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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성지순례서 얻은 지혜

기자명 하림 스님

어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버스에 올라 보니 오랜 만에 보는 신도와 낯선 분들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새벽부터 나오느라 힘들어 보입니다. 순간 이 분들이 오늘 어떤 느낌으로 돌아가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잠이 덜 깨 눈을 비비고 있는 신도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휴식 필요성 알지만
편히 쉬지 못하는 것
뭔가 구하는 마음때문
그것 알면 평온 찾아와

“오늘은 여러분 자신에게 휴식을 주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쉬기 위해서 멀리 외국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비싼 옷과 좋은 집을 삽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휴식을 주고 평온을 줄 수 있다면 늘 행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쉬지 못하는 것은 우리에게 구하는 마음이 있어서입니다. ‘반야심경’에도 구하는 마음이 없어서 두려운 마음이 없고, 두려운 마음이 없어서 평온하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오늘 하루는 구하는 마음을 쉬어봅시다. 그리고 여정에 나를 온전히 맡겨 봅시다. 마치 작은 돛단배를 흐르는 강물에 띄우고 그 위에 누워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온전하게 하루를 쉰다고 해서 폭포 아래로 떨어지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살펴보세요.”

그러고 나니 좀 표정들이 편안해 지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휴식과 안정을 방해하는 것은 쉬지 못하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저도 늘 듣는 이야기입니다. “스님 힘들어 보여요.”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쉬지 못합니다. ‘주지가 사찰 걱정을 해야지 어떻게 쉴 수가 있어’하는 마음 때문에 쉬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요즘, 주지를 맡은 지 10년째 접어들면서 신념처럼 여기던 그런 마음이 조금 흔들리고 있습니다.

“스님! 왜 그리 바쁘세요? 바쁜 스님 붙들고 고민을 예기 하기가 죄송해요”라는 신도분들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왜 나는 바쁠까요? 신도님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드리고 싶은데 오히려 걱정을 끼쳐드립니다. 제 걱정하느라 당신들의 고민을 속으로 삼킵니다. 제 걱정하느라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바쁩니다. 또 하나의 걱정스런 자식이기도 하고 동생이기도 합니다. 가만히 저를 보니 제가 구하는 게 참 많습니다.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습니다. 신도님들을 위해서라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힘들고 지치게 했는데 뭔가 포인트가 안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정작 신도님들이 원하는 것은 건강하고 자신 있고 당당한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제가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수행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제도 9년 동안 제 방을 챙기고 옷가지와 빨래를 챙기시는 75세 노보살님으로부터 “다른 절에 가는데 멋있게 입고 가지 않는다”고 핀잔을 들었습니다. 신도님들의 마음은 어머니 같으시고 형님 같고 누님 같다는 것을 이제야 느낍니다. 번듯하게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긴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냥 서로가 정으로 사는 것, 서로 힘들 때 손 잡아주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나누는 그런 관계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사는 게 별거 있나 싶습니다. 그저 몇 달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볼 수 있고, 서로 기억하고 건강을 기원하며 마음 편하게 잘 사시는지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이 함께 한다면 족하다고 믿습니다. 한분 한분이 너무 소중합니다. 오늘도 다른 걱정은 없습니다. 내게 뭔가를 구하는 마음이 언제 어느새 올라와서 나를 힘들게 할지 모릅니다. 그것을 살피는 하루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면 편안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림 스님 whyharim@hanmail.net

[1271호 / 2014년 11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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