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3. 삼예사-2

정중무상 스님이 예언했던 티베트 불교중흥의 발원지

“당신은 그 어떤 것이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사물의 모양을 잘 관찰하여 선악을 분별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의혹을 끊게 하는 묘관찰지(妙觀察智)를 부정하는 셈이다. 묘관찰지가 없다면 과연 어느 누가 무분별지(無分別智)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또한 생각을 멈춰야 한다지만 그 생각 자체도 이미 마음작용을 일으켰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티베트불교 향방 결정짓게 될
인도·중국불교 측 논쟁 벌어져
마하연이 선종 돈오 설파하자
오류를 지적하는 카말라실라
논쟁 끝에 인도불교가 승리해
약속대로 마하연 티베트 떠나

754년, 토번 사절단 당 방문
정중스님 만나 가르침을 청해
“티베트에서 불교 융성” 예언

카말라실라는 마하연이 전개한 논리의 오류를 지적했다. 마하연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것은 망상에 불과하니, 일체 작용이 멈춘 곳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무상(無想), 무취(無取), 무사(無捨), 무착(無着)으로 정의되는 반야바라밀은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기절하거나 술에 취한 상태 역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 된다. 하지만 관찰하는 행위가 없는데 어떻게 무분별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사고작용을 중지했거늘 어떻게 일체법의 무자성함을 인식할 수 있을까. 인도불교 측 대표 가운데 한명으로 참여했던 예쉐왕뽀가 마하연의 주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은 해탈의 방편인 수행을 부정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돈오(頓悟)한다면,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점점 깊이 깨닫는 점오(漸悟)의 입장에서 불사불관의 논리로는 어떠한 인과도 쌓을 수 없게 된다. 인식의 확장을 통해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는 점진적 입장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카말라실라와 예쉐왕뽀의 빈틈없는 논리에 마하연은 어떤 답변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카말라실라에게 꽃을 바치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리고 논쟁의 시작에 앞서 약속했던 것처럼 티베트를 떠나 중국으로 돌아갔다. 당시 토번왕국은 불교국가로서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다. 때문에 삼예사에서 벌어졌던 논쟁은 티베트불교의 향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티베트불교는 카말라실라로 대표되는 인도불교를 수용하며 발전을 거듭한다.

논쟁이 끝나고 중국불교 측 인사들은 분신 등으로 격렬히 저항하기도 했으나 점오의 사상적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하연은 자객을 보내 카말라실라를 살해했으며 예쉐왕뽀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다 스스로 곡기를 끊어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진다.

삼예사 대법당의 구성은 티베트불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논쟁이 벌어졌던 현장임을 상기시킨다. 1층은 티베트양식, 2층은 인도양식, 3층은 중국양식으로 건축됐다. 순례단 스님들을 따라 대법당 내부로 들어간다. 예의 쾌쾌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야크 기름 초에서 수백년 동안 타오른 티베트인들의 신심이다. 크게 심호흡하며 공기를 들이마신다. 그들의 마음이 몸으로 들어와 스민다. 바로 이곳에서 티베트 최초의 승단이 형성됐으며 카말라실라와 마하연의 논쟁이 벌어졌다. 드디어 티베트불교 그 거대한 강줄기의 시원(始原)에 발을 내딛었다.

▲ 티베트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삼예사 대법당을 장엄한다. 둥첸과, 꺄링, 응아 등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는 스님들을 외호하듯 법당을 감싼다. 서로 다른 소리가 하나의 화음을 만든다. 히말라야 설산의 신비로움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마침 티베트스님들이 모여 경전을 읽고 있다. 낮게 깔린 스님들의 목소리가 법당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망원경 모양 관악기인 둥첸의 웅장한 소리는 눅눅한 공기를 머금고 야크 버터 초에 붙은 불을 흔든다. 높고 날카로운 음색의 피리 꺄링과 ‘성스러운 북’이라는 뜻의 응아가 서로 번갈아가며 깊은 울림을 만든다. 히말라야 설산의 신비로움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하다. 만년설 쌓인 척박한 고원에서 마을을 만들고 불법을 받아들여 마침내는 찬란한 불교국가를 건설했던 역사가 저 소리, 그 깊음에 오롯이 담겨있다. 순례단 스님들이 다가가 함께 기도한다. 티베트스님들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순례단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 숙여 경전을 읽는다. 동방에서 온 수행자와 히말라야 고원의 수행자는, 서로의 언어를 대신해 환한 웃음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음이라.

▲ 순례단은 정중무상 스님의 위패를 모시고 그 뜻을 기렸다.

