 것과 작별을 고하는 의식을 천천히 치렀습니다. 소설 속에서 싯다르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방안의 모든 풍경에게 인사를 고합니다. 커튼에게, 침대에게, 이불과 베개와 식탁과 은식기와 책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넵니다.

뜻밖의 설정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우습기도 했습니다. 출가를 앞둔 자의 행동이라고 하기에 어울리지 않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출가였습니다. 출가는, 더 이상 저 물건을 쓰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 저것을 걸치지 않고, 더 이상 저기 위에 몸을 눕히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언젠가 한승원 작가를 직접 뵙고 이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노작가는 작품에서 이 부분 묘사를 가장 정성들였다고 말했습니다. 70년 넘게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을 담았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왕자는 출가합니다. 그가 개혁하려 했던 가장 낮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택해 살아가게 됩니다. 그들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면서 그들을 다독이고 위로하며 나아지게끔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맨발의 삶.

바로 이것이 붓다의 삶이기에 뒤늦게 달려온 카샤파를 향해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도 맨발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그대는 어떻게 살아가겠느냐?”

이것이 바로 소설가 한승원이 그려낸 붓다의 일생입니다.

어떻게 살아왔느냐?

이 말은 ‘어디를 돌아다니며 지내왔느냐’라는 뜻과 통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력서라는 한자어 ‘履歷書’에는 신발 신고 걸어 다닌 내역이라는 원초적인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내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하는데 우리 신체 부위 가운데 발보다 더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합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머리에 맴도는 시 한 수가 있었습니다. 문태준 시인의 ‘맨발’인데 그 시에도 붓다의 맨발이 등장합니다.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죽은 부처가 슬피 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펄과 물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후략)”

이 시는 절창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읽고 또 읽을수록 날것이 안겨주는 비린내와 그 텁텁하게 쓸쓸한 모양이 이보다 더 잘 표현해낸 시를 보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붓다는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어디로 갈 것인지를 늘 궁리하면서 세상을 두루 관찰하고, 관찰을 마친 붓다의 육신을 싣고서 그 맨발은 터벅터벅 자박자박 흙먼지 이는 길을 걸어갔습니다.

제자들은 스승 붓다께서 다가오시면 달려 나가 가사와 발우를 받아들었고, 스승의 먼지 자욱한 두 발에 이마를 대고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맑은 물을 받아와서 그 발을 뽀도독 뽀도독 소리 나게 씻겨드렸습니다.

스승의 맨발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천천히 먼지와 때를 벗겨드리는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렇게 45년의 여행을 마친 뒤 이승과 인연의 끈을 놓고 떠나가신 뒤 제자들의 몸이 기억하는 스승은 단연 맨발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소설 ‘사람의 맨발’을 읽으면서 붓다로서 사람들을 인간적으로 만나는 광경이 조금만 더 그려졌으면 하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욕심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과감한 행위인 출가의 과정을 진득하게 그려내면서 출가 후의 이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맨발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붓다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준 것은 맨발이었습니다.

관 밖으로 쑥 내민 맨발.

시대에 따라 살아야 하는 법이라며 카시트에 몸을 감싼 채 핸들을 잡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내달리는 현대의 수행자들에게 이 맨발의 서정이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합니다.

크고 작은 다툼이 끊이지 않는 승가를 향해, 당신의 가르침을 몸으로 살아볼 생각은 하지 않고 머릿속과 혀끝의 무기로만 쓰려는 세상을 향해, 죽은 부처가 관 밖으로 맨발을 쑥 내밉니다. 그 맨발을 끌어안고 어흑어흑 울어야 할 카샤파도 사라진 시절입니다.

이미령 cittalmr@naver.com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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