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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란 이유로 이뤄진 자살 또는 타살

기자명 이병두

‘정절의 역사-선 지식인의 성 담론’ / 이숙인 지음 / 푸른역사

▲ '정절의 역사 -
선 지식인의 성 담론'

성 폭행범을 살해하였다가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여, 지난 10월25일 사형이 집행된 스물여섯 살의 이란 여성이 남긴 유서에서 ‘진심으로 어머니가 내 무덤에 와서 울고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나는 이 책 ‘정절의 역사’에서 마주친 조선 여성들을 떠올리며 ‘여자로 태어나는 죄가 이리 무거운가?’ 자문(自問)하였다.

정절(貞節)은 조선시대 이 땅의 여성들이 짊어져야 했던,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도 안고가야 했던 무거운 짐이다. 본래 ‘정절’은 지극히 개인적인 덕목이지만, 조선시대의 시공간(時空間) 상황이 이것을 점차 커다란 정치·사회적인 이슈로 만들어갔다. 이런 일에는 퇴계·율곡과 남명 등 대(大)유학자들은 물론이었고, 이덕무와 같은 실학자들까지 적극 참여하였다.

어쨌든 조선시대 정절은 곧 국가가 적극 개입하여 사람들을 다스리는 국법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향약(鄕約)’이라는 ‘향촌 도덕법’이 등장하여 이 국법보다 더 엄격하게 백성들을 옭아매었으니 파키스탄 등지에서 ‘정절 훼손으로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여성에게 돌을 던져 죽이는 잔인한 행위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아내의 간통에 대한 남편의 분노는 당연시되지만 남편의 간통에 대한 아내의 분노는 가시화되지 않았던” 것도 닮은꼴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로 정절이 이념을 넘어 교조(敎條, 도그마)화되고 그에 따라 “어린 자식을 넷이나 남겨 둔 채 남편을 따르고자 자결한 여성”과 “뱃속의 아기를 희생시키면서 남편을 따라 죽은 여성”을 절부(節婦)로 칭송하고 국가에서 각종 혜택을 주는 데까지 이르렀다.

처음에는 지배층 여성들에게서만 강요되었던 이 정절의 도그마가 이처럼 널리 퍼져나가면서 17세기 말에 이르면 심지어 ‘성 폭행’ 위협을 당한 것만으로도 자결하는 이들이 등장하고, 국가에서는 이들을 화려한 언사로 꾸며 “칭송하고 정려(旌閭)했다.”

어쨌든 조선시대에 “국가가 앞장서 열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은 그녀 개인을 기리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절의를 헌신짝 대하듯이 한 남성 신하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 그 어떤 곤란과 수난을 당하더라도 ‘지조’와 ‘절개’로 의리를 지키는 인물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런 점에서 열녀 찬양과 양산은 여성을 도구로 희생시킨 “남성 사대부들의 자기 검열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정절을 지킨 이들에 대한 칭송·포상과 반대로, 개가(改嫁) 등으로 훼절 의심을 받게 되면 아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외증손서(外曾孫壻)에 이르기까지 ‘훼절 연좌제’를 적용하며 “내외 전 자손들의 관직생활에 타격을 주었다.” 따라서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는 “정절 자살이 자발적 선택의 형태를 띠지만 정절을 강권하는 사회의 여성적 상황의 복합적 산물이라는 점에 눈을 돌리면 그 자살은 타살이 된다.” 혹 우리가 오늘 이 순간에도 어떤 틀이나 도덕적 기준을 강요하면서 사람들을[남여 모두] 힘들게 하고 연좌제의 틀을 꽉 조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이병두 문화체육관광부 종무관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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