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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뿔이 잘린 황소

불교에서 소는 다른 동물과는 다른 상징성을 갖는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십우도(十牛圖), 혹은 심우도(尋牛圖)에서 소는 자신의 본성을 상징한다. 십우도는 선의 수행단계를 10단계로 나눈 것이다. 십우도에서 수행자가 처음에 소의 흔적을 발견하며 구도의 여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소를 발견하게 되고, 거친 소를 길들이는 목우(牧牛)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소가 길들여지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집에 와보니 소는 없고 자기만 남는 경지가 묘사된다. 이윽고 자신도 잊고 주객이 텅 비게 되면 참된 지혜가 발현되고, 마지막으로 중생제도를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게 된다.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을 10폭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소는 우리가 찾아야 할 대상, 즉 나의 본성이다. 하지만 본성이란 말을 썼다고 아뜨만과 같은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하면 안 된다. 실체가 없음을 본성이라고 한 것이다.

심우도 소는 본성 의미
선수행 단계적으로 표현
몸에서 몸 알아차리며
공격성있는 뿔 잘라내야

이렇듯 소를 수행의 단계로 설정한 것은 중국 선종의 아이디어이지만, 초기경전에서도 소를 수행자의 특징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어 뿔이 잘린 황소는 유순하고 잘 길들여져서 이 골목 저 골목, 이 거리 저 거리를 누비지만 발굽이나 뿔로써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 또한 그와 같이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없고 고통없는 마음으로 머뭅니다. 참으로 몸에서 몸에 대한 알아차림을 확립하지 못한 자는 다른 동료 수행자에게 모욕을 주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고 유행을 떠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지 않습니다."(Aṅguttara-nikāya, Vuttha sutta 중에서)

인용된 경전은 안거를 마치고 부처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다른 지방으로 유행을 떠나고자 한 사리뿟따를 어떤 비구가 모함을 하면서 시작된다. 즉 사리뿟따 존자가 자신에게 모욕을 주고도 용서를 구하지 않고 떠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존자를 불러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사리뿟따 존자가 하신 말씀인 것이다.

요점은 잘 길들여져 유순하면서도 더구나 뿔이 잘려 있어 실수로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황소와 같이, 존자 자신은 넓고 한량없는 마음으로 원한도 고통도 없이 머물며, 몸에 대한 확고한 알아차림으로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실수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모욕을 주는 일은 없음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는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실수를 하거나 피해를 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존자는 몸에 대한 확고한 알아차림을 확립하고 있기에 그러한 일을 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몸에 대한 확고한 알아차림은 사념처 수행가운데 신념처(身念處)에 해당한다. 신념처를 수행하게 되면 자신의 행동이나 말, 생각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경우에도 자신도 모르게 말하거나 행동하거나 생각하는 일이 없게 된다.

우리는 평소에는 유순한 소와 같다가도 어떤 상황이 되면 예리한 뿔로 상대를 공격하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공격성을 감추고 ‘실수’라는 말 뒤에 숨거나, 때로는 모진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모르고 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때로는 철석같이 약속을 해 놓고도, 뻔뻔하게 모르쇠로 일관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신의 욕망과 공격성을 통제하지 못하기에 발생한다. 내 안에 있는 욕망과 공격성이 뿔을 잘라내지 못하면, 잘 단속해서 나와 남을 다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함을 경전은 말하고 있다.

이필원 동국대 연구교수 nikaya@naver.com

[1269호 / 2014년 11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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