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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세상의 첫 걸음

‘대학(大學)’에 “덕이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다”라는 말이 있다. 인격적인 탁월성이 가장 중요한 것이요, 재물은 부차적인 것이라는 말이다. 너무도 고전적인 말이요, 또 상식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의 현실에서는 진부하고도 고리타분한 말이 아닐까 싶다.

부자를 보고 “잘 산다”라고 표현하는 말의 사용이 그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인데 단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것을 보고 “잘 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부유함을 삶의 최고 목표로 보는 의식의 표현이다. 이런 말을 쓰고 사는 우리는 자연스레 재물을 근본으로 보는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말은 바로 생각을 결정하는 것이기에 말을 바로잡지 않고는 생각이 바로잡힐 수 없고, 또 세상의 일을 바로잡을 수도 없다. 이런 생각 때문에 필자는 말의 사용에 매우 민감하고, 공공장소에 있는 안내판이라든가 표지판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부적절한 것을 보든가 일상적 언어 표현이 부적절한 것을 보면 매우 심각한 반응을 보여 주위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요즈음의 일로는 “만원이세요” “칠천원이세요”하는 식의 표현이 너무도 거슬린다. 왜 그렇게 돈을 존대하는 표현을 써야 하는가 말이다. 부자를 잘 산다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의식의 표현이 아닐까?

말의 잘못된 사용은 생각의 잘못됨으로 이어지고, 다시 일의 잘못됨으로 이어져 세상을 온통 뒤집어 놓을 수 있다. 부자를 잘 산다고 하는 말과 “하면 된다!”는 말이 결합하면 재물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든 다 해도 된다는 의식을 낳게 된다. 사람으로서 해서는 절대 안 되는 도리를 가르치지 않은 바탕 위에 이런 의식이 횡행한 결과가 세월호 사건이요, 그 뒤를 이어 벌어지는 인명과 관계된 참사이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길었기에 뿌리깊이 박힌 의식을 바꾸는데 또한 시간이 걸릴 것이요, 그런 가운데 또 얼마나 많은 불행한 사건 사고를 겪을지 걱정스럽다.

그런데 여전히 그러한 말을 쓰고, 또 그와 비슷한 의식을 조장하는 말들이 쓰이게 된다면 언제 올바른 의식이 뿌리 내리고, 그 올바른 세상을 이룰 수 있단 말인가? ‘말을 바로잡는 일[正名]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한 공자의 말을 새삼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정치 이야기가 나오고 세월호 이야기가 나오니, 또 하나 말의 잘못된 사용으로 엄청난 부작용을 낳은 예가 떠오른다. 세월호 피해자와 국가 유공자를 동격으로 놓으려 한 정치인의 발상이 가져온 일파만파의 파장을 생각해보라. 말이 순조롭지 않음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가? 그로 말미암아 엄청난 역공을 받게 되고, 세월호 사건의 본질이 흐려지고, 죽은 이들이 다시 모욕당하고, 유족들의 상처받은 가슴이 다시 헤집어지지 않았는가?

꽃다운 나이에 참사를 당한 영령들에 대한 깊은 애도, 그런 대 참사를 불러오게 한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 이 참사를 계기로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철저한 보완책 수립, 범국민적 애도의 마음을 참작한 적절한 보상책…. 이러한 것들이 ‘세월호 참사’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논의되지 않고, 정치와 당략에 이용당하면서 이름과 실질이 맞지 않는 논의가 난무하고 있지는 않은가 살펴볼 일이다.

특히 정치인들의 말을 엄하게 살피는 국민의 눈이 있다면, 이름과 실질이 부합[名實相符]하는 정치, 명실상부한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른 의식과 바른 세상의 출발점이 아닐까?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여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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