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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아직 인지가 발달하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매우 신기해한다. 자꾸 따라오는 것이 때로는 무서운 듯 우는 아이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어른들은 왜 자기 그림자를 보고 저리 반응할까 라는 생각에 아이의 순진함에 미소를 짓기도 한다.

거짓 가릴 수 있어도
행동 떼놓을 수 없어
그림자 형체 따르듯
선행·악행도 따라와

조금 더 자라, 그림자가 왜 생기는지 알면, 아이는 더 이상 그림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 않는다. 그림자가 신기하지도 않거니와, 무섭지도 않다. 그러면서 ‘그림자가 왜 생기지?’하고 물으면,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얼굴을 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는 이렇듯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린아이가 자신의 형체를 따라 그림자가 생기는 것을 모르는 것을 ‘왜 모르지?’라고 생각하면서, 정작 자신이 그림자를 만들고 있음은 알지도 못한다.

경전에는 그림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이 있다. 그 내용의 일단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는 저 죽음에 붙들려, 인간의 몸 버릴 때를 생각하라. 무엇이 자신의 것이며 무엇을 가지고 갈 것인가?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죽음의 순간 무엇이 그를 따를 것인가? 인간은 이 세상에서 공덕과 죄악을 모두 짓나니 사는 동안 지은 이 두 가지가 자신의 것이며 오직 이 둘을 가지고 떠나네.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죽음의 순간 공덕과 죄악이 그를 따른다네.”(Samyutta Nika-ya, Piya sutta 중에서)

우리는 늘 죽음과 마주하면 산다. 다만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흔히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삶’을 향해 있으면서, 죽음은 애써 외면한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죽음을 맞이할 때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경전의 말씀처럼, 죽음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내가 평생을 노력하여 쌓아 놓은 모든 것을 찰나의 순간에 모두 헛된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죽음은 반복되지 않기에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은 묻고 계신다. ‘죽음의 순간 뭘 가지고 갈 것인가?’라고.

우리는 이미 안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하지만 이것은 반만 아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과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생전에 내가 지은 선행과 악행이다. 이것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버리고 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인지능력이 발달한 사람은 누구나 그림자가 왜 생기는지를 안다. 하지만 자신의 행한 행동과 말과 생각에도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진짜 그림자를 달고 다니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이 사람아, 어찌 그대의 행동과 말과 생각의 그림자를 보지 못하는가?’라고 하시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만드는 그림자는 공덕의 그림자와 죄악의 그림자 두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형체의 그림자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지만, 공덕과 죄악의 그림자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든 것이지만 내가 마음대로 떼어놓을 수 없는 그림자들이다. 그리고 이들 그림자는 내가 죽을 때 동행하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죽음 후 어떤 그림자와 동행하고 싶은지를 생각한다면, 지금 나의 삶을 욕망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수만은 없을 것이다.

거짓의 가면으로 얼굴은 가릴 수 있어도 자신이 만든 악행의 그림자는 가릴 수도 떼어놓을 수도 없다는, 단순하지만 엄연한 사실을 잊지 말 것을 부처님은 간곡히 가르치고 계신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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