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종단개혁의 성과-① 행정·교육
32. 종단개혁의 성과-① 행정·교육
  • 권오영 기자
  • 승인 2014.11.1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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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 종단 운영시스템 구축…승가교육 현대화 착수

▲ 교육원을 별원으로 승격해 교육제도를 체계화한 것은 1994년 조계종 개혁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개혁종단은 1995년 1월13일 교육원 개원식을 갖고 현판을 내걸었다. 현판식에는 총무원장 월주 스님과 초대 교육원장 원산 스님, 개혁종단 주요 스님들이 동참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1994년 종단개혁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종단운영의 제도화였다. 구체적이고 지속가능한 그리고 예측가능한 제도 속에서 승단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설정 스님, 2014년 4월10일 종단개혁 20주년 세미나 ‘종단개혁의 의미와 성과’)

총무원장 겸직금지 신설
종단권력의 분권화 실현
중앙종회에 감사권 부여
집행부 견제기능 등 강화

교육원 설립으로 교육혁신
기초·기본·전문과정 세분화
2009년 한문위주 교육 탈피
교재한글화·교과과정 개정
승가교육 전면 재개정 진행


1994년 조계종 개혁은 종단의 행정과 교육, 포교, 복지에 있어 괄목할만한 성과를 가져왔다. 폐쇄적이고 전근대성을 면치 못하던 종무행정은 법과 제도에 의한 합리적 운영 시스템으로 탈바꿈했다. 주먹구구식 도제교육 수준이던 교육제도는 기초·기본·전문 교육과정으로 체계화됐다. 포교와 복지활동의 강화는 불교의 대사회적 위상을 일신했다.

이 가운데 종헌종법 정비를 통한 효율적인 종단운영체계 확립은 조계종의 변화를 이끈 원동력이었다. 1994년 조계종 개혁은 우선적으로 종단 권력의 분산에 초점이 맞춰졌다. 권력의 집중이 불합리한 종무행정과 부정부패로 이어지는 고리가 됐기 때문이다.

종단개혁 이전까지 의현 총무원장은 종단의 행정과 입법, 사법의 권한을 쥐락펴락했다. 교구본사주지를 비롯해 사찰주지의 인사권을 갖고 있었다. 동국대와 불교방송 이사직까지 겸직했다. 중앙종회 역시 그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중앙종회의원 75명 가운데 총무원장이 당연직 위원장인 간선선출위원회에서 27명을 뽑았다. 나머지 선출직 중앙종회의원도 대부분 총무원장이 임명한 본사주지와 주요사찰 주지가 선출됐다. 심지어 의현 총무원장은 자신이 직접 종회의원으로 참여했다. 이렇다보니 조계종 종무행정은 의현 총무원장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됐다. 대다수 종도들이 반대했던 총무원장 3선연임을 추진했던 것도 이런 종단환경에서 비롯됐다.

개혁회의는 1994년 9월 종헌을 개정하면서 총무원장의 겸직금지 규정을 마련했다. 총무원장은 재단법인 중앙교원 이사장과 중앙승가대 이사장, 불교사회복지원 이사장, 기타 국가 법령에 의한 당연직을 제외하고 일체 공직에 취임할 수 없도록 했다. 각종 이권과 연결될 수 있는 주요직에 진출하는 것을 최대한 차단함으로써 종단 운영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교구본사 주지도 교구 내 산중총회를 통해 구성원들이 직접 뽑도록 했으며 중앙종회의원의 겸직을 금지했다. 말사주지 인사권을 교구로 이양해 교구본사 주지가 말사주지를 품신하고 총무원장은 결격여부만을 판단해 임명했다. 인사권 이양은 총무원장의 영향력을 상당부분 축소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중앙종회의 권한도 대폭 확대됐다. 중앙종회의원은 직능대표선출위원회와 전국비구니회에서 선출하는 30인을 제외하고 나머지 51명은 직접 선거로 뽑도록 함으로써 대의기구로서의 위상을 회복했다. 종무 감사권을 부여해 중앙종무기관과 주요사찰에 대한 예결산, 인사 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했다. 중앙종회에서 중앙종무기관의 종무보고와 종책질의 등이 생겨난 것도 1994년 종단개혁의 성과로 꼽히고 있다.

종단개혁은 삼보정재에 대한 엄격한 관리체계를 확립했다. 사찰재산관리감독권을 강화해 사찰이 토지를 처분하려면 총무원장의 승인을 받도록 했고, 예결산을 의무화해 재정투명성을 높였다. 사설사암과 법인의 종단등록도 의무화했다. 이를 어길 경우 일체의 공직에 취임할 수 없고,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물론 그 제자들의 종단교육 혜택까지 제한했다.

이 같은 개혁조치는 곧 다양한 성과로 이어졌다. ‘조계종사 근현대편’(조계종 교육원)에 따르면 1995년부터 3년간 220여개의 사설사암이 종단 등록을 완료했다. 종단개혁 이전과 비교하면 185%가 늘어난 수치다. 이로 인해 조계종은 36만평, 2000여억원 이상의 자산증대 효과를 거뒀다.

