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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곳이 불교의 중심인가

기자명 명법 스님
  • 법보시론
  • 입력 2014.11.10 13:15
  • 수정 2014.11.15 15:46
  • 댓글 0

얼마 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한국미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랜만에 서울시내 나들이를 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대학후배의 안내로 학회 시작 전에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귀신, 간첩, 할머니’전시회를 관람하는 덤과 함께.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독특하고 낯선 제목 때문에 더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전근대’, ‘냉전’, ‘여성’을 주제로 아시아를 관통하는 공통성을 모색해 본 참신하고 의미있는 기획이었다.

그 중 불교를 소재로 한 작품이 있었는데, 대만작가 자호싱 아서 리우(Jawshing Arthur Liou)가 만든 ‘코라Kora’가 바로 그것이다. 코라는 티베트인들이 우주의 중심인 수미산이라고 생각하는 카일라스 산 주변을 한 바퀴 순례하는 것으로, 카일라스 산을 한 바퀴 돌기만 해도 업장이 모두 소멸한다고 믿기 때문에 카일라스 산을 순례하는 것이 티베트인들의 평생소원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라싸에서 티베트 고원을 지나 카일라스 산에 이르는 여정 중 나흘간의 코라 여정을 담은 14분짜리 비디오아트 작품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오체투지 하는 티베트불교 순례자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동안 흔히 보았던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티베트 고원과 카일라스 산의 파노라마 같은 장대한 화면을 담은 작품과 달리, 카메라를 순례자의 눈높이에 맞추고 페이드아웃 기법으로 화면의 가장자리는 흐리게 처리하여 순례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본 장면을 보여준다.

땅에 밀착된 카메라 렌즈는 지면의 거친 돌부리와 바위 사이에 끼어 있는 천 조각들을 보여주는데, 그 덕분에 관객은 마치 순례자가 된 것처럼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의 거친 호흡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을 경험하게 된다.

이 작품은 티베트불교의 중심이라고 간주되는 카일라스 산의 신비한 모습이나 티베트 고원의 초현실적인 장면보다 땅에 몸을 낮추는 순례자의 시선을 따라감으로써 코라의 여정이 어떻게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주는지를 잘 포착해냈다. 종교성을 종교적 장소에서 찾는 다른 작가와 달리 그 장소를 경험하는 순례자들의 체험에서 찾아낸 점에서 이 작가의 탁월함을 볼 수 있다.

‘코라’의 작가가 간취했듯이 종교의 중심은 성소, 종교건축, 또는 종교단체가 위치한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행위가 일어나는 장소에 있다. 흔히 한국불교의 중심을 조계사 주변이라고 이야기한다. 아마도 조계종의 행정기관인 총무원이 위치해 있고 조계사 주변으로 많은 승려와 신도, 그리고 수많은 불교단체와 불교 관련 상업시설까지 불교에 관련된 모든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중요한 모든 불교 행사와 사업, 행정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조계사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조계사 부근에서 바라본 불교와 조계사 밖에서 바라본 불교 사이에는 꽤 큰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티베트 고원의 거친 자갈길이 티베트불교의 중심인 것처럼,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전법을 하고 길에서 입멸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세상과 만나는 길이 불교의 중심이었던 것처럼, 장소보다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 불교다울 때 불교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가 수행을 하고 불자들이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현장이 한국불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는 사람들이 존중받을 때 불교의 중심도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을까?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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