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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기자명 이학종

"우리는 도반"

종교와 종교 사이의 벽(壁). 결코 녹록치 않은 높이와 두께를 가진 벽이다. 이 벽을 깨는 건 그 높이와 두께만큼 어려운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군소종파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말 그대로 종교백화점 국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자연히 종교간 전도 경쟁이 치열해지고이에 따른 다툼과 충돌이 빈번히 일어난다. 때때론 걱정스러운 사건이 이어지기도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형 충돌은 아직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언제라도 비극이 발생할 개연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쩌면 뇌관이 제거되지 않은 폭탄처럼 종교 간의 갈등과 반목은 가려져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그런데, 최근 이 위험한 뇌관을 제거하는 움직임이 뚜렷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 종교가 서로 다른 수행자와 성직자들이 종교의 벽을 허물고 공동선을 향해 손과 마음을 맞잡는 일이 잇따라 일어나고 있다. 이들에게서 도그마는 찾아볼 수 없다. 종교가 지향하는 세계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것, 그를 위해 내 종교와 상대 종교의 지고지순한 가치를 인정하고 함께 공유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반목과 갈등으로 황폐해진 세상, 이를 치유해야할 종교가 더 이를 부추기는 역기능을 불식시키는 대화해와 대자비의 현장으로 함께 떠나가 보자.



#무등산 도반 일철 스님과 임의진 목사

<사진설명>'무등산 살리기 환경운동'을 위한 '무등산 풍경소리' 공연을 주도하고 있는 일철스님<사진왼쪽>과 임의진 목사가 나란히 무대에 올라 행사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곳은 광주 무등산 증심사. 주지 일철 스님과 강진 남녘교회 임의진 목사가 무대위에 함께 섰다. 무등산의 훼손을 막고 다시 살리기 위해 마련한 ‘무등산 풍경소리’ 무대다. 주최는 스님이 했지만 이 행사가 사찰만의 행사가 아니라 광주의 문화행사로 치러져야 한다는 생각에 기왕이면 목사님이 사회를 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냈고, 평소에도 환경사랑에 신심을 아끼지 않았던 임의진 목사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무등산 풍경소리’가 사람과 자연의 갈등을 치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갈등, 종교의 갈등을 함께 사르는 축제로 자리하는 광경은 잔잔한 감동과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일철 스님이 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자신의 홈페이지에 간절한 눈물의 호소로서 스님의 쾌유를 빌고 여러 지인들이 함께 기도해 달라던 임의진 목사는 곧잘 스스로를 조계종 남녘암 주지라고 부른다. 예배 시간에 신자들에게 이웃 절 미황사(주지 금강 스님) 범종불사에 동참하라고 권선을 하는 그. 어리둥절 하는 신자들에게 절집의 종은 크니까 쇳물 조금 남겨 우리교회 종도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하면 더 이익이라고 신자들을 웃기는 임 목사에게 종교의 벽은 없다. 그를 도반으로 교유를 나누는 일철, 금강 스님은 말할 것도 없고.



#화림원 연밭의 정현 스님과 차기천 목사

여기는 마곡사 뒤 토굴 화림원. 전 용주사 주지 정현 스님이 선화를 그리며 연밭을 가꾸는 곳이다. 차기천 목사는 3만평에 달하는 연밭에서 600여종의 연을 재배하는 독특한 목사다. 연이 인연이 돼 만난 두 사람은 사회의 고통과 무질서를 종교가 힘을 모아 바로잡아야 한다는데 뜻을 모으고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라는 주제의 사회정화 운동에 한창이다. 스님이 이 문구를 넣은 문수도를 그리면, 목사는 이를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불자와 일반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스님보다 연꽃을 더 좋아하는 목사님과 선화를 그리는 스님이 이끌어 가는 사회정화 운동이 정토세상을 성큼 앞당기고 있음은 불문가지(不問可知).



#품앗이로 맺은 형님목사, 아우스님

부지런하기로 유명한 강화 선원사 주지 성원 스님과 ‘강화 환경유기농농민회’ 대표 김정택 목사.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우정으로 강화지역에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주인공들이다. 일구월심 8만대장경 판각성지 선원사 복원에 진력하는 성원 스님과 틀에 구애받지 않는 교회, 즉 ‘무교회주의’를 지향하며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먹 거리를 생산하는 김 목사는 강화에 사는 인연으로 8년 전 형제의 연을 맺었다.

“형님, 거기 노란 박스에 담긴 연 좀 이리로 들어다 줘요” “내 참, 어떻게 저렇게 무거운 것을 혼자 들으라고 난린가. 아우 스님.”

두 사람의 교분은 성원 스님이 만들고 있는 선원사 앞 3500평의 연밭 만들기를김 목사가 도왔고, 그 보답으로 성원 스님이 김 목사의 유기농장 모내기에 참여하는 품앗이로 더욱 두터워졌다. 목사님의 부인을 스스럼없이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스님, 나이가 많아 형이 됐지만 수행자 경력은 훨씬 앞서는 아우 스님을 존경하는 김 목사의 우의가 두 종교 간의 화해와 사랑으로 이어져 강화를 조금씩 유토피아로 바꿔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이 지역 사람들의 가장 큰 행복으로 자리 잡았다.



#삼보일배 정진 길에 하나가 되다

때는 한 밤중, 삼보일배로 지친 몸을 달래는 수경 스님이 퉁퉁 부어오른 무릎을 주무르고 있다. 이를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문규현 신부가 거친 손으로 스님의 무릎을 만진다. “거봐. 참. 내가 삼보일배 하자고 했을 때, 말렸어야지. 덥석 같이하자고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게 아냐. 문 신부 책임이 커. 그러니까 치료를 해줘야지. 안 그래?” “맞아 맞아. 우리가 고생을 사서 하는 지도 모르지. 그래도 새만금이 살아날 수 있다면 이깟 고생을 못하겠어. 얼른 낫기나 하라구.”

이보다 더 정감과 신뢰, 사랑이 어우러진 대화가 있을 수 있을까. 텔레비전을 통해 이 광경을 지켜본 이들은 두 종교지도자의 대화에 눈시울을 훔쳤다. 어떤 드라마와 영화가 이처럼 감동적일 수 있는가. 이들의 정겨운 대화 앞에서 이미 우리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을.



#난치병 어린이 돕기에 하나 된 세 종교

화계사 주지 성광 스님, 송암교회 박승화 목사, 수유1동 성당 이종남 신부. 4년째 난치병 어린이 돕기 종교연합 사랑의 바자회를 열고 있는 주인공들이다.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데 종교를 구분할 일이 있느냐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을 해낸 주인공들답게 세 분의 성직자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은 아름답기만 하다. 13년 전부터 목사가 미사에 참석해 강론을 하고, 신부가 교회를 찾아 설교를 했다. 이 아름다운 교류에 성광 스님이 뜻을 같이 한 것은 4년 전. 처음엔 일부 신자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스님과 신부, 목사님이 서로 격려하고 아끼는 모습에 차츰 마음을 열었다.

바자회 현장에서 만난 세 분의 성직자분들은 환한 미소로 함께한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발표했다.“우리는 앞으로 노후까지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산골짜기에 작은 집을 하나 지어서 그곳에서 함께 살기로 약속했습니다.”


이학종 기자 urubell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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