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수용-의료적 관점과 비교하면서
40. 수용-의료적 관점과 비교하면서
  • 인경 스님
  • 승인 2014.11.03 17: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재 삶 받아들이지 못하면 백일몽만 꿔

우리는 거의 언제나 몸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인사할 때 ‘안녕’이란 말과 밤사이 별 탈 없이 안녕하신지 묻는다. 우리는 대부분 안녕할까? 반대로 많은 직무 스트레스와 아이들 걱정 혹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살지 않는가? 이런 상태는 비정상인가? 아니면 정상상태인가?

현실세계서 천상존재 주장은
고통서 도피하려는 방식일 뿐
삶의 태도나 관점 바꾸려말고
그대로 수용하는 마음 키워야


의료적 관점에서 보면 삶의 고통은 비정상이다. 아픈 곳이 없어야 그게 정상이다. 조금 아프면 우리는 병원에 가고 진단을 받는다. 아픈 것 자체가 안녕하지 않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정기적인 검사를 받고 진단검사를 해야 한다. 미리 점검을 해 두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건강이 아픈 곳이 없어야 건강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 모두는 병에 걸려있다.

의료적 관점은 고통의 증상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그 기준을 나열하고 정상인지 아닌지를 진단하도록 한다. 그것이 정상이 아니라면 정밀검사를 하고, 제거 수술에 들어간다. 심장이나 근육에 어떤 혹이 나있다면, 수술로 그것들을 제거한다. 감기에 걸리면 우리는 감기약을 먹는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조치이다. 물론 이런 조치는 적절하고 유효하다.

그러나 마음이 문제라면 어떻게 할까? 그 마음도 제거할 수 있을까? 마음을 제거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렇게 되면 우리는 식물인간이나 목석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의료적 관점을 정신이나 마음의 문제에 동일한 방식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우울이나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서 수술할 수가 없고, 설사 약을 처방한다고 해도 우울과 불안만을 분리시켜서 그것을 대상으로 약물을 사용할 수가 없다. 그것들은 마음의 일부이기에 온 마음을 다 마비시켜놓는다. 모든 감각이 마비되어 멍청한 상태로 만들어놓는다. 약 효과가 떨어지면 그 증상은 더욱 악화가 되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약의 양은 늘어만 간다.

이런 방식은 근본적인 치료가 아니다. 단지 증상을 일시적으로 눌러놓은 상태이다. 신체가 아닌, 마음의 문제에 의료적 통제전략은 효과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근본적으로 행복이란 혹은 건강이란 어떤 것인가 반문할 수밖에 없다. 아픈 곳이 없고, 병이 없는 상태가 행복인가?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아픈 게 아닌가?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런 상태를 피할 수가 있는가? 이것은 필연적인 현상이 아닌가? 의료행위처럼 이런 현상을 제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여기서 우리가 선택하는 전략은 ‘수용’이다. 신체에 대해서 잘 적용하는 통제전략과 달리 수용전략은 마음의 건강과 관련될 때 자주 적용하는 방식이다. 정신적인 건강의 지표는 수용하는 마음의 탄력성을 가리키는 말이고, 삶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지 나쁜 것이든지, 혹은 신체적인 아픔이든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말한다.

수용이란 일상에서는 상대방의 의견이나 태도를 내가 받아들인다는 의미이지만, 여기서는 삶의 전체적인 태도나 관점을 말한다. 이를테면 불교에서 ‘삶이란 고통이다[一切皆苦]’고 말한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을 하는가? 만약 의료적인 통제전략이라면 고통의 상태는 건강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행복한 상태로 바꾸려하거나 극단적으로는 그것을 제거하려할 것이다. 반면에 수용전략은 고통스런 삶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라고 해석을 한다. 그래서 건강이란 아픔이 없는 상태를 건강한 것이 아니라, 삶의 아픔을 그대로 수용하는 능력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삶의 자연스런 상태란 아픔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픔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아픔이 없는 상태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단지 우리의 이상일 뿐이라고 말한다.

현재의 삶의 불편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은 정상에서 벗어난 백일몽을 만들어낸다. 백일몽이란 다름 아닌 현실에서 벗어난 이상세계를 꿈꾸는 것을 말한다. 특히 종교에서 현실세계를 떠난 천상이나 천당의 존재를 강력하게 믿거나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주장은 통제전략의 극단을 보여준다. 현실의 아픔을 피할 수 없기에, 그러면서도 여전히 삶을 통제는 해야 하니까,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이다. 이들은 죽은 이후의 사후세계를 꿈꾸고 그런 세계가 존재한다고 강력하게 믿도록 통제전략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들은 진실을 외면한 채로, 현실세계의 고통으로부터 도피하는 한 방식을 제공할 뿐이다. 진정으로 건강한 상태라고 말할 수가 없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268호 / 2014년 11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