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눈동자 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시월의 마지막 날이다. 쓸쓸한 표정을 지을 일도 없고 쓸쓸한 표정을 구경할 일도 없지만 쓸쓸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오르는 시점이다. 우리말 자체의 의미를 연구하는 분을 만나게 되면 쓸쓸함의 의미를 한번 진지하게 질문드려야겠다.
가을 쓸쓸함 망상 불과하지만
사색이 깊어지는 쏠쏠함 있어
길 잃고나서야 고개 들어보니
잃어도 베풀 수 있는 가을 속
“앉고 일어서는 것은 돼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후배가 전화기를 통해 보내준 말이다. 앉고 일어서는 일을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행복감을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데 모르는 것이 건강에 훨씬 좋은 일이다.
기숙사 현관 계단 그 차가운 바닥에 스스로 앉게 되었을 때 가을날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쓸쓸함을 만끽하기도 했었었다. 그런 쓸쓸함은 대과거형으로 회억해야 한다. 그렇게 봄날의 목련꽃 툭툭 떨어지는 것도 쓸쓸함으로 바라보았고, 여름날의 소나기가 후두두둑 지나가는 것도 진하디 진한 쓸쓸함으로 다가왔었었다.
정릉에 있는 삼정사에서 하루에 삼천배를 한번씩 일주일 계속하는 정진을 할 적에 삼일째 저녁 무렵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한 계단 한 계단 우두둑거리는 뼈소리를 내면서 내려올 때 쓸쓸함이 계단계단마다 흥건히 스며들기도 했다.
그 스님은 지금 그 일이 기억에 없으실지도 모른다. 삼일동안 삼천배를 했더니 이제 더 이상 몸이 움직여주려하지를 않았다. 아이고 내가 이걸 안하고 말지 하고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그만해도 상관은 없는데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고 요사채로 필자를 데리고 갔다. 차를 한잔 마시고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힘겹게 앉아 있는데 스님께서 툭 한 마디를 던지셨다.
“불교 전공한다는 대학생이 일주일 삼천배하기로 해놓고 삼일만 하고 내려갔다는 얘기를 평생 듣고 싶으시면 내려 가시던가….”
다시 법당으로 올라가는데 무릎도 안 아프고 어깨도 안 쑤시고 목도 뻑뻑하지 않고 가슴 속이 미어지게 답답하던 증세도 어디로 외출을 해버렸다.
쓸쓸함에는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저 망상에 불과하긴 하지만 사색이 깊어지는 듯한 쏠쏠함이 들어있다. 낙엽과 떨어지는 목련을 바라볼 때 계단 바닥과 어깨는 왜 그렇게 시렸었는지….
안으로 스며들어있는 통증을 감상하고 있는 후배가 머지않은 날 분명 거뜬하게 일어서서 “이제 마라톤 풀코스도 세계 신기록으로 달릴 수 있습니다”하는 전화를 걸어올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율곡 선생의 시 한수를 감상해본다.
採藥忽迷路 (채약홀미로)
千峰秋葉裏 (천봉추엽리)
山僧汲水歸 (산승급수귀)
林末茶烟起 (림말다연기)
약초를 캐다가 홀연히 길을 잃어 고개들어보니 / 일천 봉우리가 가을 낙엽 속에 들어있구나 / 산에 계신 스님이 물을 길어 돌아가더니 / 저 쪽 숲 끝에서 차달이는 연기가 피어오르네.
길은 잃어볼 일이다. 길을 잃어서야 고개를 들게 되고 고개를 들어야 사방의 경치가 들어온다. 발걸음도 잠시 멈추게 되고 자동차도 브레이크를 밟게 된다. 건강도 억지로 잃을 일은 아니지만 잃어볼 일이다. 잃어보아야만 비로소 생각이 가닿는 것이 더러 있다. 약초만 따라가면 산속 오솔길만 구경하고 말 것을 길을 잃는 바람에 일천 봉우리가 낙엽 속에 들어있는 것을 비로소 보게 되는 것처럼.
잃기 전에 베푸는 것은 더더욱 좋은 일이다. 잃어도 베풀고 잃지 않아도 베풀 수 있는 가을이 가을 속에 들어있다.
박상준 고전연구실 ‘뿌리와 꽃’ 원장 kibasan@hanmail.net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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