순례단은 이어 대법당 주불 앞에 정중무상 스님의 위패를 모시고 예불을 올렸다. 신라 성덕왕의 셋째 아들인 정중무상 스님은 중국 사천성 일대에서 선종의 대표적 계파인 정중종(淨衆宗)을 일으켰다. 속성이 김씨였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김화상’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입적 후에는 ‘무상공존자(無相空尊者)’로 추대됐다. 인도를 제외한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500나한상의 한 분으로 조성해 모실 정도로 존경받고 있다. 정중무상 스님은 또한 티베트에 불교를 전하는데도 큰 기여를 했다고 전해진다.

정중무상 스님과 티베트의 인연은 7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나라 수도 장안을 방문한 토번왕국 사절단은 히말라야로 돌아가는 길에 호랑이를 이끌고 가는 정중무상 스님을 목격한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스님이 주석하던 정중사(淨衆寺)를 찾아 가르침을 청한다. 당시 토번왕국은 치송죽첸 왕이 귀족에 의해 암살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토속신앙인 뵌교세력은 귀족을 등에 업고 불교탄압 정책을 펼쳐 사원을 파괴하고 스님을 추방했다. 사절단은 이러한 사정을 스님에게 이야기했고, 스님은 지관(止觀)수행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훗날 삼예사 논쟁을 주관하게 될 치송데첸이 왕위에 오르기 직전의 일이었다. 스님은 어린 왕자가 신심을 일으켜 불법을 홍포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세 권의 경전을 전달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티베트에서 불교가 융성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 즉위식에서 정중무상 스님이 건넨 경전을 독송한 치송데첸은 뵌교세력을 몰아내고 불교를 국교로 공인했다. 곧 부처님 가르침이 히말라야 고원을 짙게 물들였다. 스님의 예언 그대로였다.

순례단을 이끌고 있는 혜총 스님은 “정중무상 스님의 혜안과 원력으로 티베트는 불법을 활짝 꽃피울 수 있었다”며 “그 뜻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스님들이 전 세계에서 불법을 홍포하게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 화려하게 조성된 파드마삼바바 존상.

대법당 2층에는 금강저를 손에 쥔 파드마삼바바의 존상이 모셔져있다. 광배에는 작은 연꽃과 부처님이 빼곡하게 장엄돼있다. 어두컴컴한 법당 내부에서 오로지 파드마삼바바 존상에만 조명을 비춰 그 모습이 더욱 화려하게 보인다. 이를 통해 티베트불교의 시조로 일컬어지며 ‘티베트사자의 서’를 남긴 것으로 알려진 파드마삼바바에 대한 존경심을 유추해본다.

▲ 삼예사 논쟁을 묘사한 대법당 2층 벽화. 보존상태가 매우 좋다.

2층 법당 바깥쪽 회랑 벽에는 삼예사 논쟁을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치송데첸과 카말라실라, 마하연 등 논쟁의 주인공이 상세하게 표현됐다. 칠이 조금 벗겨지긴 했지만 보존상태가 완벽에 가깝다. 티베트인들은 사원을 건립한 후에는 일체 손질하지 않는다. 쌓인 먼지를 털지 않고 벽화에 칠이 벗겨져도 덧입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금 눈앞에 보이는 벽화처럼 대부분 사원이 원형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건조한 날씨 탓도 있겠지만 사원에서는 어떤 것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티베트인들이기에 가능할 것이다.

▲ 중국식으로 건축된 3층 법당.

3층에 올라 중국식으로 조성된 법당에서 부처님을 참배한다. 각 층마다 외형은 달랐지만 결국 한 분의 부처님이었고, 단 하나의 진리였다. 머나먼 히말라야 고원에서 만난 부처님도, 검게 탄 얼굴의 티베트인들도, 강렬한 태양과 더없이 푸른 하늘도 결국 화엄의 한 송이 연꽃이었다. 하나에서 나와 다시 하나로 회귀하게 될 터인데 어둠에 둘러싸여 온갖 경계를 헤매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한다. 1층의 부처님은 티베트양식이고 2층 부처님은 인도양식이며 3층 부처님은 중국양식이라지만, 그것이 과연 이 순간 어떤 의미가 있을까. 순례단은 다만 세상 모든 존재가 부처님임을 되새기며 삼예사 대법당을 나선다.

이로써 티베트에서의 모든 일정은 끝났다. 내일은 칭짱열차를 타고 시닝(西寧)으로 가야 한다. 티베트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라싸로 돌아가는 버스 안. 순례 첫날, 공가공항에서 처음 만났던 광활한 히말라야의 대자연이 변함없는 모습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손을 뻗어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움켜쥔다. 가지런히 모은 손에서 설산의 바람 소리가 들린다. 야크 버터 초 짙은 내음이 흘러나온다. 손을 펴고 하늘을 쓰다듬는다. 돌무더기 산을 어루만진다. 강물을 긷는다. 히말라야가 순례자의 마음에 들어왔다.

삼예사=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270호 / 2014년 11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