개혁회의는 종단의 재정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1994년 10월10일 직영사찰법과 특별분담사찰 지정법을 제·개정했다. 이에 따라 서울 조계사를 비롯해 경산 선본사, 강화 보문사가 직영사찰로 지정됐고, 재정이 우량한 서울 도선사, 서울 봉은사, 과천 연주암, 경주 석굴암, 양양 낙산사, 인제 봉정암, 남해 보리암, 정읍 내장사는 특별분담사찰로 지정됐다. 교구본말사와 사설사암에 대한 1년 결산을 바탕으로 요율별로 중앙분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중앙종무기관의 예산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1994년 이전까지 20억원대에 불과하던 중앙종무기관의 결산액은 1995년 75억원, 1996년 89억원, 1997년 110억원으로 증가했다. 2014년 중앙종무기관의 예산은 235억원에 달해 20년간 11배가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그러나 개혁종단 출범 이후 대부분의 사찰들이 예결산을 정확하게 보고하지 않고, 일부 사찰주지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중앙분담금 요율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사부대중의 공의에 의한 사찰운영을 위해 제정된 사찰운영위원회법과 사찰재정공개원칙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명무실해 향후 종단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교육원을 별원으로 승격해 교육제도를 체계화한 것은 종단개혁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지난 1월 법보신문과 불교미래사회연구소가 종단개혁 20주년을 맞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3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낸 곳은 어디라고 보는가’에 대해 응답자의 56%가 ‘교육원’이라고 답했다. 승려교육을 체계화하고 각급 고시와 연수교육을 도입한 것이 긍정적인 평가요인이 됐다.

1994년 종단개혁 이전까지 조계종의 승가교육은 전통과 근대 사이에서 혼란을 면치 못했다. 몇몇 본사를 제외하고 스님들을 교육할 수 있는 교육시설이 없었고, 학인들을 지도할 수 있는 강사수도 턱없이 부족했다. 통일된 교과과정이 없어 사찰의 강원마다 배우는 과목은 물론 수준도 제각각이었다.

개혁종단은 1995년 1월 교육원을 별원으로 설립하고 4년간 100억원대의 예산을 투입해 대대적인 교육개혁에 착수했다. 승려교육을 기초와 기본, 전문과정으로 구분하고 단계별 교육과정을 엄격히 구분했다. 교육원 내에 교육·교재편찬·역경위원회도 구성해 각 분야의 전문화를 높였다.

의무교육 제도를 도입해 1995년 이후 출가자부터 의무적으로 4년간 기본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를 이수해야만 정식 스님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됐다. 승가위계 확립을 위해 사미·사미니에게는 장삼과 일상복에 가사색 동정을 다는 의제개혁을 실시하고 예비승과 정식 스님을 구분했다.

교육시설도 정비해 기본교육기관인 사미·사미니 강원은 2000년대 들어 19개로 늘어났다. 이 가운데 사미 강원은 동화사·백양사·범어사·법주사·불국사·송광사·수덕사·쌍계사·직지사·해인사·화엄사·통도사·선운사 승가대학으로 13개였으며, 사미니 강원도 운문사, 동학사, 봉녕사, 청암사, 유마사, 삼선승가대학으로 6개에 달했다. 1996년 7월 교육원은 전문교육기관의 설립을 위해 승가대학령과 학림령, 율원령을 제정하고 실상사 화엄학림과 봉선사 능엄학림, 파계사 영산율원, 봉녕사 금강율원 등 전문교육기관 4곳을 정식 인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출가자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사회 환경이 변화하면서 승가교육도 새로운 변화를 요구 받았다. 특히 조선시대부터 답습해 온 강원교육시스템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2009년 11월 제6대 교육원장으로 취임한 현응 스님은 이듬해부터 승가교육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다. ‘치문·사집·사교·대교’라는 정형화된 교과 과정에서 벗어나 선·교·율을 기본과정으로 삼고 초기불교와 사회포교학, 비교종교학, 컴퓨터, 어학 등 현대 교양과정을 첨가했다.

교재의 한글화도 적극 추진했다. 한문에 익숙하지 않는 한글세대 출가자들에게 한문 교재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이렇다보니 상당 시간을 한문해석에 할애해 정작 그 내용을 익히는 데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많았다. 교재의 한글화는 학인 스님들이 한문해석으로 소요되는 시간을 줄여 우선 불교사상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겠다는 의미였다. 다만 기존 방식의 경전 강독은 승가대학원 등 전문 과정에서 익힐 수 있도록 조정했다.

출가자 감소에 따른 학인 부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원은 과감하게 승가대학의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교육원은 2014년 3월1일 ‘승가대학 운영기준에 관한 령’을 시행하면서 학년당 10명, 총 정원 40명이 되지 않는 승가대학에 대해서는 대학운영 지원을 제한하도록 했다. 대신 전문승가대학원으로의 전환을 유도했다. 승가교육의 질적 하락을 막고, 승가대학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2012년 선운사 승가대학이 초기불교승가대학원으로 전환했고, 유마사는 선학, 백양사는 중관유식, 직지사는 불전한문, 삼선승가대학은 불학전문승가대학원으로 변모했다.

2010년 7월 교육법을 개정해 구족계를 받은 뒤 승랍 30년 미만의 스님들은 의무적으로 매년 12시간 이상 승려연수교육에 참여하도록 한 것도 교육개혁의 성과로 꼽히고 있다.

1700년 한국불교사에 등장하는 대다수 고승은 전통 교학과 함께 당대의 학문에 능통했던 최고의 엘리트였다. 1994년 종단개혁이 괄목한 교육 변화를 가져왔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오늘날 스님들이 현대인들의 지적 수준을 크게 능가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통 교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단정하기도 쉽지 않다. 승가교육 개혁의 갈 길이 여전히 먼 것도 이 때문이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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